‘숙적’ 佛·獨, 에너지 협력으로 번영 발판
한·일, 원자력 공동관리로 투명성 높여야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로 동아시아가 시끄럽다. 일본 정부의 결정으로 지난 24일부터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가 시작된 가운데, 중국은 정부가 나서 일본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한편 한국에서는 정부와 야당이 대응을 두고 정면으로 맞서는 모양이다. 2023년의 오염수 방류 문제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장기적 결과다. 그만큼 원자력 에너지 문제는 심각하고 사고가 한번 발생하면 장기적 여파를 가져온다는 의미다.
후쿠시마 오염수라는 쟁점에서 핵심은 신뢰다. 누구 말을 믿을 것인가. 민주적 언론이 작동하지 않는 중국은 차치하더라도 한국과 일본만 보면 두 개의 극단적 입장이 존재한다. 방류해도 안전하다는 주장과 인간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논리가 대립한다. 문제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과거 언행이 일본 국내에서조차 완벽한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일본의 정부와 야당, 언론과 시민단체 등이 제각각 입장을 달리함으로써 찬·반 의견이 국경을 넘어 형성되는 데다 전문가 집단조차 대립하면서 오염수 쟁점은 매우 복합적인 모습을 보인다. 후쿠시마 사고와 사후 처리의 문제는 역설적으로 한·일 간 장기적 협력의 기회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오염수 처리의 사안에만 함몰하지 말고 원자력 에너지의 미래를 함께 열어간다는 커다란 비전으로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말이다.
서로 적대시하던 국가들이 에너지를 통해 화해와 협력의 길을 마련한 사례는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에서 찾을 수 있다. 유럽 대륙의 두 강대국은 19·20세기 세 차례의 대규모 전쟁을 치른 숙적(宿敵)이었다. 하지만 독일과 프랑스는 1950년대 석탄이나 원자력과 같은 에너지 분야를 긴밀하게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협력의 발판을 마련했고, 이를 토대로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구축해냈다. 에너지가 분열이 아닌 화합의 수단이 되었다는 뜻이다.
한국과 일본도 후쿠시마를 계기로 유럽의 에너지 협력이나 프랑스·독일 화해의 사례로 고개를 돌려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1951년 파리조약은 석탄과 철강 산업의 통합을 추진하여 전후 유럽 번영의 발판이 되었다. 1957년 로마 조약은 유럽경제공동체를 출범시킨 조약으로 잘 알려졌으나 그와 동시에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의 조약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유럽은 지난 반세기 이상 원자력 협력을 탄탄하게 다져왔다.
유럽의 경험에 비춰보면 에너지 협력의 국제화는 앞서 지적한 신뢰의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다. 특히 원자력처럼 안전성과 정보에 대한 신뢰 확보가 결정적인 부문에서 국제기관의 공동 관리와 감시는 합리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국가마다 존재하는 원자력 이해 집단의 폐쇄성을 무너뜨리고 투명성을 높이는 데도 국제적 기구는 결정적으로 공헌할 수 있다. 이에 덧붙여 잠재적 부패의 고리를 자르고 감시의 눈을 다각화하는 일은 안전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오염수는 분명 밥상과 먹거리의 안전 문제이고 당장 어민의 생존이 걸린 경제 쟁점이지만 그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책은 긴 안목으로 미래를 계획할 때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경험을 참고하여 한국과 일본,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에너지 협력을 기획하는 외교적 상상력이 절실하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