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문명의 뼈대로 경제력·군사력과 함께 知力 거론, 유럽에서 신학과 대학 발전
종교개혁과 프랑스 혁명 계기로 보편 교육 확산, 정치 민주화와 경제 발전으로 진화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 미국은 세계의 인재를 끌어들이는 두뇌의 중심이다. /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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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카를 마르크스가 관찰한 자본주의 세상은 무척 단순하고 간단했다. 한편에는 자본을 가진 부르주아가 있었고, 다른 편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프롤레타리아가 존재했다. 프롤레타리아의 원래 의미는 가진 게 신체뿐이라 노동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자본주의란 부르주아의 자본과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이 결합해 만들어내는 폭발적 생산력을 의미했다. 그 혜택은 오롯이 부르주아에게만 돌아갔으므로 자본주의란 결국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는 제도였다.
21세기에도 이런 시각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자산 없이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불안정한 노동 조건에 노출돼 착취당하는 현실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기계를 사용하는 자동화 시스템과 컴퓨터를 활용하는 정보화 사회로 발전했지만, 아마존 물류 센터나 택배 노동자, 맥도날드 조리사나 우버 기사의 삶은 여전히 팍팍할 뿐이다. 무산계급을 뜻하는 프롤레타리아 대신 프레카리아트(precariat), 즉 취약계급이라는 표현이 새롭게 등장했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와 불평등은 계속됐으나 동시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 또한 외면하기 어렵다. 자본의 소유 여부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구분되던 시대에서 훨씬 복합적이고 교묘한 계층 사회로 진화했다.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교육은 경제적 자본이 없는 사람에게도 높은 소득을 누리거나 안정적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교육을 통해 지식이나 능력을 습득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루고 인정받는 시대가 등장한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문화적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다. 자본주의가 변하기도 했으나 마르크스가 세상을 지나치게 경제적인 잣대로만 세상을 파악하려 했기에 나타난 착시현상이기도 하다. 지식이나 문화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교육은 사실 인류 초기부터 사회의 뼈대를 형성했다.
칼이냐 책이냐?
자본주의 세상이 열리면서 돈이 만물의 척도가 됐지만 그 이전에도 인류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요소는 물질적인 풍요와 물리적인 힘, 그리고 문화적 능력이었다. 에른스트 겔너라는 인류학자는 [쟁기, 칼, 책]이라는 저서를 통해 경제, 정치, 문화라는 인류 사회를 지탱하는 세 개의 기둥을 확인한 바 있다. 농사를 상징하는 쟁기가 경제적 기반을 지칭한다면, 칼은 폭력의 통제라는 정치 영역을, 책은 지혜와 역사를 담은 문화 영역을 뜻했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공자는 인간 사회에서는 그 무엇보다 문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논어]에서 “정치란 먹거리(食)와 군사적 힘(兵), 그리고 믿음(信)이라는 문화적 바탕 위에 서 있어야 한다”며 “그 가운데 백성의 신뢰가 가장 핵심”이라고 설파했다. 동아시아의 유교 문화가 폭력을 야만적 행위로 간주하고, 책을 통한 문화적 수신(修身)을 중시한 이유다.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국가 권력이 칼보다 책을 기반으로 하게 된 배경이다. 무력을 통해 천하통일을 이룬 권력자나 오랑캐도 문화적 소양을 쌓아야 정통성을 확보하는 문명을 형성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은 칼과 책이 거리를 두고 서로를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룬 듯하다. 그리스와 로마 문화는 신체적 단련과 전투에서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고,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지배력을 공고화하는 일을 국가의 근본으로 여겼다. 로마 제국의 시저부터 중세의 샤를마뉴, 근세의 카롤루스나 루이 14세, 나폴레옹까지 유럽의 전형적 지도자는 끊임없이 전투를 불사하는 전사다.
물론 서구 문명에서도 책과 문화는 중요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플라톤이 만든 아카데미아는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서양철학의 전통을 남겼다. 유럽을 지배한 기독교 문화 또한 ‘책의 종교’라고 불리는 유대교에서 유래했다. 다만 책이 권력의 통로였던 동아시아와는 달리 칼과 책은 권력과 종교라는 서로 다른 영역을 지배한 셈이다. 특히 중세가 되면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회가 지식의 보루로 작동하면서 대학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만들어낸다. 한편에서는 수많은 왕과 귀족과 도시가 전쟁을 일삼는 와중에 다른 한편에서는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는 교회가 영혼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대학은 그 틈새에서 지식과 문화의 공간을 형성해 나갔다.
지식의 민주화
▎로마 시대 폼페이 모자이크 벽화에 드러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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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유럽에서는 칼과 책이 서로 다른 영역을 차지하면서 경쟁하는 관계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긴밀한 협력 관계로 발전했다. 유럽에서 권력을 지배하는 왕과 귀족은 근본적으로 전쟁을 업으로 삼는 무사(武士)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 교육을 받은 뒤 법이나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들이 필요했다. 법대 졸업식에서 가운을 입었던 사람들이 관료가 되면서 법복 귀족이라 불리는 집단이 탄생했다.
그러나 한국의 양반처럼 문·무관을 대등하다고 여기거나 문관 위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유럽에서는 20세기 중반까지 무관이 국가 권력의 핵심이었고, 문관은 보조 역할에 불과했다. 특히 무관은 영토와 혈통에 기초한 세습이 당연시되는 귀족이었지만, 문관이란 관료가 된 다음에도 돈을 내야 지위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칼의 귀족이 법복 귀족 제도를 ‘평민의 비누’(savonette à vilain), 즉 신분 세탁기로 불렀던 이유다.
중세부터 근세까지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부딪친 전통 귀족과 법복 귀족의 대립은 가문의 혈통과 개인의 능력이 복잡하게 얽힌 투쟁이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함’을 선포했다. 그것은 민주 사회를 향한 인류의 커다란 발걸음이었다. 특히 가문의 혈통을 내세워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특권을 누리는 봉건주의의 종말을 알렸다. 이후 평등의 혜택을 가장 집중적으로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준비가 돼 있었던 법복 귀족과 그 자녀들이었다.
부르디외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자본의 종류는 다양하다. 돈으로 환산되는 경제적 자본이 제일 먼저 떠오르나 지식이나 교양으로 표현되는 문화적 자본도 있다. 경제건 문화건 자본의 본질은 부익부빈익빈의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다만 문화적 자본은 개인의 능력으로 포장되기 쉽기에 훨씬 세련되고 교묘한 성격을 갖는다. 부르디외가 볼 때, 마르크스는 경제 자본에 대해 너무 집착한 결과 왜곡된 시각을 띠었다.
프랑스 대혁명이 펼친 평등한 세상은 보편 교육이라는 지식의 민주화와 직결된다. 16세기 시작한 종교개혁이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문맹 퇴치에 앞장섰다면, 19세기 의무 교육의 확산은 시민의 기본 조건을 규정했다. 특히 투표권과 교육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투표권을 널리 확산하기 위해선 시민이 정치를 판단하고, 선택할 능력을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의무 교육 제도의 도입
▎12세기 설립된 오스트리아 하일리겐크로이츠 (Heiligenkreuz) 수도원. 중세에 교회와 수도원은 지식의 보루였다. /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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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이상적인 국가에는 이상적인 국민이 필요하고, 이상적인 국민은 이상적인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중세 유럽에서 교회와 신학을 중심으로 발전한 대학이 엘리트 교육의 근원이라면, 플라톤의 정치철학은 대중 교육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르네상스를 거쳐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는 [에밀]의 저자 장 자크 루소가 ‘대중을 위한 공공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럽에서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의무 교육을 시작한 것은 “누구나 성경을 직접 읽어 하느님의 말씀을 접해야 한다”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부터다. 16세기 이미 뷔르템베르크나 스트라스부르 등 프로테스탄트 영향 아래 있는 도시에서 의무 교육을 시행했고, 17세기가 되면 스코틀랜드나 신대륙의 매사추세츠 등 다른 프로테스탄트 지역까지 의무 교육이 확산했다. 식민지 시대인 1636년 하버드가 신학교로 출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청교도들은 신대륙에 도착한 지 불과 20년 만에 대학부터 세운 셈이다.
1763년 프로이센은 근대식 의무 교육 제도를 선도적으로 수립했다. 남녀 불문하고 모든 아동이 6~13세 사이에 종교, 읽기, 쓰기, 노래 부르기 등의 교육을 받도록 했다. 대부분 군인 출신의 교사들은 지역 정부에서 월급을 받도록 했고,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누에를 치도록 장려했다. 이어 덴마크(1814년)나 스웨덴(1842년) 등 북유럽의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이 의무 교육 제도를 도입해 근대 세계를 열었다.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에서는 혁명 세력이 19세기가 돼서야 대중 교육을 뒤늦게 추진했다. 한편에는 가톨릭교회의 신부가 교리를 가르치는 교육을 담당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마을마다 세워진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공화국 정신을 가르쳤다. ‘어린 영혼’을 두고 신부와 교사가 대립하는 모습이 전국에서 재현됐다. 하지만 200여 년이 지난 2020년 현재 프랑스에서 신부는 거의 사라졌고, 초중등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은 110만 명으로 교육부가 전국 최대 고용주로 부상했다.
교육과 민주화의 상호관계를 살펴본 한 연구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의무 교육법이 제정된 이후 30여 년 뒤에는 남성의 일반투표제도가 도입됐고, 50여 년 후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다. 고대 플라톤의 예측이 수천 년 뒤에 실현됐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21세기 현재는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의무 교육 제도를 실천하고 있다. 교육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발전과도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유럽에서 특허 제도(1474년)를 처음 발전시킨 세력은 다름 아닌 이탈리아의 자본주의 요람 베네치아였다. 이어 영국은 발명을 촉진하기 위해 1624년에 특허 제도를 정비했다. 덕분에 성장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영국 사회는 지식의 결과물을 경제적으로 매우 유용하게 활용했다. 과학과 기술의 혁신을 생산 과정에 도입함으로써 석탄이나 석유 등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이나 철강, 섬유 등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크게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 과정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자본주의 산업사회는 최소한의 기초 교육을 받은 인력이 필요해졌다. 19세기의 전형적 노동자가 광산에서 석탄을 파내는 단순 육체노동자라면, 20세기에는 자동화 공장에서 매뉴얼을 읽고 기계를 작동시키며 보고서를 점검할 수 있는 노동자가 필요했다. 현대 자본주의의 노동 수요란 아무리 간단한 작업도 학교 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수행하기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지게차, 크레인 등 무엇 하나 면허증 없이 작동할 수 있는 기계는 없다. 게다가 현대 자본주의 기업은 지식에 기초한 산업에 크게 의존한다. 첨단 기업은 적어도 투자의 1/3 정도를 연구개발(R&D)이나 마케팅 등에 할애한다. 선진국 클럽인 OECD에서 대학 교육을 받은 성인은 1975년 22%에서 2000년 41%까지 상승했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적당한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어졌다.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고등교육 자체가 세계 총생산의 1%, 즉 3000억 달러의 지출을 차지하며 대학은 8000만 명의 대학생을 위해 350만 명의 교직원이 일하는 거대한 산업 분야가 됐다.
자본주의와 지식사회는 동반자
▎19세기는 유럽에서 초등학교 교육이 보편화한 시기였다. /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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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발전은 소비에서도 최소한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제외하거나 골탕 먹이는 효과를 낳았다. 해외여행을 가서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슈퍼에서 장을 보려면 당장 ‘문맹인’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실제 현지어를 몰라서 동물 사료를 사서 사람이 먹는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제조 일자와 유통기한을 혼동하기도 하고 ‘먹는 약은 바르고, 바르는 약은 먹는 일’도 일어난다. 집안을 가득 메운 수많은 전기·전자제품은 사용법이 복잡하다. 자본주의 소비 사회에서 깨알같이 쓰인 제품 설명서를 읽을 능력이 없다면, 소비를 포기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인류학자 겔너는 [민족과 민족주의]에서 교육과 자본주의의 유기적 관계를 명백하게 지적했다. 그는 “학교와 군대가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결정적인 제도라며 인간에게 정신적 교육과 신체적 훈련이 없다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근대사회는 존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학교와 군대는 민족이라는 거대한 공동체 안에 서로 대체 가능한 원자화된 개인들을 생산해 내고, 이들은 규격화된 생산과 소비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 만들어진다는 이론이다. 달리 표현해 학교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하는 기본 행위자를 양성함으로써 현대사회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제도다. 자본주의가 발전을 거듭하고 고도화할수록 교육에 대한 사회의 수요와 공급은 늘어나고 팽창한다. 자본주의와 지식사회는 손을 맞잡고 전진하는 한 쌍의 동반자인 셈이다.
중세 대학은 크게 네 분야로 나뉘어 있었다. 신학은 모든 학문의 제왕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문학, 철학, 역사, 과학 등 전통적인 학문을 다루는 문리대가 있었다. 그리고 법대와 의대라는 응용 학문이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지식 교육을 담당했다. 과거의 법학이 국가 통치와 직결된 학문으로 법복 귀족이 되는 지름길이었다면, 현대의 법학은 국가는 물론 시민사회 내부의 다양한 분쟁을 해결하는 분야로 발전했다. 국가가 통치하는 사회에서 법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법학은 이제 국가 관료는 물론 판사와 검사를 양성하고, 변호사를 교육한다. 또 공증인, 법무사, 변리사, 세무사, 노무사, 회계사, 중개사 등 다양한 직업 교육의 기초 학문이기도 하다. 다양하고 복잡해진 현대사회의 규칙과 관련된 수많은 직업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자격증의 시대
▎1878년 설립된 미국 볼티모어의 피보디(Peabody)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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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분야도 놀랄 만큼 팽창하고 있다. 경제발전이 가져온 장수(長壽)사회는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화했고, 그 결과 의사는 물론 약사, 간호사, 간호보조원, 물리치료사, 산후조리사, 의료 기기를 다루는 기사 등 다양한 직업을 낳았고 해당 분야에 관한 교육이 확산했다. 최근에 신체에 문신을 새기는 상대적으로 단순해 보이는 일이 의료 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현대사회에서 전문 지식과 교육에 대한 기준과 요구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법학과 의학은 중세 대학부터 내려오는 전통이지만 현대사회에서 이제 자격증은 모든 직업의 법적 조건으로 등장했다. 우선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산업 인력에게 다양한 기사 자격증을 요구한다. 또 서비스 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각종 분야에서 상담사나 미용사, 영양사, 화예사, 장례사 등 자격증이 필요한 직업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중세 길드가 그랬듯이 모든 직업을 관장하는 조직들은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운영으로 기존의 자격증 소유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려 한다. 예컨대 어느 국가에서나 의사나 변호사 집단은 숫자를 제한하려고 한다. 반면 해당 교육 사업을 하거나 시장 자체를 늘리려는 혁신자들은 오히려 확장하려고 애쓴다. 자본주의적 논리는 근본적으로 후자에 가까우며 실제 자본주의의 조국인 미국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제한을 풀고 시장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한다. 많은 나라에서 택시 기사 자격증에 도전장을 내민 우버가 대표적인 예다.
[자본주의 vs 자본주의]라는 저서에서 “선진국 간에도 사회체제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 미셸 알베르는 교육 분야를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을 민간 시장의 원칙에 맡기는지, 아니면 국가가 책임을 지는지에 따라 그 사회의 성격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유럽에서 교육은 공공 기관의 책임이다. 미국은 공립과 사립이 경쟁하는 구조이며 민간 시장의 원칙이 강하게 작동하는 사회다. 특히 고등교육을 살펴보면 유럽과 미국의 차이는 뚜렷하다. 유럽은 대학들이 대부분 공립이며 고등교육은 무상에 가깝다. 반면 미국은 고등교육이 사립 중심으로 운영되고 공립도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높은 학비를 요구한다. 교육을 시민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유럽과 개인적 투자라고 여기는 미국의 시각이 반영된 결과다.
이처럼 미국에서 교육은 경제적 행위다. 학비는 교육 서비스에 대한 가격이며 미래를 위한 투자다. 많은 대학생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 학비를 대고 나중에 직장을 구한 뒤 돈을 벌어 갚아나가는 시스템이다. 국가 예산으로 대학을 운영하는 유럽 대륙과는 전혀 다른 세상인 것이다. 게다가 미국 대학은 학비 외에도 동문의 기부금이나 수익 사업 등 다양한 수입원을 개발했다. 미국에서는 비싼 학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대학에 가기를 희망한다. 교육 수준에 따라 미래의 직업과 지위, 소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투자와 소득의 상관관계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뜻이다. 문제는 누구나 이런 전략을 추구하다 보니 장기적으로는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게 표출된다는 점이다. 관광이나 박물관 가이드를 하기 위해서도 석사 학위가 필요하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현실이다.
브레인 비즈니스
게다가 세계 교육 시장은 점차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중이다. 2000년에 200만 명에 달했던 지구촌의 유학생 수는 지난 2019년 600만 명으로 3배 정도 불어났다. 국제 고등교육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추세는 뚜렷하다. 유네스코 통계에 따르면 가장 많은 유학생을 유치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호주 등 영어권 국가들로 전체의 33%를 차지한다. 그 뒤를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잇는다.
100만 명 가까운 유학생을 받는 미국을 살펴보면, 유학생을 내보내는 나라의 국적 분포도 명백하다. 중국이 36만 명, 인도가 20만 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초과하는 수치다. 한국은 5만 명 정도로 3위다. 통합된 지구촌 고등교육 시장에서 미국은 가르치고 중국과 인도는 배우는 입장이다. 공부가 끝나면 자국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많은 중국인과 인도인은 미국에 남아 일하면서 미국 경제를 살찌운다.
교육의 비즈니스화로 미국이 수익을 창출하는 것도 중요한 현실이지만, 인류 차원에서 더 의미 있는 결론은 미국이 보여주는 개방성과 포용성이다. 교육의 문을 개방해 지구촌 곳곳의 두뇌를 흡수하는 미국의 능력은 결국 문화적 경쟁력이다. 공자 이래 중국은 지난 2000년 동안 온갖 오랑캐의 무력에 힘없이 굴복당하면서도 문화적인 힘을 발휘해 침략자를 흡수해 교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해 왔다. 이렇듯 문을 활짝 열고, 적도 끌어안는 과거 중국의 유연한 사회 통합 역량이 21세기에는 개방 사회인 미국으로 넘어간 것처럼 보인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