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 즐겨 먹는 겨자, 加 흉년에 품귀
농업생산 세계화·기후변화 겹쳐 식탁 위기로
세상 사람들의 입맛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강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먹거리를 선호하는 민족도 있다. 똑같은 재료를 갖고도 다양한 맛을 내곤 한다. 겨자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인도에서 겨자를 넣은 소스는 부드러운 맛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강한 맛의 겨자를 즐겨 먹는다.
한국에선 서양 문화를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는 무척 다양하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즐겨 먹는 ‘옐로 머스터드’는 부드러운 맛이다. 반면 프랑스 사람들이 선호하는 ‘디종 겨자’(Moutarde de Dijon)는 냉면과 곁들여 먹는 한국의 겨자만큼이나 독하고 강하다. 오죽하면 프랑스 광고에 겨자를 먹으면 뇌에서 천둥이 치는 광경을 담아 선전하겠는가!
프랑스 유학 시절 나는 점심으로 핫도그를 사 먹곤 했는데 바게트에 겨자 소스를 잔뜩 발라 뜨거운 소시지를 넣은 간단한 식사였다. 워낙 매운 프랑스 겨자 향이 소시지 온도로 덥혀져 코를 찌르면 핫도그를 먹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법은 없었다. 겨자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잠시 코를 피해 입으로만 숨을 쉬는 ‘비법’을 잘 알겠지만 말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세계에서 겨자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민족이다. 1인당 1년에 먹는 겨자 양이 1ℓ에 달한다. 프랑스인의 겨자 사랑은 유럽에서도 독보적이다. 앞서 언급한 디종은 부르고뉴 지방의 중심 도시로 맵고 강한 겨자의 대명사로 부상할 정도로 요리에 겨자를 활용한 역사가 길고 깊다.
한국인의 고추장처럼 프랑스 가정의 냉장고에는 디종 겨자가 빠지기 어려운 터줏대감이다. 4인 가족이라면 1년에 평균 4ℓ의 엄청난 양을 소비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2022년 프랑스 슈퍼에서 디종 겨자가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이다.
이번 여름 나도 파리에서 사라진 겨자를 찾아 동네 슈퍼를 돌며 샅샅이 뒤졌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연어나 쇠고기 스테이크는 물론 소시지와 햄, 감자와 채소 등 무엇이든 겨자를 발라 먹어야 하는데 큰일이었다. ‘겨자 중독증’이 심각한 프랑스 소비자들은 난리였다. 가끔 겨자가 진열대에 올라오면 닥치는 대로 사가는 사람들로 인해 부족 현상은 더 심각해졌다.
겨자 파동으로 사람들은 많은 진실을 깨달았다.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먹는 디종 겨자의 원재료를 생산하는 지역은 프랑스도 유럽도 아니고 북미의 캐나다였다. 먹거리 생산의 세계화인 셈이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캐나다의 기온이 폭등하자 겨자 생산에 흉년이 들었고, 대체 재료를 찾지 못한 프랑스 식품업체는 생산을 대폭 줄인 것이다.
농업 생산의 세계화와 지구온난화의 중복 효과가 가져온 식탁의 위기다. 무엇보다 미식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디종이라는 도시 이름이 사실은 수입한 재료로 대량 생산된 공산품의 이미지를 포장하는 데 아주 오랫동안 남용되면서 소비자들을 기만해왔다는 민낯이 드러났다.
겨자 파동으로 원재료 가격이 올라가자 부르고뉴 지역에서 다시 겨자 재배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덕분에 이번 가을에는 프랑스 슈퍼에서 디종 겨자를 쉽게 구할 수 있을 전망이다. 색깔만 노란 밋밋한 소스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발라먹지 않아도 될 날이 다가와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