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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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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엑소더스가 말해주는 진실

    • 등록일
      2022-04-08
    • 조회수
      171

자고로 전쟁은 지도를 바꿔 놓는다. 군대의 이동과 전투의 승패는 전선의 변화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지도가 보여주지 않는 부분은 도시와 자연의 파괴이고 죽어가는 병사들이며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는 피란민들이다.

 

지난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한 달이 넘었다. 전쟁으로 인한 난민의 수가 급기야 400만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4000만명 남짓하던 우크라이나 인구의 10% 수준이다. 게다가 내부 난민 600만명을 합하면 인구의 4분의 1이 전쟁으로 집과 고향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 결과다.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의 규모는 20세기 세계대전 수준에 육박하며 짧은 기간에 급속하게 발생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들은 전쟁과 폭격을 피해 서쪽을 향한 “고 웨스트 엑소더스”의 행렬을 이루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거 난민 수용을 거부하던 동유럽 이웃나라들이 이번에는 두 팔 벌려 적극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의 모든 난민을 즉각 수용하겠다는 원칙을 정했다. 난민의 체류권을 자동 인정하는 것은 물론, 당장 일하고 복지 혜택을 누릴 권리도 인정했다. EU는 또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을 위해 170억유로(약 22조8700억원) 규모의 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30만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으로 한 달 만에 인구가 17%나 증가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정책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난민과 비교해 너무 차별적이라고 비판한다. 백인이고 기독교도이기에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이 같은 인종 및 종교적 차별 요인이 없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아프가니스탄이나 시리아 내전과 단순 비교하면 곤란하다. 유럽인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푸틴의 러시아로부터 유럽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자신들의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난민의 90%는 여성과 아동이다. 대다수가 젊은 남성인 시리아 난민과 대비되는 특징이다. 유럽 전역의 많은 가정에서 기꺼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겠다는 따뜻한 연대의 손길을 뻗는 이유다. 놀라운 사실은 여성, 아동, 노약자 수백만명이 우크라이나에서 빠져나오는 동시에 수십만명의 건강한 남성이 러시아의 침공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규모의 차이는 존재하나 우크라이나의 엑소더스는 쌍방향인 셈이다.

 

침략 국가 러시아에서도 규모는 작지만 의미심장한 엑소더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자 청년 고학력 전문직 계층에서 조국 러시아를 등지고 해외로 이주하는 물결이 있다는 소식이다. 러시아인들이 비자 없이도 입국할 수 있는 터키나 조지아, 중앙아시아 등지로 ‘탈출’이 늘었다. 유능한 젊은이들이 암울한 푸틴 독재의 극단적 민낯을 보고 조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간다고 해석할 수 있다.

 

대탈출을 뜻하는 엑소더스는 “발로 하는 투표”의 결과다. 누구의 명령이랄 것 없이 각자 내린 결정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흐름이다. 여성과 아동이 안전한 EU로 이동하는 동안 자신들은 목숨 걸고 조국을 지키러 전쟁터로 가는 우크라이나 젊은이, 독재자의 황당한 전쟁에 절망하고 조국을 떠나는 러시아의 젊은이, 이것이야말로 서로 다른 엑소더스가 말해 주는 진실의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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