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내용 바로가기 사이트정보 바로가기

정치외교학과

메뉴

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삶과 돈의 색다른 조합

    • 등록일
      2020-12-29
    • 조회수
      212

해외 지도층 급여반납·찾아가는 기부 훈훈
홍보·선전보다 돈의 쓰임새 먼저 생각해야

 

경제적 이익의 축적을 삶의 가치로 여기는 ‘호모 이코노미쿠스’ 시대정신에 도전하는 독특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신에게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주어지는 돈을 마다하거나 받자마자 좋은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놀랍고 훈훈한 이야기다. 코로나로 혼란스러운 한 해를 마감하면서 접하게 된 미담을 공유한다.

 

프랑스의 수도이자 세계적 대도시 파리의 시의회 의원 연봉은 5만유로, 즉 7000만원 정도다. 르몽드지 보도에 의하면 피에르 카자노바라는 의원이 특이하게도 급여 받기를 고사했다는 소식이다. 이 50대 중년 의원은 자신은 기존의 변호사 수입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시 예산을 아끼는 데 기여하고 싶어 했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그는 이런 미담이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과시적 행동이 아니라 개인 양심의 문제였던 것이다.

 

중도파 ‘민주운동’ 소속인 카자노바 의원은 공공기관이 돈을 나눠주면 사람들은 ‘아편’처럼 중독된다며 시의 예산 확대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정책 신념과 개인의 행동을 일치시킨 셈이다. 그는 프랑스의 유명한 자유주의 경제학자 장클로드 카자노바의 아들로, 사상과 행동의 일관성에 대해 철저한 교육을 받은 듯하다. 1980년대 내가 유학시절 들었던 아버지의 강의는 박학다식과 예리한 논리의 전형이었다. 베네치아의 18세기 바람둥이 카사노바(프랑스식 발음은 카자노바)의 이미지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다른 따뜻한 이야기는 대서양 건너편에서 전해졌다. 아마존의 갑부 제프 베이조스와 이혼하면서 얻은 재산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호로 등장한 매킨지 스콧은 작년 세계인의 관심을 끌며 유명해졌다. 그녀는 올해에만 60억달러(약 6조6000억원)를 다양한 단체에 기부했다. 기부 액수 자체도 뉴스가 될 만한 엄청난 규모지만 더욱 흥미로운 점은 기부 방식이다. 다양한 단체의 신청을 받아 심사를 거쳐 돈을 나눠 주는 방식이 아니라 자체 조사를 통해 선정한 단체에 돈을 전해주는 ‘찾아가는 기부’의 형식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시민단체가 정부나 민간재단의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막중한 서류를 준비하고 로비에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려면 인력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서히 주객이 전도되어 착한 일, 좋은 일보다 예산 확보에 더 많은 노력이 투여된다. 스콧의 찾아가는 기부는 이런 맹점을 정확히 파악한 혁신적 접근법이다. 코로나 위기로 예산이 축소된 많은 수혜 단체에 주어진 지원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축복과 같았을 것이다. 일부 단체는 엄청난 예산을 기부하겠다는 메일을 장난으로 여기고 스팸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스콧과 카자노바의 사례는 물론 다르다. 스콧이 거부(巨富)의 혁신적 기부라면 카자노바는 정치인의 양심적 행동으로 볼 수 있다. 포기하는 돈의 규모는 다를지라도 둘 다 홍보와 선전보다는 돈의 쓰임새를 생각하며 내실을 기하는 선택이다. 프랑스와 미국의 이야기를 접하며 한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에게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악착스럽게 거금을 모아 기부하는 선행만 있고 돈 보기를 돌같이 하거나 돈의 쓰임새를 고민하는 사회 지도층의 미담을 접하기는 어려운 것일까. 선행을 너무 잘 감추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절망적 희망을 품어본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