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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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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내일신문] 축구장에서 일어난 연대의 기적(20.12.15)

    • 등록일
      2020-12-21
    • 조회수
      234

지난 9일 파리 파르크 데 프랭스 축구장에서는 유럽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양 팀 스물 두 명의 선수들이 심판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문제 삼아 일심 단결하여 한꺼번에 퇴장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 축구장에서 펼쳐진 아름다운 이야기도 역사를 바꾸는 많은 사건들처럼 예상치 못한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져 만든 기적이다.

 

스포츠란 기본으로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다. 양 팀의 선수들은 고대 로마의 검투사를 연상시킬 정도로 투지를 다지며 경기장에 들어서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날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과 터키 바샥세히르 두 팀의 선수들이 예외 없이 집단행동에 동참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이 경기는 친선게임이 아니라 유럽 최고의 축구 대회인 챔피언스 리그 조별 경기의 마지막 날이었다. ‘별들의 향연’이라 일컫는 대회에서 16강 진출을 결정짓는 중대한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마음을 합칠 수 있었던 것은 획기적인 현상이다.

 

이들의 행동이 특별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은 심판의 발언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심판은 경기장에서 신과 같은 존재다. 심판이 선수의 언행을 문제 삼을 수는 있지만 선수가 심판을 평가하여 퇴장하는 일은 ‘사람이 개를 무는 행동’만큼이나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경기를 거부하는 팀이나 선수는 유럽축구연맹(UEFA)의 심각한 징계 대상이다.

 

사건의 발단은 주·부심이 서로 마이크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바샥세히르 팀의 코치 한 명을 지명하여 ‘흑인’이라고 호칭한 일이다. 이 게임 주·부심은 모두 루마니아 인으로 자국어로 소통했는데 ‘네그루’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네그루’는 루마니아어로 검다는 의미이지만 영어의 ‘니그로’처럼 상대를 모욕하는 수준은 아니다.

 

카메룬 인이었던 바샥세히르의 코치는 모욕감에 분노하여 “왜 니그로라고 하느냐”며 강하게 항의했고 주심은 레드카드로 그를 퇴장시켰다. 코치의 퇴장에 몰려든 선수들은 ‘네그루-니그로’ 표현이 심판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당황한 문제의 부심은 루마니아어에서는 네그루가 욕이 아니라 흑인이라는 뜻이라고 변명했다. 이 때 등장한 바샥세히르의 뎀바 바라는 선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파리 근교에서 태어나 자란 세네갈 인으로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확고한 이해와 인식을 갖고 있었다. 뎀바 바는 부심에게 다가가 평소 사람을 지칭할 때 ‘백인’이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왜 코치는 ‘흑인’이라고 부르냐고 따졌다. 무의식적이기에 더욱 심각한 인종차별적 태도를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이 사건의 첫 번째 모멘텀이다.

 

편을 갈라 대립하는 경쟁의 세계에서 뎀바 바와 바샥세히르 선수들이 자기편 코치의 퇴장을 항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사건의 두 번째 모멘텀은 상대편 파리 생제르맹의 선수들이 심판 발언의 심각성에 공감하면서 함께 경기장에서 퇴장하는 연대의식을 발휘한 순간이다. 킬리안 음바페나 네이마르 등 평소 인종차별을 몸소 체험한 선수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선수들의 경기 보이콧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었고 결국 유럽축구연맹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루마니아에서도 체육부장관이 나서 자국 심판들의 실수를 인정했고 프랑스 체육부장관은 양 팀 선수들의 행동이 모범적이었다고 격려했다. 터키의 독재자 레젭 타입 에르도안도 인종차별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거들고 나섰다. 경기는 다음 날 심판을 바꿔 재개되어 치러졌다.

 

코로나 위기로 관중 없는 경기장도 선수들의 집단행동을 가능하게 만든 요소다. 수만 명의 관객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양한 차별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의 고민은 ‘세상의 순조로운 흐름’을 깨뜨리는 책임을 감당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순조로운 표피 속에 갖은 차별과 불평등과 불의가 숨어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든 파리 생제르맹과 바샥세히르 선수단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는 무의식적 인종차별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테면 사람에 딱지를 붙여서 바라보면 태도 말이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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