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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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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내일신문]두뇌와 가슴에 침투하는 증오의 바이러스(2/11)

    • 등록일
      2020-02-12
    • 조회수
      228

두뇌와 가슴에 침투하는 증오의 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전 세계가 잔뜩 긴장하며 떨고 있다. 새로운 질병의 미래를 점칠 수는 없지만 전염성이 강하고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생물이나 병리학적 차원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고개를 드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중국 때리기.
중국 때리기의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인의 식생활을 비난하는 태도다. “야생동물을 즐겨먹는 야만적 습관이 사스나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새로운 질병을 초래했고 그 결과 중국이 세계에 불행을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병의 기원은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아니다. 게다가 희귀한 요리나 야생동물을 먹는 습관은 비단 중국 뿐 아니라 세계 어느 문화에나 있다. 광우병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소의 뇌나 골수를 즐겨먹으며 사냥한 동물의 고기를 지비에라 부르며 별식으로 즐긴다.
또 다른 차원의 중국 때리기는 정치 분야다. 새로운 병이 급속도로 전파된 것은 공산당 독재의 언론 통제 때문이며, 현재 질병에 대처하는 방식도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이다. 우한에서 사망한 의사 리원량에 관한 한국이나 서방의 언론 보도를 보면 중국에서 당장 혁명이라도 일어날 것 같다.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에 중국 여론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불과 40년 만에 중국을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세워놓은 공산 정권에 대한 보통 시민들의 신뢰와 자부심 또한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우한과 후베이 성의 5천만 인구를 완전히 고립시켜버리는 중국 정부의 결정에 대해서도 판단의 기준은 다양하다. 갇힌 사람들의 삶은 고통스러울 것이고 내부의 환자와 피해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우한이나 후베이 성 주민의 자유로운 이동이 계속 보장되었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는 치밀하게 따져 봐야 하는 사안이다. 현 상황에 대해 미개한 독재 중국의 실수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일이 아니라 사안마다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다.
국제 사회의 중국 때리기는 2010년대 중국의 놀라운 부상에 대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하고 못 살던 중국이 성공적으로 발전의 궤도에 오를 때 세계는 함께 기뻐하며 박수를 쳐줄 수 있었다. 그러나 2014년 구매력평가기준으로 중국은 미국의 경제규모를 넘어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등극했다. 중국의 두터운 중산층은 세계 최대의 부자 관광 집단으로 부상하여 파리·런던·뉴욕의 명품 매장들을 휩쓸고 다니기 시작했다. 또 시진핑의 중국은 일대일로나 사드 등 오만한 외교 정책으로 국제사회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2020년 중국 발 코로나바이러스는 신흥 강대국 중국에 대해 다년 간 누적되어 온 시기와 질투가 폭발하는 기회의 창이 되었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근래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태도는 심각한 경계심과 반감이 담겨있었다. 그러다 이번 신종 전염병을 계기로 동아시아나 서방의 일부 정치 세력과 언론은 야만적 중국 문화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고, 세계에 대한 무지한 중국 세력의 위협을 강조하며 공포심 조성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이제 탄탄한 사슬로 묶여 있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다. 그리고 중국은 세계경제의 중심에 확실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당장 한국의 현대·기아차의 조업 중단만 봐도 세계 생산 사슬의 연결성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마비가 지속되면 조만간 유럽의 공장도 멈춰야 할지 모른다는 소식이다. 자동차 산업이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정보통신산업부터 제약분야까지 중국이 멈추면 세계가 느려지거나 정지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인한 인적·경제적 피해의 규모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코로나바이러스도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화될 것이다. 운이 좋으면 백신을 빨리 개발할 수도 있고 점차 적절한 치료법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람들의 두뇌와 가슴에 증오심이 뿌리를 내리면 그것은 더 치유하기 어려운 지구적 병이 될 수 있다. 세계가 중국에 던지는 멸시의 시선으로 생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매서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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