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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국가 투자만 하면 ‘묻지 마’ 국적 부여 / 범죄자까지 유입… EU, 제도 통일 추진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투자를 대가로 시민권과 비자를 경쟁적으로 ‘세일’하는 정책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는 얼마 전 일정한 투자를 할 경우 국적과 체류 비자를 내주는 회원국 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투자이민 제도를 운영한다는 점에서 유럽의 상황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은 한 나라의 국적이나 비자를 가질 경우 나머지 20개 이상 나라에서도 유사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유럽의회가 2014년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고, 5년이 지나서야 유럽집행위가 해당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번에 특히 문제가 된 것은 불가리아, 키프로스, 몰타 3개국이다. 몰타는 80만유로, 불가리아는 100만유로, 키프로스는 200만유로를 투자하면 국적을 쉽게 취득할 수 있다. 특히 불가리아의 경우 지난해 11월 법무부에서 국적국장을 담당한 고위관료가 직접 나서 수많은 외국인이 지난 10여 년간 국적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범죄자·탈세자·테러 조직원 등이 포함돼 있으며, 불가리아 일부 정치인들이 이런 비리의 중심에 있다고 폭로해 해고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이들 국가가 발급하는 시민권은 매년 몰타가 1800명, 키프로스나 불가리아는 수백명 수준이라고 한다. 

투자를 대가로 체류비자를 얻을 수 있는 제도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을 포함해 현재 20개국이 운영한다. 오스트리아 그리스 헝가리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포르투갈 등이 상대적으로 쉽게 체류비자를 발급해 준다. 유럽 어디나 여행하고 정착하고 일할 수 있는 시민권만큼은 못하지만, 한 나라의 체류비자만 있어도 다른 나라에 가서 6개월 중 3개월을 살 수 있다.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유럽의 시민권과 비자를 사는 사람들은 불안한 지역의 부자들이다. 권력에 기대어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러시아나 아프리카의 부호라면 유럽의 국적이나 체류비자는 일종의 보험이다. 독재자의 눈 밖에 나거나 혁명이라도 일어나면 도망갈 나라를 마련해 놓는 셈이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선호하던 아시아인도 유럽으로 눈을 돌린다고 한다. 포르투갈에서는 중국과 앙골라 부호를 대상으로 조직적으로 비자를 발급해 주는 스캔들이 터지기도 했다.

유럽 역사에서 시민권의 의미는 매우 특수하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나 로마의 시민권이란 자유와 평등을 의미하는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중세에도 자유도시의 시민은 왕이나 황제의 신민(臣民)과는 다른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였다. 또 근대 유럽의 시민권은 혁명을 통해 이룩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21세기가 돼 유럽의 시민권은 이제 세계의 부자들에게 팔려나가는 신세가 됐다.

EU는 앞으로 회원국 전문가들을 모아 최소한의 공통 제도를 만들어 보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기본으로 국적이나 외국인 체류에 대한 권한은 연합이 아니라 회원국이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조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몰타나 키프로스의 국적을 얻은 부자들이 샴페인을 마시며 지중해 크루즈를 즐기는 동안 같은 바다에서는 난민들이 목숨을 건 유럽행에 도전하고 있는 현실이 눈앞에 대비돼 씁쓸하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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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주소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22&aid=0003336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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