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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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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내일신문 <신문로> 201919일자

 
미국경제학자 vs 유럽시민
 
새해로 유로가 만 20세 성년을 맞았다. 새천년을 불과 일 년 앞둔 1999년 유럽의 열 한 나라가 자발적으로 자국의 화폐를 포기하고 새로운 공동의 화폐를 만들어 사용하는 혁명에 성공했다. 길게는 수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르크와 프랑, 리라와 길더, 페세타와 실링이 사라지고 유로라는 하나의 화폐로 통합하였다. 사람들이 유로의 지폐와 동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 3년 뒤인 2002년부터다.
사람이건 제도건 생일을 맞는 대상에게 덕담을 건네고 함께 기뻐해 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레스토랑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도 함께 박수를 쳐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며 역사를 모르는 나라에 가도 국경일이라면 축하의 말을 건네지 않겠는가.
 
이런 인간의 기본적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데 유로라는 단어만 등장하면 경기(驚氣)를 일으키며 저주의 폭언을 퍼붓는 미국의 경제학자들이다. 그것도 소수의 비주류 이상한 경제학자들이 아니다. 이름 하여 밀턴 프리드먼, 제임스 토빈, 마틴 펠스타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등 기라성 같은 주류 경제학자들이다. 펠스타인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노벨상을 받은 현대 경제학의 기둥이다. 정치 성향도 프리드먼과 펠스타인은 보수 우파에 가깝고 토빈세의 토빈, 반세계화의 스티글리츠, 리버럴한 크루그먼은 진보 좌파로 기운다.
 
프리드먼과 펠스타인은 유로가 탄생하기 전인 1990년대부터 저주의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펠스타인은 유로라는 화폐가 등장한다고 달러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평화를 깨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논문에서 주장했다. 프리드먼 역시 유로가 혹시 출범하더라도 경제적 원리를 무시하고 만들어진 화폐이기 때문에 10년도 가지 못할 것이며, 유로가 붕괴하면서 유럽연합도 무너질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로는 순탄하게 출범하여 2000년대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처럼 별 탈 없이 성장하였다. 그러다 2010년대에 그리스를 선두로 유럽 재정위기가 터지면서 성장통을 겪게 되자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다시 저주의 폭언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유로는 태생적 결함을 가진 아이라는 비난부터 내부 모순을 해결할 능력을 결핍하고 있다는 진단, 그래서 미래에 언제든 붕괴할 수 있다는 예언까지 부정의 평가를 반복하고 있다.
 
이 칼럼에서 유로의 복합적인 차원을 분석하거나 소개하기는 어렵다. 다만 미국 경제학자 대표주자들이 세대와 정치성향을 넘어 지난 30여 년간 보여준 입장과 태도는 실로 놀랍다. 이들이 보여준 일관되게 부정적인 평가, 분석, 예측과는 정반대로 실제 당사자인 국제 금융시장이나 유럽의 국가와 시민들은 여전히 유로를 긍정적으로 보고 지지하기 때문이다.
 
달러나 유로, 엔이나 위안 등 어느 화폐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수많은 행위자에 의해 상시 평가를 받는다. 유로는 지난 20년 간 다소의 등락을 경험했지만 달러의 가치와 비슷한 수준(0.8-1.6사이)을 꾸준히 유지해 왔으며 현재 1유로는 1.14달러 수준이다. 정말 구조적 결함이 심각해 언제든 사라져 버릴 수 있는 돈이라면 가능한 일일까.
 
유로에 처음 참가한 나라는 11개국이다. 지난 20년 동안 여덟 나라가 자발적으로 유로에 동참하겠다고 나서 경제 및 금융 기준을 어렵게 맞추어 유로를 도입했다. 그리스, 슬로베니아, 사이프러스, 몰타,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다. 미국 경제학자들의 말이 맞는다면 침몰하는 위험한 배에 올라탄 미친나라가 한 둘이 아니다.
 
국제 금융시장이나 유럽 나라들만 미친 게 아니라 유럽의 시민들도 제정신이 아니다. 작년 10월 유로를 사용하는 나라의 시민 17천명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 조사에 의하면 유로를 채택한 것이 자국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3 이상이고 1/4 만이 불리하다고 판단한다. 이로써 유로에 지지율의 기록이 경신되었다.
 
물론 국제 펀드 매니저나 유럽의 정치인, 관료, 시민들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정도의 지적 수준은 아니니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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