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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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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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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중 경제 쓰나미에 노출된 한국

 

 

경향신문 | 2014-12-28

 

역사는 2014년을 팍스 아메리카나가 끝나고 팍스 시니카가 시작한 해로 기억할 수 있다. 올해는 중국의 구매력평가(PPP) 국민총생산이 처음으로 미국을 넘어서는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공교롭게도 정확하게 100년 전에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팍스 브리타니카의 종말이 시작했었다. 191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의 중심은 유럽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넘어갔다.

 

세계 주요세력의 성장률이 둔화하는 가운데 미국 경제가 독보적으로 활기를 띠는 이 시기에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반문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과거보다는 경제발전의 속도가 줄었지만 중국은 여전히 연 7% 정도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역사적 관점에서 서구의 근대경제가 중국이나 인도의 생산수준을 앞지른 것은 19세기 초다. 이젠 중국이 2세기의 와신상담(臥薪嘗膽) 끝에 서구의 최강대국 미국을 따라잡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적어도 경제의 양적부분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 세계 중심으로의 부상과 새로운 질서의 확보는 어려운 과제다. 왜냐하면 중국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 오더라도 그 과정이 혼란스럽고 비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질서의 축이 넘어가는 과정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참혹한 경제 대공황을 거쳤다. 당시 영국은 세계적 리더십을 발휘할 만한 능력이 부족했고, 미국은 능력은 있었지만 리더십의 의지가 없었다. 세계는 중심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흥 세력이 새로운 질서의 중심으로 나아가다가 주저앉아 실패할 수도 있다. 1950년대 소련은 세계의 절반을 통솔하는 공산권의 리더였고, 경제적으로도 높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게다가 핵무기 개발, 인공위성 발사 등 과학 기술 분야에서도 쾌거를 이루면서 미국을 앞지르는 듯했다. 그러나 반세기도 되지 않아 소련은 지도상에서 사라진 나라가 되었다.

  

세계의 리더이자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덩치만 커서는 곤란하다. 소련이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졌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현재 중국은 세계에서 인구도 가장 많고 경제력도 가장 큰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의 모델로 부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이제 세계 최대시장이 되었지만 차이나 드림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 미국도 범죄와 인권유린의 온상으로 비난받지만 이민자는 줄지어 미국 영주권과 시민권에 매달린다. 유러피언과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뜻이다. 반면 위구르, 티베트, 홍콩, 대만 등 중화권에는 중국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세력이 줄을 잇는다. 공산당 독재가 이제는 중국의 부상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2014년 한국은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경제 파트너로서 중국은 미국과 유럽연합을 합친 것만큼 중요하다. 부상하는 새로운 세계 중심과 동침을 시작한 셈이다. 자유무역협정은 세계 최대 시장에 대한 기회이기도 하지만 중국의 경제 쓰나미에 한국을 송두리째 노출시켜 버린 장치이기도 하다. 대만마저도 망설이는 중국과의 경제 통합에 선뜻 나선 셈인데, 미국이나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 때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잠잠한 국내 여론이 희한하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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