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유럽에 비춰본 동아시아 판세
경향신문 2012-12-02
영국과 프랑스가 국제 자본 유치와 국가 경쟁력을 놓고 한창 설전 중이다. 올봄 좌파 사회당이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승리한 프랑스와 우파 보수당 정권이 지배하는 영국은 본격적인 대립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일례로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연 소득 100만유로 이상인 고소득자에게 75%의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반면 영국의 카메론 총리는 이를 비난하며 외국의 고소득자들이 자국에 올 경우, 낮은 세율로 우대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프랑스 산업재건부 장관 몽트부르는 “집단해고와 공장폐쇄를 동반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세운 인도 자본의 철강 대기업 아르셀로미탈사를 프랑스는 더 이상 환영하지 않는다”는 문제의 발언을 했다. 그러자 런던의 존슨 시장은 “국제 자본을 대환영하는 비즈니스의 수도 런던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철강기업을 일시적으로 국영화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천명하며 협상에 들어갔고, 아르셀로미탈사로부터 해고와 공장폐쇄를 하지 않겠다는 양보를 이끌어냈다.
프랑스와 영국은 중세의 백년전쟁 이후 계속 지정학적 경쟁 세력으로 대립해 왔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판세는 프랑스와 독일이 힘을 합쳐 통합을 추진하는 한편, 영국은 마지못해 불평하며 따라오는 형국이다. 1979년 영국에서 대처의 보수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비즈니스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영국은 프랑스를 압도했다. 노조세력을 약화시키고 탈규제를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의 기업 친화적 정책으로 국제 자본을 유혹했다. 하지만 해외직접투자에서 영국은 여전히 프랑스에 밀린다. 영국으로선 답답한 일이다. 국제 자본은 유럽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영국보다는 유럽통합의 중심 역할을 하는 프랑스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독일 중심의 유럽경제공동체는 1958년 출범했는데 영국은 1973년에야 이에 동참했다. 1999년 시작한 유로 화폐연합에 영국은 여전히 불참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영국의 여론은 자국이 유럽에 속한다는 인식(in Europe)보다는 유럽과 함께 간다는 생각(with Europe)이 강하다. 영국은 유럽과 대등하다는 생각을 하는 셈인데 이는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대영제국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집권 보수당 일각에서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하고 과거의 식민지 국가들로 이루어진 커먼웰스를 중심으로 국가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제적 이익이 정책을 지배한다면 영국은 일찍이 유럽통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것이고 유로화에 동참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은 자신의 문화적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대륙에서 영국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다는 정치적 사실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문화적 동질성이 강한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외교적 선호 또한 영국을 유럽으로부터 떼어놓는 원인 중 하나다. 아무리 영국이 노동보다 기업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도 국제자본은 막무가내다. 세계 최대 규모인 유럽 시장의 중심인 프랑스나 독일로 가거나 적어도 유로존에 있는 아일랜드로 향했던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영국 국내정치에서 유럽 혐오증이 드러날수록 영국에 대한 국제자본의 불안감은 강화된다. 영국이 유럽에서 ‘왕따’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럽의 판세는 동아시아에서도 어느 정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 규모의 중심 시장이 존재하기에 주변국의 경제적 이익은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다. 한국, 북한, 일본, 대만, 몽골,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은 모두 이런 선택의 기로에 있다. 물론 동아시아 판세는 유럽처럼 대륙중심이 민주적인 다수의 국가체제로 형성된 것이 아니며 중국이라는 하나의 공산당 지배 국가로 이뤄졌다. 시장에 적극적 참여가 흡수나 종속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럴 경우 유일한 통제 방안은 주변국 모두가 연합하여 중국과 균형을 맞추는 길이다. 이런 전략적 고민이 대선 정국에서 부재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조홍식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