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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신문]명품의 프랑스, 루이뷔통의 파리

    • 등록일
      2023-08-11
    • 조회수
      55

 

2024 파리 올림픽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예술의 도시답게 파리는 개막식을 창의적으로 치를 예정이다. 답답한 경기장에서 뛰쳐나와 파리라는 도시를 무대로 지구촌의 축제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세계 각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단이 배를 타고 센강을 따라 이동하면 수십만의 관중은 강가와 다리에서 환영한다는 획기적인 구상이다.

 

지난달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한 시름 놓았다. 프랑스의 대표 기업인 LVMH가 파리 올림픽의 프리미엄 스폰서가 되기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올림픽과 같은 국제 행사의 비용은 점점 치솟기 때문에 비즈니스 스폰서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LVMH는 마지막까지 지원 결정을 미루면서 조직위나 파리시,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대한의 혜택을 얻어내려는 전략을 구사했다.

 

 

LVMH라는 암호 같은 명칭은 루이뷔통-모에헤네시의 약자다. 루이뷔통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명품 브랜드로 장신구나 의류 등 패션 제품의 이름이다. 핸드백이나 지갑으로 세계적 명성을 날린다. 모에헤네시는 주류 브랜드로 역시 값비싼 고급술의 명패 역할을 한다. 실제 LVMH 그룹은 75개의 브랜드를 관리하는데 패션의 디올·셀린느·불가리, 보석의 쇼메, 시계의 태그호이어 등을 보유하며 2021년에는 미국의 보석기업 티파니도 인수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 스폰서 계약으로 LVMH는 1억5천만 유로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이 얻는 특혜로는 보석기업 쇼메가 올림픽 메달을 디자인하고 메달은 루이뷔통 상자에 넣으며, 프랑스 선수단은 디올의 옷을 입고 베를루티 구두를 신고 개막식에 참여할 예정이다. 게다가 전 세계 선수단이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파리 전경이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LVMH가 센 강변 루브르 박물관 옆에 재건축한 초호화 사마리텐 백화점이 자연스럽게 부각하여 지구촌 명품족의 구미를 당길 것이다.

 

핸드백이나 패션, 주류를 판매하는 회사라고 우습게 보면 곤란하다. LVMH의 주식 가치는 4~5천억 유로로 유럽 최고이며 대륙의 산업을 대표하는 폭스바겐, BMW, 벤츠 등 독일의 주요 자동차 회사를 다 합한 규모의 2배에 해당한다. 대표기업의 금융 가치로 따지면 열심히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하는 독일보다 핸드백과 샴페인을 파는 프랑스가 더 짭짤한 셈이다.

 

LVMH는 프랑스 대표 주가지수인 CAC40의 20%를 차지한다. 주식시장에서 이 기업의 가치는 이미 프랑스 정부 예산 규모를 넘어섰다. 게다가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과 그 일가는 주식의 무려 48%를 보유한다. 아르노 회장이 미국의 일론 머스크와 세계 최고 부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배경이다. 그는 사실상 프랑스의 종신 경제 대통령의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LVMH가 흥미로운 이유는 미국의 IT산업이나 독일의 자동차 산업과는 다른 유형의 자본주의 선진화의 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독일이 혁신으로 새로운 상품과 시장을 개척할 때 프랑스는 오히려 과거의 가치를 보존하고 되살리는 방식으로 돈을 벌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이 누렸던 사치의 역사를 활용하여 역사와 영혼이 담긴 장소라며 도시를 꾸며 관광객에 팔고, 각종 상품은 옛날식 수제품이라 선전하는 계략이다.

 

프랑스를 화려한 문화와 전통의 성지(聖地)로 만드는 전략의 중심에 자리한 파리는 점점 박물관 도시, 영화 무대로 변해가고 있다. LVMH는 루이뷔통 재단을 통해 새로운 현대적 문화 전시 공간을 만들었고 ‘민중예술전통박물관’ 건물을 ‘LVMH의 집’으로 리모델링하는 중이다. 샹젤리제에는 뷔통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며 퐁뇌프 부근의 사마리텐 백화점을 루브르 박물관과 직접 연결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기업 매출액의 30%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온 관광객이 감탄할만한 도시 규모의 전시장을 만드는 셈이다.

 

 

프랑스의 자본주의는 분명 새로운 단계로 돌입한 듯하다. 슘페터의 분석대로 자본주의는 여전히 창조적 파괴의 길을 가지만, 반드시 옛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프랑스의 명품 자본주의는 독일 제조업의 최신형 자동차나 미국의 지칠 줄 모르는 기술 혁신과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 ‘귀족의 꿈’을 파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전략 속에서 파리지앵은 파리라는 역사의 박물관을 관리하면서 도시가 여전히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수위나 하인으로 전락해 가는지도 모른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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