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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열일곱 소년의 죽음과 폭동

    • 등록일
      2023-07-05
    • 조회수
      65

[조홍식의세계속으로] 열일곱 소년의 죽음과 폭동

 

절대 평등의 이상과 차별적 현실의 괴리
‘이민자 융합 실패’ 프랑스 곪은 상처 터져

 

프랑스가 내전을 방불케 하는 불바다다. 지난주 검문 도중 정차 명령에 불복하고 도주하려던 소년을 경찰이 권총으로 쏴 숨지게 한 사건이 불씨였다. 파리 근교 낭테르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전국적인 반발과 폭동으로 이어졌다. 매일 수백명의 폭도가 체포되었음에도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혼란을 틈탄 방화와 절도가 다반사다. 제한적인 사건이 순식간에 전국적 폭발로 연결되면서 프랑스 사회의 긴장과 치부를 여실하게 드러낸 셈이다.

 

폭동의 제일 큰 원인은 프랑스 사회가 방치한 빈곤과 차별이다. 세계 명품의 전시장으로 화려한 파리의 샹젤리제에서 멀지 않은 근교에는

빈곤 계층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이 널렸다. 가난에 찌든 이들 지역에는 이민 출신 가정이 다수이며 범죄집단도 활개를 치는 열악한 환경이다.

 

이번에 또래친구 두 명과 차를 몰다 죽은 열일곱 살 나엘은 북아프리카 이민 가정 출신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낭테르는 빈곤 지역이지만

이곳을 통과하는 지하철 노선은 샹젤리제와 현대 파리의 상징인 라데팡스와 곧바로 연결된다.

 

프랑스 교외 지역에서 경찰과 청소년은 서로 적대시하는 관계다. 경찰은 각종 범죄가 들끓는 지역을 집중적으로 감시·통제하려는 한편,

청소년들은 무턱대고 자신을 범죄자 취급하면서 인종차별을 일삼는 경찰을 보면 반발심부터 앞선다.

자기 집 코앞에서도 위압적인 검문검색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반(反)경찰 문화는 널리 퍼져 있다.

 

2017년 당시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정부는 경찰 노조의 요청을 받아들여 총기 사용을 수월하게 만드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후 검문에 불응하는 차량에 대한 경찰의 총격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나엘의 죽음도 그 결과다. 특히 총살 장면을 녹화한 동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하면서 불에 기름은 끼얹은 모양새다. 자신을 향해 차가 돌진했다는 경찰의 거짓말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위급한 상황이 아닌데도 발포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정당방어를 내세우기 어려워졌다.

 

몇 가지 구조적 요인도 프랑스를 주기적으로 뒤흔드는 폭동을 설명한다. 하나는 왜곡된 혁명의 전통이다.

혁명의 프랑스는 인류에 자유·평등·박애라는 훌륭한 이념을 선사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국가 권력이나 기존 질서에 대한 모든 저항을 당연하게 여기는 결과를 낳았다.

노란조끼나 연금개혁 반대 운동에서 보듯 프랑스에서 폭력을 동반하는 집단행동은 너무 빈번한 편이다.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절대적 평등의 이상과 차별적 현실의 괴리다. 프랑스 공화국의 평등이념은 인종 통계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사람을 흑백으로 나눠 구분하는 일 자체가 차별의 시작이라는 생각이다.

이처럼 절대 평등이 국가정책의 틀이지만 일상에서 원(原)국민 ‘프랑수아’와 이민 온 국민 ‘무하마드’는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면서 분노가 들끓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민계 청소년들은 과거 식민지 출신이 많아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보상심리가 강하다.

‘눈치 보는 이민자’가 아니라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는 ‘한 맺힌 집단’인 셈이다. 왜곡된 혁명의 전통과 이상·현실의 괴리,

역사적 보상심리에 경찰의 과잉대응까지 더해져 프랑스 공화주의는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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