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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프랑스 정치, 한국 정치

  

경향신문 2012-05-20

  

최근 프랑스 정치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프랑스의 대통령 임기가 7년에서 5년으로 단축되고, 한국과 프랑스의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2007년 실용적 우파를 대표하는 ‘경제 대통령’ 사르코지와 이명박의 당선은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를 같은 주기로 맞추었다. 세계적 경제위기로 좌파만도 못한 경제 성적표를 받은 두 대통령의 임기 말 모습도 닮은꼴이다.

  

이번 달 프랑스는 사회당의 올랑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미테랑 이후 17년 만에 사회당 대통령이 등장했다. 프랑스 6월 총선에서 좌파가 승리한다면 조스팽 내각 이후 10년 만에 좌파 다수당 정부가 들어설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올봄 총선 우파를 대표하는 새누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국회를 장악했다. 따라서 프랑스 정치와 엇박자가 생겨났다. 단임제 덕분에 이명박 정권의 실패를 은폐하고 새로운 인물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총선 결과의 1등 공신은 야권의 자멸적 오만과 독선이라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오랜 기간 두 나라의 정치를 비교하면서 눈에 띄는 관전 포인트를 독자와 나누고자 한다. 우선 좌우 개념의 상대성이다. 프랑스의 정치 지형은 한국보다 훨씬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극우를 대표하는 국민전선은 한국적 기준에서 무척 좌파적이다. 반(反)자본주의적 성향을 가진 국민전선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당연시하는 것은 물론 세계화를 반대한다. 우파 대통령 사르코지도 금융이 지배하는 ‘나쁜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개혁의 담론을 펴는 선두 주자였다.

  

다음은 전통과 원칙의 문제다. 프랑스의 우파는 지난 30여년 동안 선거에서 지더라도 극우와의 연합을 거부했다. 프랑스의 공화주의 전통, 즉 민주성을 의심받는 세력과 연합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지킨 것이다. 이번 6월 총선에서도 전국적 차원의 우파-극우파 연합은 고려사항이 아니다. 반면 한국은 매우 실용적이다.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적과 동지를 가리지 않는다. 민자당 합당, DJP 연합,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 등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목적 달성형 정치가 지배한다.

  

다른 한편 두 나라 정치의 공통점은 좌파의 ‘배신’이다. 내가 1980년대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좌파가 우파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한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미테랑은 자본주의와의 단절을 외치며 당선되었지만 실제로는 프랑스 경제의 자유화를 주도했다. 당시 올랑드는 파리정치대학 경제학 강의에서 시장을 무시하는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한국에서도 대중경제론의 김대중은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주도했고, 혁신적 노무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아버지가 됐다. 배신을 은폐하기 위한 전술은 국경을 초월한다. 미테랑은 이상적 평등 사회 건설을 포기하면서 유럽통합의 깃발을 들었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경제사회 변화의 날개를 대북정책으로 우파와 차별화했다.

  

우리는 정치세력에 속고 당하고 실망하고 분노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모두가 함께 어울려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꿈, 강자가 양보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를 향한 노력은 민주 국가의 핵심가치다. 다만 꿈을 실현하는 방법과 경로에 대해서는 보다 원칙적인 단호함과 함께 실천을 위한 유연한 태도도 필요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라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과는 깨끗하게 결별해야 한다. 동시에 보수세력이라도 복지국가를 추진하면 적극 지지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시급하다. 진영 논리에 따른 성급한 승리 지상주의를 버리고 정치지형을 진보의 방향으로 옮기는 수십년의 장기적 과제를 추진해야 한다. 국민의 정치적 승리는 특정 세력과 정당과 인물의 당선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의 개선과 변화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를 다시 되새기게 하는 시기다.

 

 

조홍식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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