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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의 위기와 기회

 

  경향신문 2011-10-30

 

지난 26일, 유럽연합의 정상들은 브뤼셀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유로 위기’(Euro-crisis)를 극복할 수 있는 묘안을 만들어냈다. 그리스에 큰돈을 빌려준 민간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채권의 50%를 포기하도록 ‘설득’했고, 유럽 은행권의 자본비율을 9% 수준까지 높이도록 결정했다. 특히 4400억 유로 수준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1조 유로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시장은 이튿날인 목요일, 곧바로 위기를 한 고비 넘겼다며 환호하는 듯하더니 하룻밤을 지낸 뒤엔 거창해 보이는 계획이 결국엔 미봉책으로 그칠 것이라는 실망스러운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의 경제학계 역시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이 시대 스타 경제학자인 루비니와 하버드대의 로고프는 유럽의 대책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했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는 유로의 붕괴가 ‘시간문제’라는 악담까지 퍼부었다.

 

하지만 위기의 현장인 유럽의 생각은 좀 다르다. “위기는 유로권으로 하여금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진전을 하게 만들었다.” 이는 유럽연합 정상회의에 참여했던 프랑스 대표단의 결론이다. 유럽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 모네는 유럽을 위협했던 다양한 종류의 위기가 유럽 각국이 힘을 모아 공동 대응을 하도록 만들었고 그것이야말로 유럽 통합의 원동력이라고 이미 오래전에 강조했다.

 

21세기 들어 유럽헌법안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던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은 “정치인들이 유럽 위기의 심각성을 과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유럽연합 전체를 놓고 본다면 공공부채의 수준이나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의 수준은 미국보다 건전한 상황이다. 다만 미국은 ‘연방국가’이고 유럽은 보다 느슨한 ‘연합구조’이기에, 주변부의 문제에 중심부가 과연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해 시장이 불안해하다 보니 반복해서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시장이라는 세력, 즉 국제금융권과 신용평가사 등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들이 보유한 회원국 채권에 대해 유럽연합이 공동으로 책임을 져주는 것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동성 문제에 당면한 회원국 채권을 무제한 인수하겠다는 원칙을 공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트리셰 ECB 총재는 지난 8월부터 이탈리아 채권을 시장에서 사들임으로써 위기의 확산을 방지했다. 다만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런 조치가 일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동 책임은 제한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11월1일에는 프랑스 트리셰의 뒤를 이어 “금융 및 통화 시장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 이탈리아의 드라기가 ECB의 새 총재로 취임한다. 시장 세력이 그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다.

 

26일 개최된 유럽연합 정상회의의 또 다른 의의는 유럽연합 27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이사회와는 별개로 유로를 사용하는 17개국만의 ‘유로권이사회’가 독자적으로 출범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감지한 영국의 카메론 총리는 반발했지만 “유로가 싫어 동참하지도 않는 자가 말이 많다”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핀잔에 침묵해야 했다. 영국을 제외한 나머지 비(非)유로 국가들은 그야말로 유로 참여를 ‘시간문제’로 생각하기에 영국 편에 서지 않았다.

 

끝으로 유로의 위기 해결에 브릭스(BRICS)의 자본을 유치하겠다는 방침은 국제질서 재편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외환보유액 3조2000억달러의 중국은 유럽에 숨통을 트이게 해 줄 수 있는 잠재적 구세주다. 사실 중국은 외환보유액의 대부분을 달러에 의존하는 현 체제에 불안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최대 수출 시장이 유럽이라는 사실도 감안해야 하는 시점이다. 알고 보면 유로의 위기가 유럽의 침체로 이어질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나라가 바로 중국인 것이다. 또한 중국은 세계무역기구에서 시장경제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도 유럽의 지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환율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유럽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는 것이 유익할 것이란 판단을 할 수 있다.

   

조홍식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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