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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 국민에게 갈채를


경향신문 2011-05-01


상아안(象牙岸)이라는 이름을 가진 서부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가 평화와 민주주의를 향한 거대한 걸음을 내디뎠다. 10여년간의 내전과 분열을 딛고 지난해 가을 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와타라 대통령이 권력 이양을 거부하던 그바그보 전 대통령 세력을 누르고 지난달 11일 그를 체포하면서, 합법적 정부가 전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코트디부아르의 새 정부가 내전이 남긴 상처와 앙금을 치유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시 국민에게 통합과 희망을 가져다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이러한 역사적 진보를 가능하게 한 모든 이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종교·지역 감정 유혹 과감히 떨쳐


첫째, 코트디부아르 국민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 코트디부아르 국민의 대부분은 종교적 차이와 지역 정체성, 종족의 구분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시도와 유혹을 과감히 떨쳐버렸다. 지난해 가을 대통령 선거의 주요 후보들을 비교해 보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그바그보는 원래 198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을 주도해온 인사로 기독교가 지배적인 남부 출신이다. 사실 그바그보가 권좌에 오른 것은 민중봉기 덕분이다. 2000년 대선에서 그바그보가 승리했음에도 당시 게이 대통령이 권력 이양을 거부하자 혁명을 통해 국민이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라고 권력자에게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그바그보는 국민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고, 2002년부터 기독교의 남부와 이슬람의 북부가 대립하면서 국토가 양분되는 비극을 초래했다.이번 대선의 1차 투표에서 3위에 머물러 결선 투표에 오르지 못한 후보는 1993~99년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종족·지역·종교 간 갈등을 자극한 베디에 전 대통령이다. 그는 독립 이후 30년 넘게 코트디부아르를 통치한 독재자 우푸에부아니 대통령과 같은 중부 지역 출신으로 회교의 북부를 코트디부아르가 아닌 외국 세력이라고 배제하면서 영구집권을 꿈꾸던 사람이다.


그바그보와 베디에를 누르고 당선된 와타라는 국제통화기금 관료 출신으로 1990~93년 총리를 지냈다. 그럼에도 그는 이슬람의 북부 출신이라는 이유로 코트디부아르 국민이 아니라는 누명을 썼고, 20여년간 베디에와 그바그보 정권하에서 대선 출마 자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10년 국민 다수의 선택은 와타라였다.


둘째, 코트디부아르 국민의 선택이 실현될 수 있게 만든 국제사회의 역할을 환영한다. 유엔과 아프리카연합 등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코트디부아르에서 민주적 선거가 치러질 수 있도록 적극 기여했다. 국토의 분열과 신뢰할 만한 선거인명부가 없다는 이유로 2005년 이후 지연돼온 대통령 선거를 2010년 그나마 가능하게 만든 것은 국제사회의 조직적 지원과 개입 덕분이다. 권력을 향해 경쟁하는 세력의 대립이 너무 치열해 규칙을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경우 제3자의 개입은 객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현명한 개입도 돋보여


국제사회의 역할에 대해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례로 그바그보의 세력을 최종적으로 무력화하고 그를 체포하는 데 프랑스군의 역할이 결정적이었기에 신식민주의라는 비판이 일었다. 프랑스는 과거에 자국에 이로운 정권을 유지하거나 새로 세우기 위해 아프리카에 수많은 무력 개입을 한 ‘더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2011년의 개입은 다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합법정부 수립을 돕기 위한 개입, 유엔 안보리의 결정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 내전의 지속으로 발생할 대대적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간섭,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 반드시 이롭다고만은 할 수 없는 희생에 칭찬을 아낄 이유가 없다. 이에 덧붙여 코트디부아르를 민주적 이행의 궤도에 올려놓는 데 크게 기여한 유엔의 한국인 듀오 반기문 사무총장과 최영진 코트디부아르 특별대표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21세기 국제사회는 만국 독재 체제의 공통 철갑옷인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벗기고, 현명하며 절제된 개입, 민주적이고 인도주의적 간섭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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