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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opinion | 제215호 | 20110424 

북한인권법 빨리 처리하라

전득주 숭실대 명예교수

안타까운 일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씨가 부친의 과거를 사과하러 19일 4·19 국립묘지를 찾았다가 쫓겨났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분열된 채 살아야 할까. 이제는 대한민국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역사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4·19 시절 이승만은 독재자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독립운동가였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초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4월의 그날, 한국외대 2학년이던 나도 시위에 앞장섰다.


4월 민주혁명은 대한민국 발전의 동인(動因)이다. 돌이켜 보면 독재정치, 부정부패 그리고 불의에 항거한 비폭력 민주시민혁명이었다. 이젠 북한에서야말로 이런 혁명이 필요하다. 20여 년 전 동유럽 공산체제 붕괴 당시 우리는 북한의 개혁·개방과 민주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보호막과 김정일 체제의 혹독한 내부 통제로 무산됐다. 요즘 북한 체제는 또 한번 변화의 기회를 맞았다. 트위터·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피플파워에 밀려 중동·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이 잇따라 축출됐다.


이런 소식은 극심한 경제난과 인권 탄압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에게도 확산되고 있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20년 전보다 더욱 혹독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수십만 명이 북한을 탈출했고 한국에만 2만 명이 넘는 탈북자가 살고 있다. 그중 일부는 북한에 사는 친지·가족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의 소통 수단은 바로 중동발 재스민혁명에서 효력을 발휘한 휴대전화와 디지털기기다.


1990년 동독의 공산체제가 붕괴하는 과정에선 내부 요인 못지않게 서독의 빌리 브란트 정권이 일관되게 펼친 동방정책도 작용했다. 수만 명의 동독 탈출자가 동독에 거주하는 교회 지도자와 동독체제 비판가들과 조직적으로 접촉한 데 힘입어 수십만 명의 동독 주민이 라이프치히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공산정권에 맞서 분연히 일어났다. 이들은 동독체제의 개방·민주화를 요구해 이를 관철했다. 독일 통일의 문을 연 건 동독 주민들의 결단과 행동이었다.


대한민국도 대북정책의 중·단기 목표로 북한의 개방과 민주화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서독의 동방정책처럼 북한의 정권과 주민을 엄격히 구분해 주민들의 인권과 인간다운 삶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북한 주민의 굶주림, 의료,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민간단체들의 인도주의 지원을 권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북한 정권의 국지적 도발에 대해선 단호히 대응하되 북한 주민과의 접촉 폭을 넓히기 위해 먼저 2만 명 넘는 탈북자의 인간다운 삶부터 챙겨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시장경제가 북한의 우리 식 사회주의체제보다 월등함을 이해하고 수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이 상당 기간 계속돼야 북한 주민들은 타율적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북한체제의 개방과 민주화에 헌신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전단 살포는 북한 주민의 외부 정보 접촉을 확대시킬 아주 중요한 변수다. 이는 어디까지나 민간 차원에서 비공개로 실시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선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북한인권법을 하루속히 통과시키길 바란다. 우리 4월 민주혁명 주도세력들은 51년 전 4·19 혁명이 성공하리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처럼 북한 민주혁명도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4월 민주혁명 51주년에 즈음해 북한의 민주화를 간절히 소망한다. 북한의 민주혁명이 4·19 혁명의 궁극적인 완성이자 민주통일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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