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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성공 여부는 ‘속도’보다‘방향’이지요


동아일보 교육법인 기자 이태윤(정치외교·09년 졸) 동문






2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충정로역 9번 출구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반듯한 정장 차림으로 출구 앞에서있던그.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꺼질줄 모르는 환한 불을 밝히는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그는 바로‘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신념 아래 일년 내내 현장을 누비며,

바삐
뛰어다니는 기자들 속에서 두 달 동안 수습기자 생활을 해온

이태윤(정치외교·09년
졸)동문이다.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3가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그의 집 주소가 이렇다고 말해도 믿겠다. 지난 두 달간의 수습기자 생활동안
그가 집에 들어간 적이 얼마나 될까. 월요일의 동이 트면 그는 어김없이 새벽 5시 38분에 출발하는 첫차에 몸을 싣는다. 새벽 6시 30분,
충정로에 있는 동아일보사로 출근을 한 그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통 신문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매일 밤 신문사 쇼파에서 잠시 1, 2시간 눈을 붙이는 게 고작이다. 그리고는 금요일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간다는 그다.‘기자가 신문사에서
밤을 지새우고, 바쁜 것이 일상이라는 소문이 사실이었군요.’라는 의미를 담아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기자에게 그가 무언의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이내
이렇게 말했다. “사실 선배 기자들은 집에 제발 좀 들어가라고 하고 누가 시키진 않았지만, 일을 빨리 배우고 싶은 마음에 두 달간 계속 이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거예요.”그는 뒤이어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만약 이게 내가 원치 않았던 일이었다면 일주일에 일곱 시간 밖에 못 자고
다녔던 지난 두 달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7년간의 꿈,
기자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그리며 생각하는 삶, 주말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가 여가 활동을 하거나 여행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그런 평범한 직장인의 삶은 그에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적어도 자신만큼은 남들과 똑같이 주말만을 기다리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평일, 일하는 시간까지도 신나게
즐기면서 할 수 있길 바랐다. 그러던 중 그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찾아냈다. 바로‘기자’라는 직업, 그것이야 말로 그의 가슴을 진정으로 뛰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7, 8년 전, 그가 파릇파릇한 대학 새내기로서 반 학기를 보냈을 무렵이었다. 그 이후로‘기자’라는
그의 꿈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인생의 세 번의 쉼표, 속도보다는 방향찾기
그는
자신의 삶을‘재수인생’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잣대를 들이대 엄밀히 따지고 보면 대학·군대·취업 등 세 번이 남들보다 늦었다. 대학 입시 때도
재수를 했고, 장교 시험에 떨어져 생각지도 않던 현역으로 입대했다. 좁기로 소문난 언론사의 문을 뚫은 것도 역시 재수한 후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생에 중요한 것은‘속도’가 아닌‘방향’이라는 그의 뚜렷한 인생관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 또한
3개월, 6개월 전에는‘내가 뭔가 이루고 성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단다. 그러나 지금은 그동안의 경험들로 인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빨리 뭐가 돼야지’등 스스로에게 압박을 주다보면 오히려 스트레스만 잔뜩 받고 제대로 되는 것은 하나 없다는 것이 그의 인생 철학이다. 즉,
내가 성공을 따르는 것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성공이 절로 따라온다 삶의 지혜를 깨달은 것이다‘. 재수를 해보지 않았으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어쩜 그리 그와 딱 어울릴까.

내 인생의 최대 위기, 흔들린 꿈

몇 년 동안 꿔온 꿈인데 단 한 번도 바뀐 적은 없다 쳐도 설마 흔들린 적은 있지 않을까. 역시나 그에게도 있었다.
언론사에 도전했던 첫 해, 그는 지원한 데서 모두 떨어지는 쓰디쓴 아픔을 맛봤다. 그렇게 1년간의 모든 언론사 공채가 끝이 난 작년
12월초였다. 집이 분당인 그가 학교까지 오가는 데 들인 시간만 매일 왕복 세 시간. 실패를 딛고 일어날 준비를 하려던 시기, 일분 일초가
아쉬웠던 그가 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학교 앞 1.5평(5㎡)짜리 고시원에서 자취하기. 혼자 있기에도 비좁은 그 고시원 방에서
그는 많은 생각을 했다. 한 해가 지나고 모든 언론사 공채가 끝난 시점이었던 작년 12월, 7년을 꿈꾸고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무
것도 이룬 것 없는 현실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니 한 없이 초라해 보이며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고. 내가 원하던 때에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하니‘실패’라 느껴졌단다. 게다가 더 그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던
것은‘과연 내가 기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시작된, 내 의지로가 아니라 외부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기자’라는 꿈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었다. 꿈에 대한 회의가 물 밀듯이 밀려왔던 그때가 자신의 인생 최대의 힘들었던 시기라고 말하는
그다.

I have a dream
어떤 이는 회의감에, 또
어떤 이는 불안감에 빠져 그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결국 갇혀 버리곤 한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섰다.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그가 꿨던 꿈이었다.‘기자’라는 꿈을 가졌을 때부터 그는‘기자’·‘저널리즘’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은 뭐든 구해서 읽고는
맨 뒷장에 그가 읽으면서 느꼈던 점들에 대해 적었다. 그렇게 한창 자괴감에 빠져 힘들어하고 있었던 시기, 대학생 초반에 읽었던 저널리즘 관련
서적들과 중학생 때 읽었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I have a dream》, 책 맨 뒷장에 자신의 생각을 적었던 글들을 곱씹어보면서 다시 힘
을 낼 수 있었다. 그의 은사로부터 온 한 통의 메일 또한 그의 마음을 울렸고, 다시금 시작 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줬다. “어릴 적에는
마음이 급해서 목표의 달성 또는 실패라는 잣대로만 생각하기 마련이지. 인생에서 잃어버린 시간은 없어. 노력하는 만큼 자신이 성장하는 거야.
내공이라고나 할까. 한 번 쌓인 내공은 10년 뒤, 아니 그 훨씬 뒤에도 힘을 발휘하게 될 거야.”

‘행복하고
싶어서’기자가 꿈이었고, ‘행복한’기자가 되는 게 꿈이다
7,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기자’라는 꿈을 품고 있었고, 그
꿈을 이뤄 동아일보 교육법인 수습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지금도 그는 이 질문이 가장 어렵단다. 누군가가 그에게“왜 너는 기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던질 때만큼 곤혹스러운 적이 없다고. 그래도 그는 꽤 그럴싸한 답변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행복하고 싶어서.” 그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질문이 또 하나 있다. 바로“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예전의 그는 약자를 위한 저널리즘을 동경해왔기에
사회부 기자가 돼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것을 꿈꿨었다고. 그러나 지금 그의 생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행복한 기자’가 되는 것,
소박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큰 꿈을 꾸고 있었다.

“넌 소설가가 아니라 기자다!”

그가 두 달간 수습기자로서 활동해오면서 오보를 낸 적이 있다. 한 영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학생들과 인터뷰를 해 그들의 학습 노하우에 대해
알려주는 기사였다. 그 중 한 학생은 아버지의 직장 발령이 해외로 나면서 온 가족이 다 같이 외국으로 나갔었다. 아버지가 해외 발령 받은
2년
의 세월 동안 현지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는 이렇게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기사를 쓸 때 이 학생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어학연수’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학부모한테서 기사가 오보라고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이게 뭐가 큰 문제지?’라는 아마추어적인
안일함으로 오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대표에게 따라 불려가 호되게 혼났다.“넌 소설가가 아니라 기자다!”어학연수는 자비를 내서
영어교육만을 목적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약간의 의미차이를 세심히 파악하지 못해 발생한 그의 첫 실수였다.


결과론적인 생각은 절대 금물
후배들을 바라보면서 그가 느낀 가장 큰 안타까움은 후배들이 너무나도 ‘결과론적인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외부 기자활동, 전국 국제학 포럼 등을 나가봐도 참가자들 중 우리학교 학생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지레 겁먹고 도전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단다. “언론사지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그는“합격률이 높은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 등은 지원자가
엄청나게 많은 반면에 우리학교 학생들의 지원율은 정말 낮은 수준이다.”며“그러니 자연스레 합격률도 높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거듭 후배들에게 당부한다.“제발 자신의 꿈을 축소시키지 말라.”고.“학생들의 선택 폭이 보다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야마가 뭔데?”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자신이
보는 시험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는가’란다. 이는 그가 계속적으로 강조했던‘방향성’과 관련이 깊다. 또한 두 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역시나‘글쓰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 논리적으로 글 쓰는 것이 참 중요하단다. 글을 조금 쓴다고 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대개
가분수 형의 글을 많이 쓴다. 이런 글에서는 변죽만 울리기 십상이라고. 자신의 잘남을 뽐내기 위해 비유·예시 등을 들며 서론을 매력적으로
써내려가는 사람들이 많다. 멋 부리기식, 감상적인 글들도 많다. 그러나 글쓰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탄탄한 본론’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거듭 강조한다. 항상 기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있다.“그래서 야마가 뭔데?”다시 말해“대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뭐야?”
그는 자신의 이름 앞에 최초·최고·최연소 등의 수식어가 붙어 있지 않음에도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것이 현실이 된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을 달고 기사를 쓰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게 됐다는 그. 기자라는 게 항상 시간에 쫓기는 존재지만 그 속에서도
엄중함을 갖춰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는 그. 언론고시를 준비할 때부터 책상 앞에 붙여놓고 매일 되뇌었다는‘바를 정(正)’자에서“너의 발전을
위해 너 자신을 비우라”는 애정 어린 선배 기자의 충고로‘빌 공(空)’자로 갈아탔다는 그. 앞으로 그가 어떤 언론인의 길을 걸어갈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간절히 바라는 것은 한 달 후 수습기자의 딱지를 떼고‘정기자’가 되더라도 지금처럼 언제나‘행복한 기자’로 남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천주연 기자 cielcjsly@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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