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세계속으로] ‘검소한 개미’ 독일의 한계
러 가스 끊기고 中 車산업 발전으로 궁지
재정 건전성 고수 대신 정책적 대응 필요
유럽을 대표하는 독일 경제가 단단히 병든 모습이다. 독일의 경제 규모는 2019년 코로나 위기 이전과 비교해 성장의 둔화와 퇴보로 커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2023년에 이어 올해도 독일은 마이너스 성장에 직면할 예정이다. 독일은 코로나를 극복하고 세차게 성장 궤도에 다시 돌입한 미국은 물론, 심지어 유럽 안에서 이웃 프랑스나 폴란드에도 뒤처지는 환자의 신세다. 독일 경제의 엔진이 꺼지기라도 한 듯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0여 년의 지정학적 변화가 가장 자주 지목되는 독일의 위기 원인이다. 우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독일이 값싸게 활용하던 러시아 가스라는 에너지 젖줄이 끊어졌다. 에너지 비용의 급증은 제조업에 크게 의존하는 독일 경제 동력을 짓누르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침략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 경고에도 독일은 러시아 가스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가 곤경에 빠진 꼴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갑자기 벌어진 사건이라면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조금 더 구조적이다. 제조업의 수출과 해외 투자에 크게 의존하는 독일은 한동안 중국의 장기적 부상에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선진국이었다.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중국 시장으로 수출과 현지 생산 부문에서 모두 큰 이익을 누적해 왔다.
하지만 중국 자체의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면서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한때 중국 시장의 최대 자동차 생산 기업이었으나 시장 점유율은 2019년 19%에서 2024년 14%로 줄었다. 최근 중국이 침체에 빠지면서 포르셰, 벤츠, BMW 등 고급 브랜드의 중국 판매도 크게 주는 추세다. 중국 시장에서 독일의 입지는 줄어들고, 안방 유럽에서조차 중국의 위협을 받음으로써 독일 산업은 궁지에 몰렸다.
러시아와 관계가 단절되고 중국과는 소원해지면서 독일은 유럽에서 지정학적 변화의 충격을 가장 강하게 얻어맞은 나라다. 독일의 사례를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위기 극복을 가로막는 제도적 한계도 발견할 수 있다. 독일은 유럽에서 재정 건전성을 절대적 가치로 숭배하는 특별한 나라다. 2010년대 나라 살림의 균형을 맞춰 운영하는 ‘개미 독일’은 마구잡이로 돈을 써대는 ‘베짱이 그리스’나 이탈리아를 훈시하곤 했다.
독일은 헌법을 통해 구조적 재정 적자를 GDP 대비 0.35%로 제한하는 엄격한 사고와 정책의 나라다. 어떤 정부라도 적극적인 장기 투자에 나서기 어려운 조건이다. 그리스처럼 재정 포퓰리즘으로 나라 살림을 망치고 빚더미에 올라앉는 정책도 문제지만, 독일처럼 적자가 두려워 미래를 위한 인프라 투자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행태도 심각하다. 독일의 통신이나 교통 인프라는 낙후한 상황이다. 2024년 미국이나 프랑스의 재정 적자는 국민총생산 대비 6% 수준으로 독일의 1.9%와 대조적이다.
사회적 시장 경제 모델로 자유와 복지를 동시에 누리는 인간적 자본주의의 성공 사례였던 독일은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독일이 검소함의 원칙에만 집착하는 개미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조금 더 유연한 사고와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위기가 닥치면 적자 살림을 꾸리기도 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에는 빚을 지는 위험도 감수하는 태도 말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