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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유럽톺아보기] 돌아온 트럼프, 궁지에 몰린 유럽

    • 등록일
      2024-11-15
    • 조회수
      70

돌아온 트럼프, 궁지에 몰린 유럽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다시 당선됨으로써 세계 미래의 불확실성은 대폭 강화될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를 앞으로 4년간 책임질 지도자가 예측 불가능하기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만 3년간 계속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24시간 안에 끝내겠다”라고 장담하는 인물이니 얼마나 허풍쟁이인지는 알만하다. 그는 또 자신이 얼마나 미쳤는지 세상은 잘 알기 때문에 중국이 감히 대만을 침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기에 트럼프의 복귀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불행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로운 다자주의 국제 질서를 만들어 유지해 온 기둥이다. 미국은 유럽과 동아시아라는 두 지역과 동맹을 통해 핵우산으로 안보를 보장하며 경제적 번영을 공유하는 시장 경제를 발전시켰다. 트럼프는 지난 80여 년 동안 상당한 안정과 번영을 가능케 한 국제 질서를 본격적으로 무너뜨릴 태세다.

 

트럼프 1기는 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를 잘 보여주었다. 트럼프는 기존의 국제 질서나 관행, 전통을 무시한다. 그는 유치하고 충동적인 인물로 아부에 취약하고 자신이 세상을 바꾸는 능력이 있다고 으스대고 싶어 한다. 전통적인 동맹국은 트럼프의 돌발적 외교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전통적 적국은 트럼프가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기회로 다가오는 이유다. 중국이 커다란 예외지만 말이다.

 

권위주의 국가일수록 트럼프의 귀환을 환영하는 분위기고, 민주국가는 그의 당선에 실망하고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당선에 축배를 드느라 모스크바에서는 샴페인이 부족했고, 우크라이나에서는 탄환이 부족할 미래를 걱정했다는 농담이 유럽에서 떠돌았다.

 

유럽은 미국과 역사와 문화, 정치와 경제적 바탕을 공유하는 서방의 파트너다. 트럼프 1기에 미국의 적대적 태도와 정책에 충격을 받았으나 일시적인 위기라고 자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2기를 통해 지난 80년 동안 미국과 유럽이 함께 꾸려온 국제 질서가 붕괴하는 상황을 우려하게 되었다.

 

프랑스 르몽드 지의 한 기사는 “미국은 언젠가 구대륙을 떠날 것”이라는 드골의 예언을 환기하며 안보 분야에서 유럽의 위기의식을 반영했다. 트럼프가 돌아와 미국이 유럽에서 군사적으로 손을 뗀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 또한 없는 형국이다. 달리 말해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해 제공하던 안전 보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점차 약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트럼프의 협박이 유럽에 위기감을 불어 넣은 것은 확실하다. 2024년 나토의 32개 회원국 가운데 23개국은 이제 국내총생산 대비 2%의 국방비 지출 수준에 도달했으니 말이다. 물론 이런 결과가 단순히 트럼프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략과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이 더 강력한 국방비 증액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나라 가운데 폴란드는 올해 GDP의 4% 이상을 국방비로 할애할 예정인데,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2%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한다. 전쟁의 위협이 강할수록 국방비를 급속히 높였다는 의미다.

 

당장 유럽에 떨어진 발등의 불은 우크라이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이 2022년부터 제공한 군사 지원만 640억 달러에 달한다. 매년 프랑스나 독일이 각각 제공하는 30~40억 달러 수준의 군사 지원으로 미국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유럽연합의 외교안보대표 조셉 보렐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EU의 지원은 탄탄하다고 설명하고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가 프랑스를 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양국의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미국의 불확실성을 보상할 만한 수준이 아님은 다 알고 있다. 향후 우크라이나 지원의 계산서를 놓고 미국과 유럽의 ‘밀당’이 예상되는 배경이다.

 

유럽이 미국에 크게 의존하는 안보를 이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은 트럼프 1기부터 대두된 명제다. 이런 거시 역사적 필요성을 강조하며 기치를 든 지도자는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으로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이후 러시아의 충격적인 침략 행위, 그리고 트럼프의 귀환으로 유럽의 군사적 자립은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 다만 올 유럽의회 선거와 총선에서 마크롱이 패배함으로써 국내 정치적 기반이 흔들렸고, 따라서 유럽 안에서 마크롱은 예전과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군사와 외교의 강대국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현실도 유럽의 자립에는 부정적 요인이다.

 

유럽은 경제 분야에서도 트럼프의 복귀로 큰 충격을 받을 예정이다. 관세 인상에 기초한 트럼프의 보호주의가 진행된다면 중국에 강력한 타격을 입히겠지만 유럽도 심각한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국제 시장에 훨씬 개방적인 경제 구조가 있으며 중국처럼 수출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미국 시장이 닫히는 경향이라면 유럽과 중국의 경쟁은 더 심화할 예정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유럽은 미국과 다양한 경제 분쟁이 불거질 것으로 예측한다. 특히 유럽의 주요 수출 부문 가운데 명품 산업, 농산물과 식품, 항공우주 분야의 대립이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유럽연합이 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미국의 IT분야 대기업에 벌금이나 세금을 부과하고 각종 규제를 강요하던 관행에 트럼프는 미국 기업의 편을 들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안보 분야에서 프랑스의 리더십이 사라진 것과 유사하게 경제 부문에서 독일의 리더십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의 당선 소식과 함께 독일에서는 올라프 숄츠 총리의 연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숄츠는 원래부터 유럽 차원의 리더라고 여겨지지는 않았으나 독일의 혼란은 유럽의 무기력을 악화할 수 있다. 독일은 조기 총선을 치르는 불안한 정국에 돌입했고 내년 예산의 통과조차 불확실한 안개 국면이다.

 

트럼프가 돌아와 유럽은 분명 궁지에 몰렸다. 러시아는 북한까지 동원하여 침략의 촉을 더욱 날카롭게 들이민다. 유럽 내부 프랑스의 마크롱은 이 빠진 호랑이가 되었고, 독일의 숄츠는 아예 무너진 연정의 유령일 뿐이다. 사면초가의 유럽연합인 셈이다.

 

그렇다면 “위기가 통합을 가져온다”는 유럽의 경험은 이제 끝난 것일까. 새로운 트럼프 시대에 유럽 대륙에서 기댈만한 리더십은 트럼프 1기를 경험한 세 인물에 집중한다. 재임에 성공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프랑스와 독일의 취약성을 역으로 활용해 유럽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추진한다면 위기 극복의 창을 열 수 있다. 장기간 네덜란드 총리를 역임한 뒤 지난달 나토 사무총장으로 부임한 마르크 뤼터도 노련한 정치인으로 대서양 관계의 위기를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폴란드의 도날드 투스크 총리 또한 “지정학적 하청의 시대는 끝났다”며 유럽 안보 강화의 기치를 들었다. 프랑스나 독일보다는 작으나 폴란드는 러시아와 대립하는 유럽 동부 전선의 중심 세력이다. 보다 전반적으로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울수록 미국의 퇴진을 걱정하며 유럽 국방의 강화를 지지하는 모습이다. 발트 3국, 폴란드, 루마니아를 비롯해 나토에 새로 가입한 핀란드와 스웨덴 등은 더 많은 군사 지출과 국제적 연대만이 러시아의 야욕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굳건히 믿는다.

 

북한의 전쟁 참여로 러시아와 북한의 침략 동맹이 국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구체적 위협이 되었음에도 안일한 평화주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이 안타깝다. 중립 평화의 상징이었던 스웨덴과 핀란드도 돌변하게 만든 충격적 현실 앞에서도 나만 가만히 있으면 안전하다는 착각이 횡행하는 한반도가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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