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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신문]유럽식 리더십과 폰데어라이엔의 정치적 수완

    • 등록일
      2024-09-19
    • 조회수
      47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놀라운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며 유럽 대륙의 ‘여제(女帝)’로 부상하고 있다. 5년 전 집행위원장에 처음 선출되었을 때 폰데어라이엔은 유럽 정치의 마비 상황에서 어부지리(漁父之利)로 급부상한 대안에 불과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정부에서 장관을 지내기는 했으나 유럽 정치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었다. 2024년 현재 폰데어라이엔은 집행위원장 재임에 성공하여 유럽을 대표하는 권력자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폰데어라이언은 집행위원장 첫 임기에서 유럽 역사에 획을 그을만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코로나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유럽연합이 나서 회원국들의 정책을 조율하고 백신을 공동으로 구매·분배하는 능동적 역할을 자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도 피난민을 신속히 수용하면서 유럽의 단합을 도출하는 데 공헌했다. 무엇보다 유럽의 공동채권 발행을 통해 재정 통합의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에서 대중에게는 생소해도 전문가 사이에서는 결정적으로 평가되는 정책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 6월 유럽 의회 선거는 폰데어라이엔의 재임 도전에 탄탄한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극우 세력이 유럽 전역에서 성장하는 가운데 폰데어라이엔이 속한 기독교 민주주의 세력은 유럽 최대 정치 세력의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민주의의 선전(善戰)이 폰데어라이엔의 업적은 아닐지라도 유럽 전역에서 기민 세력의 유지는 그의 재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어 폰데어라이엔은 정치 세력의 규합과 회원국의 동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정치 세력으로는 자신이 속한 기민주의와 중도 좌파인 사회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주의 세력을 모아 유럽 차원의 집권 연합을 형성했다. 폰데어라이엔은 또 극우 가운데 그나마 온건한 세력인 유럽보수개혁(ECR)과 녹색당을 포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실제 녹색당은 유럽 의회에서 폰데어라이엔을 집행위원장으로 신임하는 데 표를 더했다. ECR에 속한 이탈리아 극우 조지아 멜로니 총리와 폰데어라이엔의 관계도 큰 대립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정치 세력의 오른쪽 극우부터 왼쪽의 사회주의 세력까지 한 지붕 아래 묶어 내려는 시도다.

 

지난 17일 폰데어라이엔이 발표한 유럽 집행위원회 구성은 회원국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음을 증명해 주었다. EU는 회원국 정부가 한 명씩 집행위원을 지명하면 집행위원장이 담당 부서를 지목해 주는 시스템이다. 이번에 발표된 집행위원의 명단은 프랑스 르몽드지가 ‘예스맨’의 모임이라고 부를 정도로 폰데어라이엔의 친정 체제다.

 

 

폰데어라이엔은 프랑스가 지명한 집행위원인 티리 브르통과 올 상반기까지 잦은 충돌을 일으켰었다. 기민주의 폰데어라이엔과 자유주의 브르통의 정치적 성향도 달랐고, 무엇보다 브르통이 유럽 강대국 프랑스의 집행위원으로 정치 경험이 많은 거물급이기에 두 거인의 충돌은 구조적이었다.

 

지난 6월 유럽 의회 선거가 끝나고 신임 집행위원장을 결정할 무렵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경험과 카리스마를 지닌 브르통을 프랑스 몫의 집행위원으로 유지하려는 생각이었다. 폰데어라이엔은 자신과 충돌하는 거북한 인물이지만 브르통을 수용함으로써 마크롱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7월 총선에서 마크롱은 패했고, 따라서 브르통 대신 자신의 심복 스테판 세주르네 외무장관을 유럽 집행위원으로 파견하고 싶어 했다. ‘정치 9단’ 폰데어라이엔은 이 기회를 포착하여 경쟁자 브르통을 제거하고 마크롱의 심복을 영입하여 새 집행위원회를 꾸렸다.

 

원래 유럽 정치의 핵심은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쌍두마차다. 그런데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에 패배한 뒤 이빨 빠진 호랑이 격이다. 충실한 심복을 유럽 집행위원으로 심어 유럽 정책만이라도 자신이 챙기려는 상황이다.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국내 연정을 관리하는 일만도 벅차 보인다. 유럽까지 영향력을 발휘할 만한 여유가 보이지는 않는다. 폰데어라이엔이 돋보이면서 부각될 수밖에 없는 유럽 정치의 구조다.

 

 

정치의 파도에 몸을 실어 적응하는 유연성, 지지의 폭을 넓히려는 일상적 노력, 경쟁자나 적도 외면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대화하고 포용하려는 유럽 여제 폰데어라이엔의 정치 리더십은 먹구름 가득한 한국의 정국에 비춰보니 한가위의 달처럼 빛난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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