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했던 스페인, EU 가입 후 고속성장
관광객·외인 투자 ‘쑥’… 중남미 이민자 급증
마드리드가 유럽을 대표하는 국제도시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유럽을 상징하는 대도시는 파리나 런던이다. 이들은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Cosmos)와 도시라는 의미의 폴리스(Polis)를 합쳐 ‘코스모폴리스’, 즉 세계의 중심이라 불렸다. 마드리드는 아직 런던이나 파리에 도전장을 내밀기에는 역부족이나 경제 수준은 이미 로마를 뛰어넘었고 인구는 700만명으로 400만∼500만 규모의 베를린을 앞섰다.
국가의 경제 규모를 비교한다면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스페인보다 크다. 그러나 19세기 말에서야 한 나라로 통일된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는 분산형이다. 독일에는 베를린뿐 아니라 뮌헨,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등이 경쟁하고, 이탈리아도 로마 이외에 밀라노, 나폴리, 토리노 등이 어깨를 견준다. 중세부터 런던과 파리를 수도 삼아 발전한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다른 모습이다.
스페인은 독일·이탈리아보다는 영국·프랑스와 가깝다. 1561년 국왕 펠리페 2세가 수도로 삼은 뒤 마드리드는 줄곧 스페인의 중심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16∼17세기의 스페인은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었고 따라서 마드리드는 당시 명실상부한 코스모폴리스, 즉 세계의 수도였다. 하지만 18세기부터 스페인의 국세는 기울고 마드리드도 세계는 물론 유럽의 중심에서조차 벗어나는 운명을 겪어야 했다.
마드리드의 부활은 1986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유럽연합(EU) 가입에서 비롯되었다. 이베리아반도의 두 나라는 유럽 시장을 활용하여 고속 성장을 이룩했고,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나 리스본 등 경쟁 도시를 제치고 유럽의 새로운 중심으로 커 왔다. 1980년 스페인 경제에서 마드리드의 비중은 15%였으나 2022년 19%까지 증가했다. 최근 2018∼2022년 시기에 스페인으로 향한 해외직접투자의 71%를 마드리드 지역이 독차지했고,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는 11%에 불과했다.
관광 대국 스페인의 수도답게 마드리드의 3대 미술관 프라도, 레이나 소피아, 티센보르네미사의 방문객 수는 연간 700만명 규모다. 세계적 축구 클럽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베르나베우 경기장 방문객도 매년 100만명이 넘는다. 과거에는 스페인이라면 태양이 작열하는 해변과 별장을 상상했으나 이제 문화나 스포츠의 중심으로 마드리드가 우뚝 서게 된 셈이다.
마드리드는 또 ‘라틴아메리카의 수도’로 부상하고 있다. 정치가 불안한 중남미의 부호들이 돈을 싸 들고 마드리드로 몰려드는 덕분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적 정서에 힘입어 오랫동안 미국의 마이애미가 하던 역할을 마드리드가 대체하게 되었다는 소문이다. 마드리드에 현재 3명의 전(前) 멕시코 대통령이 거주하고 있을 정도다. 같은 언어의 편리함 덕분에 라틴아메리카로부터 일반 이민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마드리드의 외국인 인구는 2016년 이후 20%나 늘었다.
어떤 나라나 도시가 흥하고 망하는 요인은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이다. 그러나 역동적 발전의 가능성은 한 지표만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외부인들이 진입하려 하는가, 아니면 도망가는가. 마드리드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부자와 인재, 노동자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동안 동아시아를 대표하던 국제도시 홍콩은 외국인들이 고개를 설레며 탈출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