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 반복된 이·팔 인질 협상
휴전 조건 내건 이… 하마스도 딜레마에
인질 협상의 타결로 가자지구에 일시적으로 포화가 멎었다.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 가운데 50명을 풀어주는 대가로 이스라엘은 150명의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석방한다고 합의한 결과다. 양측은 4일간의 휴전도 결정했다. 인질이 해방되고 공격행위가 중단된 일은 긍정적이지만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일명 ‘인질의 딜레마’ 때문이다. 부모가 전 재산을 주고 빚을 져서라도 자식을 유괴범으로부터 구하려 하듯, 시민의 생명을 중시하는 민주 정부는 커다란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국민을 구해내려 노력한다. 납치와 인질의 역사가 잘 보여주듯 사람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수록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에 덧붙여 현재의 인질 협상은 미래 비슷한 범죄 행위를 장려하는 셈이다. 국제 사회에서 대부분 정부가 인질을 잡는 테러집단과 협상을 거부하는 원칙을 내세우는 이유다. 이스라엘에서도 일부 시민단체가 정부의 인질 협상에 반대하며 대법원 판결까지 끌고 간 사례가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인질 테러 사건에 연루되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이 팔레스타인 테러집단에 인질로 잡혀 사망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1974년 10대 청소년 100여명이 국내에서 인질로 잡힌 사건, 1976년에는 이스라엘에서 파리로 향하는 항공기를 우간다 엔테베 공항으로 납치한 사건 등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대규모 인질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테러집단과 협상을 거부하는 정책이 핵심이었고 희생이 따르더라도 테러리스트들을 사살하는 군사 작전을 펴곤 했다.
이스라엘이 본격적으로 인질 협상에 나선 계기는 역설적으로 1980년대 군인들이 인질로 잡히기 시작한 다음이다. 이스라엘은 남자는 물론 여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나라다. 적대적 국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군대가 중요하고, 군인의 보호가 최우선이다. 인질로 잡힌 군인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누가 군에 입대하겠는가.
예를 들어 1983년에는 6명의 군인과 4000명의 재소자를 맞교환했고, 1985년에도 3명의 군인을 구하기 위해 1150명의 수감자를 석방했다. 2006년에 인질로 잡힌 질라드 샬리트라는 군인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2011년 1000명이 넘는 수감자를 석방한 적도 있다.
지난달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형태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주변의 이스라엘의 군대와 군사시설만 선택적으로 공격하고 철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했고 여성, 아동, 노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200명이 넘는 인질을 잡아갔다. 이스라엘의 전폭적인 반격을 유도함으로써 민간인 학살을 포함한 가자의 파괴를 초래하고, 이를 통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여론전을 펼치려는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단 한 명의 군인과 1000명의 수감자를 교환한 최근의 협상에 비춰보면 이번에 50명의 인질과 150명의 수감자 교환은 현격한 변화다. 전쟁이 시작되어 이스라엘 공격의 압박이 강했고 카타르·이집트·미국 등이 중재하는 국제적 협상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인질 10명을 풀어주면 하루씩 휴전을 늘려준다고 한다. 이젠 하마스도 ‘인질 딜레마’ 앞에 놓인 셈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