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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K-대통령의 파리행을 보며

    • 등록일
      2023-06-27
    • 조회수
      116

[조홍식의세계속으로] K-대통령의 파리행을 보며

佛, 겸손과 보편성 바탕 문화강국 자리매김
우리도 ‘K’ 떼고 인류 전체 지향 태도 필요

 

한국과 프랑스 정상이 파리에서 만난다. 정치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이어 문화의 비상을 추구하는 한국에 무척 의미 있는 기회다.

프랑스는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 대국이며 우리가 꿈꾸는 문화 강국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문화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유·평등·박애의 혁명 정신이 있다.

개방적인 정치와 사회 속에서 다양한 문화가 만개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루브르라는 왕궁을 개방하여 공개함으로써 근대박물관이라는 새로운 문화 세상을 열었다.

프랑스는 경제와 문화를 엮는 데도 앞장섰다. 프랑스는 과학·기술과 경제력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만국박람회라는 축제를 개발했고

파리의 상징이 된 에펠탑은 19세기 프랑스 국력의 총체적 산물이다. 유럽에는 과거 프랑스보다 문화적으로 앞섰던 이탈리아도 있고,

경제력이 강한 독일이나 영국도 있는데, 왜 프랑스가 대표적인 문화 대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보편과 겸손에 있다. 봉건 프랑스의 해방을 추진하면서도 프랑스는 인류의 보편성을 앞세운 인권의 개념을 제시했다.

따라서 세계의 민주 투사들에게 프랑스는 혁명의 조국으로 부상했다. 루브르는 단순히 프랑스 문화만의 전시장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부터 시작하는 인류 문명의 보루로 구상됐다. 파리에서 여는 박람회도 프랑스 박람회가 아니라 만국박람회로 계획한 것과 같은 이치다.

 

보편을 지향하는 프랑스는 자칫 자만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무슨 권리로 프랑스가 인류의 깃발을 휘두르느냐”는 반발이 당연하다.

세계 지배를 향한 제국주의를 은폐하기 위한 술수라고 비난받기도 한다. 그러나 프랑스가 보여 주는 문화적 겸손은 보편을 감싸 안는다.

프랑스는 자신의 문화적 뿌리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있고 더 올라가 성경의 나라 이스라엘에 있다고 믿고 외친다.

자국 영토의 숲속에서 문화적 기원을 찾는 나치 독일과는 다르다. 프랑스는 예루살렘, 아테네, 로마를 뿌리로 생각하고 숭배하며,

학교에서 여전히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친다.

 

프랑스의 철학자 레미 브라그는 ‘유럽, 로마의 길’에서 유럽의 문화적 정체성이 로마 시대에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로마는 예루살렘(기독교)과 아테네(그리스 문명)의 유산을 수용·인정·숭배하는 초석 위에 자신의 문화를 발전시켰고,

이를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했다. 선진 문화를 겸손하게 수용해 보편적으로 확산하는

로마의 방식을 프랑스가 이어받아 세계로까지 범위를 넓혔다는 설명이다.

문화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디선가 받아서 다른 곳으로 연결해 주는 로마의 수로(Aqueduct)와 같다는 뜻이다.

 

보편과 겸손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통해 한국을 비춰 본다면 어떤 길이 열릴까.

우선 여기저기 붙은 K를 떼어 내고 인간 자체, 인류 전체를 지향하려는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K의 과용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열등감을 드러낼 뿐이다. 오히려 2023년 한국의 문화란 인도 갠지스강과 중국 황허는 물론

예루살렘, 아테네, 로마, 파리, 런던, 워싱턴, 도쿄가 뿌리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겸손의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한국만큼 동·서양 문화의 젖을 골고루 먹고 자란 문화는 드물고 다양성이 평화롭고 유익하게 공존하는 사례도 귀하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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