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민주화·시장경제·법치 전제 통합 이뤄
정치·경제 유사하지 않으면 ‘통일’은 먼 길
1963년 당시 유럽경제공동체(EEC)와 대한민국은 둘 다 국제사회에 신참이었다.
한국은 해방과 독립, 건국과 전쟁, 시민혁명과 군부 쿠데타 등 다사다난한 과정을
겪는 중이었고, 유럽도 민족 국가를 넘는 국제사회의 새로운 행위자로
막 일어서는 초창기였다.
지난 22일 유럽연합(EU)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샤를 미셸 상임의장이
수교 60주년 한·EU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했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세계의 모범으로 우뚝 섰고, 석탄 철강 무역 등 경제적 협력으로 시작했던 유럽경제공동체도
이제는 유럽연합이라는 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해 지역통합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유럽통합은 통일을 지향하는 한반도에 두 개의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작은 것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넓은 분야로 협력을 확산해 가야 한다는 점이다.
유럽은 1951년 석탄이나 철강 산업의 협력으로 시작해 점차 무역과 농업, 원자력 등으로
분야를 넓혔고, 이제는 하나의 의회를 구성하고 화폐도 단일화하는 고도의 통합을 이뤄냈다.
일명 신기능주의적 통합 방식으로 아무리 작은 분야라도 협력을 하면서 더 광범위한 협력의
필요가 발생한다는 자연스러운 이치다. 이를 학술적으로는 스필오버,
즉 연쇄작용이라고 부른다.
둘째, 통합의 대상을 정할 때 확고한 조건을 요구한다. 유럽통합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라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권위주의 정권이 지배하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그리스가 1980년대 민주화가 된 다음에야 유럽에 가입할 수 있었던 이유다.
마찬가지로 1990년 공산권에서 벗어난 중·동유럽 국가들도 민주화, 경제 자유화, 법치국가의 원칙을
올바로 세운 뒤에야 2004년부터 2013년 사이 EU에 가입했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는 오랜 기간 착각 속에서 머물러 있었던 듯하다. 관광이나 산업교류 등의
신기능주의적 협력이 자동으로 심화·확산하여 통합으로 이어진다는 착각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독재자가 좌지우지하는 권위주의 체제이며 시장이나 법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나라라면 신기능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정치경제체제가 유사하지 않다면
장기적 통합은 기대할 수 없다. 지난 30여년 세계화의 시대에 미국·유럽이 아무리 러시아·중국과
긴밀한 경제 의존 관계를 만들어도 하나의 질서로 통합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한반도의 관점에서 특별히 관심을 끌 만한 유럽통합의 역사는 1990년부터 2004∼2013년 사이
중·동유럽에 대한 정책이다. 유럽연합은 20여년 동안 구(舊)공산권 국가를 지원하면서 향후 유럽에
공식 가입하려면 민주화를 강화하고, 시장경제를 실천하며, 법치의 구조를 세워야 한다는 강한 조건을
내세웠다. 유럽의 경제적 지원을 체제 개혁에 연계시킨 셈이다. 따라서 개혁에 적극적인 국가들은
2004년 가입했고, 늦었던 크로아티아는 2013년까지 기다렸다. 조건을 채우지 못했던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잘 알다시피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다.
국가 간 통합이라는 막중한 역사는 단기적 목적으로 국내 정치적 차원에서 활용하는 경향을 피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장기적이고 확고한 목표와 원칙을 정해 놓고 천천히 나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