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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명
  • [유럽 톺아보기] 중국을 향한 서방의 불협화음

    • 등록일
      2023-04-14
    • 조회수
      153

지난주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중국이 사사건건 대립하는 가운데 유럽의 행보를 엿보는 기회라는 점에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마크롱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세계가 다극적 질서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서 합의했다. 표면적으로 마크롱·시진핑의 공감대는 미국 중심의 단극 질서에 대한 도전이나 문제 제기로 보일 수 있었던 만큼 관심을 끌었다.

대규모 경제 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마크롱은 시진핑으로부터 에어버스 항공기 주문을 비롯한 다양한 선물을 받았다. 게다가 베이징 회동에 이어 시진핑은 어린 시절 개인적 추억이 담긴 광저우에서 마크롱과 다시 만남으로써 특별한 환대를 베풀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마크롱은 대만에 대한 기자들의 물음에 프랑스나 유럽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발뺌으로 중국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마크롱의 방중은 같은 시기 대만 차이잉원 총통과 미국 하원의장 케빈 매카시의 회동과 겹쳤기에 더욱 부각되었다. 한편에선 유럽을 대변하겠다는 프랑스가 중국에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 미국은 의회 대표가 대만 총통을 만나 중국을 자극한 셈이다. 당연히 유화적 프랑스와 대립적 미국의 태도가 대조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심지어 마크롱이 자국을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만에 대한 위협적 군사적 시위를 시작하는 배려까지 해 주었다.

하지만 외교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을 보고 속단하는 일은 금물이다. 중국에 대한 마크롱의 유화적 태도는 그만큼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었다는 의미다. 특히 프랑스는 작년 러시아를 설득하여 전쟁을 회피하려고 노력했던 만큼 올해는 중국이 종전을 위해 러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해 주기를 바랐다. 미국과 거리를 두는 듯한 마크롱의 수사(修辭)는 이런 전략적 틀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시진핑은 마크롱에 화답하지 않았다. 시진핑은 오히려 러시아를 옹호하면서 유럽에 균형 잡힌 안보 질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교적으로 마크롱의 방중은 알맹이 없이 헛수고만 한 셈이다.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는 일만은 피해달라고 강력하게 호소한 점이 결과라면 결과다.

 

 

2023년 마크롱의 방중은 매우 특이한 형식을 띄웠다. 유럽연합의 집행위원장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 생소한 듀엣 정상외교의 형태다. 작년 11월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나 지난달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둘 다 단독 방문이었다. 지난가을 마크롱은 숄츠와 함께 프랑스·독일 정상의 공동 중국 방문을 희망했으나 숄츠는 단독 방중을 선호했다. 이번 공동 방중은 마크롱의 요청을 폰데어라이엔이 수용해 성사되었다.

마크롱은 프랑스만의 국력으로 미국이나 중국 등 세계 강대국들과 대등하게 외교를 펼치기 어렵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안다. 따라서 유럽이라는 지렛대를 활용해 프랑스의 적극적 외교전략을 추진하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마크롱이 중국에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는 동안 유럽의 폰데어라이엔은 중국의 위험요소 제거(de-risk) 등 원칙을 강조하는 태도로 엇박자를 내면서 이번 방중에 대한 국제 여론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방중 직후 “세계가 미국을 추종해서는 곤란하다”는 마크롱의 발언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프랑스는 1960년대 드골 대통령 이후 계속 이런 전략을 추진했다. 미국과 확고한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할 말은 하겠다는 정책이고, 차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크고 높게 외치는 프랑스 외교의 특징이다. 몇 년 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독주(獨走) 때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뇌사(腦死) 발언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토가 죽었다”는 의미의 과장된 마크롱의 발언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나 인용하는 표현으로 남게 되었다.

 

 

 

마크롱의 다소 도발적인 발언은 그가 국내 정치에서 놓인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분석해야 한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연금개혁을 밀어붙인 뒤 반대 여론이 여전히 들끓는 가운데 마크롱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정국이다. 국내, 국제무대를 막론하고 앞장서 개혁을 주도하거나 적어도 여론의 관심을 집중하는 리더의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사실 폰데어라이엔이 마크롱을 따라 중국 방문에 참여하기로 한 결정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2019년 어렵사리 집행위원장에 임명된 이후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한 일벌레로 유명하다. 27개 회원국 대표들을 아우르면서 조정하는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나서 개인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좋아한다. 브뤼셀 집무실을 집으로 사용한다고 할 정도로 업무에 열중하는 스타일이다.

폰데어라이엔은 지난달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을 벌였고, 이번에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유럽연합이 외교적 주체로 부상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중국은 노골적으로 마크롱을 환대하면서 폰데어라이엔을 홀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폰데어라이엔은 유럽의 기본 입장을 차근차근 강조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유럽은 중국과 ‘디커플링’하지는 않겠지만 중국이 초래하는 위험을 줄이는 노력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폰데어라이엔의 활발한 노력으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제도적 위상은 많이 강화되었다. 이제 내년 봄이면 다시 유럽 정치의 계절이다. 유럽의회 선거가 EU 27개국에서 치러질 것이고 폰데어라이엔의 재임될지도 복합적인 정치 게임으로 결정될 예정이다. 통상 집행위원장은 재임하여 10년 정도의 임기를 채우지만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활동적인 폰데어라이엔을 더 열심히 뛰게 만드는 배경이다.

유럽과 중국의 관계는 미국과 삼각 게임의 틀에서 바라봐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다. 중국에 대한 유럽의 전략은 2019년부터 명확한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무역에 있어 파트너십, 기술과 경제에서 경쟁(competition), 그리고 체계적인 다툼(rivalry)이다. 파트너십은 말 그대로 긴밀하게 협력한다는 의미다. 기술과 경제에서 등장하는 경쟁이란 개념은 주어진 틀 속에서 협력이나 대립 관계를 오갈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체계적 라이벌 관계는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게임을 벌이는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양자택일의 싸움에 가깝다. 유럽이 지향하는 체계, 즉 시스템은 중국이 말하는 공산당 체제나 중국이 지향하는 중국 중심 세계 질서와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중 전략을 유럽이 추종하지 않는다는 말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지, 미국과 중국을 대등한 차원에서 바라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2019년 대중 전략의 원칙이 정해진 다음, 지난 3년 동안 코비드19 위기를 겪으면서 중국에 대한 유럽의 경계심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는 프랑스나 독일, 유럽연합이 섬세한 차이를 보이지만 기본으로는 유사하다. 실제 유럽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민감한 첨단 기술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현실을 통제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전략적 자원에 대해서도 규제를 준비하는 중이다. 중국으로부터 무역이나 경제 분야에서 최대한 이득을 얻어내면서 장기적으로 유럽의 안보와 산업을 보호하려는 양면 전략을 오해하면 곤란하다.

외교의 오랜 전통을 가진 유럽 정치인과 외교관들은 중국이 체면이나 겉치레, 립 서비스에 약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반대로 미국은 종종 강력하고 저돌적인 태도를 보여야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점도 이해한다. 따라서 유럽의 발언만 보고 미·중·유럽 삼각관계를 속단하면 큰 착각을 할 수 있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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