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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유럽 톺아보기] 프랑스 연금개혁의 정치

    • 등록일
      2023-02-10
    • 조회수
      131

프랑스가 거리의 정치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봄 재선에 성공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23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연금개혁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법정 정년을 현재 62세에서 64세로 늘리고, 연금수혜를 위한 노동기간을 41년에서 43년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정치세력 가운데 좌파연합 ‘뉘프'(NUPES)와 극우파 ‘민족연합'(RN)이 개혁에 반대하고, 8개 노조가 연합해 전국적 반대 시위와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

1월 10일 정부가 공식적으로 개혁안을 발표한 뒤 세차례에 걸쳐 전국에서 대규모 반대시위가 펼쳐졌다. 경찰 추산 전국 각지에서 총 100만명 이상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는 시위가 일상적이고 빈번한 프랑스 기준으로도 대규모 동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위와 파업을 주도하는 노동세력이 일단 성공을 외치는 이유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마크롱의 연금개혁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반대여론이 70% 안팎으로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마크롱, 개혁 완수한 성공한 대통령이 꿈

이처럼 국민과 여론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개혁을 마크롱은 왜 추진하는 것일까. 연금개혁은 프랑스 정치사에서 무척 중요한 역사적 숙제로 부상한 지 오래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 선진국보다 법정정년이 낮은 편이다. 이웃 영국은 66세, 독일은 67세다. 그만큼 프랑스 노인은 일찍 은퇴해서 오랜 기간 연금 혜택을 받는다. 예를 들어 55~64세 연령대에서 일하는 사람의 비중은 독일이 72%인데 프랑스는 56%에 불과하다. 이런 추세라면 연금의 장기적 재정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 정치 지도자들은 연금개혁을 여러차례 시도했으나 매번 강력한 거리의 반대에 부딪혔다.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개혁은 장기간 전국 마비를 초래했고, 2010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개혁도 전국적 시위 동원이 10주간 계속되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다만 시라크 대통령은 중도포기로 개혁에 실패했으나 사르코지는 끝까지 추진해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했다.

마크롱은 이미 2017년 대선 과정에서 연금개혁을 중요한 공약으로 내세워 실제 2019년 말 추진한 바 있으나 거리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고 코로나 위기가 닥치면서 개혁을 포기했다. 2022년 재선에 도전하면서 마크롱은 법정정년을 65세로 늦추겠다는 새로운 공약을 내세웠다. 이번 개혁은 정년연장이 가져올 여론의 반대를 고려해 65세를 64세로 낮춰 추진하게 되었다. 마크롱은 어려운 개혁을 추진해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를 바라는 듯하다. 반대가 강해도 꼭 필요한 개혁을 완수하는 대통령이야말로 훌륭한 지도자라는 등식을 밀어붙이는 셈이다.

법적처리 가능하지만 정치적 판단 중요

프랑스 정치세력 가운데 좌파와 극우파의 반대는 그리 놀랍지 않다. 좌파는 전통적으로 정년을 앞당겨 노동자에게 조기은퇴의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포퓰리즘의 능선을 달리는 극우도 국민의 반대여론에 편승한 모습이다.

다만 야당 가운데 온건 우파인 공화당(LR)이 중도의 여당과 마크롱을 지원한다면 이번 개혁이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또 공화당과의 협력이 여의치 않더라도 마크롱이 정부의 신임을 걸고 의회에서 신속하게 개혁을 통과시키는 수단도 있기에 개혁의 법적 처리는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결국 정치적 판단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개혁에 반대하는 좌파가 거리의 압력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앞서 2010년 사르코지가 개혁을 추진할 때 노동세력은 30만명 이상의 대규모 시위를 열 차례 이상 벌였다. 당시 노조 조직률은 지금보다 높았고, 그때 제1 노조는 강경한 CGT였다. 현재 프랑스 노조 조직률은 10%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제1 노조도 CGT보다 온건한 CFDT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CFDT 지도부는 시위와 파업으로 ‘시민을 못살게 구는 일’이 노조의 존재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1월에 과시한 노동세력 단합이 앞으로도 계속될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당사자는 프랑스 시민들이다. 연금은 전 국민의 복지에 해당하는 최대 관심사이며 노후 20~30년의 삶을 결정짓는 중대한 사안이다. 세계 어디라도 같은 연금을 받기 위해 2년 더 일해야 한다는데 흔쾌히 찬성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반대가 다수라는 여론조사 결과조차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법정정년은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실제 상황과 경우의 수는 매우 복잡하다. 연금을 제대로 받으려면 법정정년과 노동기간 조건을 모두 채워야 한다. 정년 62세-노동기간 41년의 현 제도에서 100% 연금을 받으려면 적어도 21세부터 끊임없이 일한 사람이어야 한다. 출산 휴직 등으로 41년을 채우지 못하면 어차피 62세에 100% 연금을 받을 수는 없다. 62세를 넘겨 41년을 채우거나, 부족한 기간만큼 차감한 연금을 받아야 한다.

프랑스 연금은 67세가 되어야 노동기간에 상관없이 100% 연금을 받는 시스템이다. 67세가 또 다른 법정정년의 역할을 한다. 이런 복합적 현실은 프랑스의 실제 은퇴나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법정 정년은 62세지만 실제 은퇴 평균 연령은 60세 정도다. 일찍 은퇴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의 경우 50대에 은퇴해도 100% 연금을 받는 특혜를 누린다. 어떤 사람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법정정년이나 노동기간을 채우지 못한다. 연금을 적게 받더라도 일찍 쉬고 싶어 자발적으로 은퇴하는 사람들도 있다.

장기 균형 무시한 단기 복지정책의 한계

앞으로 개혁의 운명은 의회 논의와 여론에 달렸다. 이번주 시작한 국회 논의에서 마크롱 중도집권세력과 야권 온건 우파의 합의가 도출될지가 첫 단계다. 합의 도출이 어렵다면 마크롱이 정부의 신임을 걸고 법안을 통과시킬지가 다음 단계다. 정부의 신임을 건다면 국회를 해산하고 새 총선을 치를 가능성도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국민의 삶이 팍팍해지는 현실이 연금개혁 국면에 어떻게 작용할지도 중요한 변수다.

역사적으로 유럽의 연금제도는 중세까지 거슬러오른다. ‘연금'(年金, Annuities)이라는 용어는 중세 일부 도시정부가 시민의 돈을 빌려 이자를 정기적으로 지불하는 제도에서 유래한다. 전 국민을 포괄하는 현대 연금제도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5년 만들어졌다. 유럽에서 복지국가가 본격 등장하는 시기였다. 당시 연금 수령은 65세부터 시작되었는데 평균 수명이 60대라 실제 혜택을 보는 사람이 적었고 기간은 짧았다.

이후 프랑스인의 평균 수명은 현재 85세까지 늘어났다. 게다가 1981년 사회당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법정정년을 60세로 낮추었다. 결과적으로 노후에 연금혜택을 누리며 평안하게 살 수 있는 휴식 기간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뜻이다. 덕분에 프랑스 노인빈곤율(8%)은 국민 평균 빈곤율(14.8%)보다 크게 낮다. 다만 연금을 부담하는 노동인구는 줄어드는 추세라 부담이 커졌고, 재정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례로 2000년에는 2명의 노동인구가 1명의 은퇴자를 책임졌으나, 2020년대에는 노동인구 1.7명이 1명을 담당하는 구조로 변했다.

40여년 전 미테랑이 사회적 진보라고 생색을 내면서 만든 법정정년 60세 제도가 이후 모든 개혁의 진통을 초래한 뿌리인 셈이다. 사람들은 관대한 연금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그 권리를 빼앗기면 민감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장기적 균형을 무시한 단기적 복지 정책은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국가의 손발을 묶는다는 사실은 모든 정책 입안자들이 기억해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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