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크리스마스는 세계적 축제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이나 아메리카는 물론, 아시아나 아프리카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파티를 열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한껏 연말 분위기를 내니 말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장 바쁜 사람은 착하고 말 잘 듣는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해 주는 산타클로스다.
산타의 족보를 따져보면 4세기 로마제국의 일부였던 튀르키예(터키) 남부에서 활동했던 니콜라우스 주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이를 보호하는 성인으로 추앙된 니콜라우스의 유골이 12세기 십자군을 통해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로 옮겨지면서 유럽에서는 산타의 신화가 생겨났다. 굴뚝을 타고 내려와 선물을 놓고 가는 성인은 주교답게 의관과 두건에 지팡이를 들고 긴 수염을 휘날렸다.
그를 ‘신테르클라스’라고 부르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17세기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이동하면서 신대륙까지 유럽의 신화와 풍습이 확산했고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종교개혁으로 성인 숭배를 금지한 개신교이지만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는 근대적 신화의 주인공으로 새롭게 태어난 셈이다.
산타의 변신은 미국에서 획기적으로 진행되었다. 19세기 남북전쟁 시기 산타는 담배를 피우는 북부 군인의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빨간 옷차림의 산타는 1930년대 코카콜라 광고의 결과다. 이때부터 빨간 옷은 산타의 유니폼이 되어 버렸다. 자본주의 사회의 신화 조작이 산타 패션의 획일화라는 무서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동시에 산타를 유치하기 위한 지정학적 대결이 치열하게 불붙었다. 원래 미국인들은 산타가 북극에 산다고 주장했으나 핀란드는 그곳에 풀이 없어 사슴이 살 수 없다며 산타와 사슴은 핀란드에 산다고 반박했다. 이에 질세라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도 각각 자기 나라가 산타의 주거지라고 외치고 있다.
산타는 또 동아시아로 오면서 아버지뻘에서 할아버지뻘로 한 세대 올라섰다. 유럽 전통에서 산타는 ‘크리스마스 아빠’(Father Christmas)라고 불린다. 아빠가 아니면 아저씨도 좋은데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할아버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에서 산타는 심지어 ‘성탄 노인’으로 불린다. 너무 희고 덥수룩한 수염 때문일까? 문화인류학이 고민해 볼 숙제다.
산타는 원래 ‘매질하는 아빠’(Father Whipper)라고 불리는 짝꿍이 있었다. 말 잘 듣는 어린이에게는 산타가 선물을 주지만, 말썽을 부리는 아이는 매질 아빠가 혼을 내주는 구도다. 전통적 가치관에서 상벌이 확실한 모양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는 법이고 이제 매를 들었다가는 아빠가 아동학대로 감옥에 가게 생겼다. 따라서 매질 아빠는 수많은 선물을 관리해주는 산타의 착한 조수로 변신할 수밖에 없었다.
미래의 산타는 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궁금하다. 산타는 이미 조수와 같이 거추장스러운 존재들로부터 해방된 지 오래다. 굴뚝이 사라진 현대 도시의 고층아파트 시대에 산타는 날아다닐까, 아니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닐까. 20세기 미국에서 태어난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은 현대 대도시를 휘젓고 다니며 시민을 위기에서 보호하지만 그렇다고 산타 신화를 완전히 밀어내지는 못했다. 다만 산타를 기다리는 어린이의 나이가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