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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명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EPL과 영국 총리

    • 등록일
      2022-11-07
    • 조회수
      156
  • 첨부파일

매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를 통해 영국 사회를 만나 본 사람이라면 영국에서 백인이 아닌 아시아계 총리가 임명되었다고 놀랄 일은 아니다. 외국 자본이 영국의 최고 축구팀들을 소유하고 영국 축구장을 누비며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게임을 선사하는 선수들은 전 세계에서 몰려오기 때문이다. 말이 EPL이지 사실상 글로벌 리그의 역할을 하고 있다.

10월25일 인도계 리시 수낵이 영국의 새 총리로 임명되었다. 축구와 달리 정치에서 짙은 색 피부의 이민자 자녀가 최고의 권좌에 오른 일은 영국에서도 처음이다. 유럽 전체를 돌아봐도 이런 사례는 없다. 수낵은 여러모로 독보적인 인물이다. 올해 42세로 200여년 만에 가장 젊은 총리이며 2015년에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불과 7년 만에 초선 의원에서 총리까지 로켓처럼 초고속으로 떠올랐다.

의사 아버지와 약사 어머니를 둔 수낵은 영국의 황금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윈체스터 사립 명문 출신에 옥스퍼드대학을 나왔다. 게다가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인도 정보기술(IT) 산업의 재벌 딸을 만나 결혼했다. 그의 장인은 IT산업에서 성공해 ‘세계의 사무실’ 역할을 한다는 인포시스의 창업주다. 물론 처가가 국제적 재벌이라는 사실은 정치적으로 오히려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최고속, 최연소, 아시아계 총리 탄생을 가장 잘 설명하는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영국 보수당의 비참한 추락이다. 수낵은 2012년 보수당 집권 이후 다섯 번째 총리고 올해만 세 번째다. 특히 2016년 브렉시트 이후 영국 보수당은 분열되어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총리 보리스 존슨은 거짓을 일삼는 광대짓, 리즈 트러스는 금융시장의 혼란을 초래한 무능력으로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덕분에 수낵은 당내 경쟁자나 투표 없이 최고 권좌에 올라섰다.

물론 위기가 만들어준 틈새를 활용해 부상했다고 수낵의 상징성을 평가절하 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수낵의 부상은 개인의 출세를 넘어 영국 사회가 보여주는 개방성과 자신감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현재 런던시장인 사디크 칸이나 전 재무장관 사지드 자비드도 파키스탄 이민 출신이며 심지어 둘 다 버스기사 아버지를 둔 놀라운 계급 상승의 성공 사례다.

지금부터 100여년 전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이제 인도 출신의 아이들이 영국 정부의 총리를 맡고 제국의 수도였던 런던의 시장을 담당하는 세상이다. 수낵이 총리로 임명되던 날, 인도 언론은 일제히 이 뉴스를 톱으로 실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힌두교의 빛의 축제 디왈리 기간이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도 수낵의 조부모가 태어난 마을이 현재 자국 영토라는 이유로 파키스탄 출신 힌두교도가 총리가 되었다고 축제 분위기였다.

인도나 파키스탄은 서로 지연이나 혈통, 문화를 앞세우며 수낵의 성공을 자축했지만 막상 이들 사회는 소수에게 점점 억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개방적인 영국과 대조적이다. 인도는 힌두교, 파키스탄은 이슬람을 중심으로 각각 움츠리면서 타자를 적대시하기 때문이다. 수낵 개인이나 보수당에 대한 평가를 떠나 이번 파격적인 총리 임명은 영국 사회의 강력한 자신감을 증명한다. 아무리 다른 피부색이나 문화, 종교, 혈통을 가졌더라도 영국 교육의 힘과 사회의 흡수력은 워낙 탄탄해 걱정할 일이 없다고 뽐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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