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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명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한국처럼 똑바로”

    • 등록일
      2022-05-03
    • 조회수
      168
佛서 한국 언급하며 동의 뜻하는 표현 유행
일사불란한 우리 사회 모습 곱씹게 돼

“세카레 코망코레.”(C’est carre comme en Coree) 요즘 프랑스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꽤 장황하나 뜻은 간단한 ‘오케이’(OK)라는 말이다. “잠시 후 밥이나 먹을까”라고 물으면 그냥 “응”이라고 답할 수도 있지만 “세카레 코망코레”라고 해도 같은 의미다.

 

언어란 진화하는 생물과 같다. 원래 프랑스어엔 동의를 나타내는 ‘다코르’(d’accord)라는 말이 있다. 언제부턴가 영어권에서 오케이(OK)라는 표현이 들어왔고 프랑스 사람들은 ‘오케’라고 발음했다. ‘다코르’가 전통적이라면 ‘오케’는 젊고 현대적이다. OK는 “모두 맞다”는 의미의 영어 ‘올 커렉트’(all correct)에서 유래했고 19세기 미국에서 만든 말이다.

 

프랑스 대표 언론인 르몽드가 한국을 언급하는 표현을 기사로 다룰 정도면 일단 최근에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듯하다. 말을 차근차근 풀어보자. ‘카레’(carre)는 정사각형이라는 단어로, “세카레”(C’est carre)는 완벽하거나 똑바르다는 의미다. 19세기에 이미 ‘카레 머리’ 하면 논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을 뜻했다. 문화적으로 둥근 원이 원만함이나 풍요를 뜻한다면 사각형은 인위적이면서 딱딱한 뉘앙스다. 정사각형이라면 정말 똑바른 상태를 지칭하는 셈이다.

 

여기에 도대체 한국이 왜 등장하는 것일까. 원래 북한을 의미했는데 북이 빠지고 한국만 남았다는 설명이다. 21세기 들어 프랑스 래퍼들은 북한에 강한 호기심과 마력을 느꼈다. 2013년에는 ‘김정일’이라는 제목의 랩을 발표한 가수도 있다. 기존 사회질서를 비판하는 저항 문화의 전사들은 미국에 맞서면서 수만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북한 매스게임에 매혹되곤 했다. 똑바르다는 의미의 “세카레”와 ‘한국처럼’을 뜻하는 “코망코레”(comme en Coree)가 만나는 순간이다.

 

그런데 단순한 동의를 표시하려고 이렇게 긴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 문화란 놀이이고 즐거움이다. 필요의 영토가 아닌 유희의 터전이다. 동의하려면 고개만 끄덕여도 되지만 북한 체제에 대한 지식을 동원해 시적 표현을 구사하는 여유가 묘미다. 3·4박자의 연결이 리듬감을 주는 데다 ‘카레’와 ‘코레’는 운(韻)이 맞는다. ‘코망’과 ‘코레’도 음의 반복적 구조다. ‘코레’는 한국을 지칭하나 동시에 안무나 연출을 뜻하는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의 준말이다.

 

어원이나 태생적 의미와 상관없이 언어는 변한다. 프랑스 래퍼들이 한국을 넣어 만든 시적 구절은 신나게 동의를 표하는 재미있는 방식이 되었다. 랩을 듣는 청소년을 통해 5년 전부터 사회에 서서히 확산했다고 한다. 물론 이 표현의 인기가 얼마나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내로남불’, ‘검수완박’ 등 말을 짧게 줄여서 표현하는 방식이 유행하는 한국과는 달리, 말을 늘리더라도 멜로디와 리듬을 넣으려는 프랑스의 문화적 경향이 흥미롭다.

 

이 말을 곱씹어보니 문득 북한뿐 아니라 남한도 정사각형이라는 틀 속에서 너무나 일률적으로 사는 사회는 아닌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인구는 줄어도 경쟁은 달아오르는 뜨거운 교육열부터 ‘영끌’을 불사하며 획일적으로 달려드는 아파트·주식·명품·고급 차 구매 열기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한국 사회는 다른 버전의 정사각형이 아닐까. 프랑스 사람들의 장난 섞인 표현이 주는 불편함은 내가 너무 민감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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