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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16)] 20세기 이후 인류 최고 지향점 된 ‘건강’

    • 등록일
      2022-04-04
    • 조회수
      207

[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16)] 20세기 이후 인류 최고 지향점 된 ‘건강’

 

인간은 돈으로 영생을 사고 싶었다

 

유한한 삶 두려워 자본 축적 집착, 저축·보험 등 통해 미래 계획 시장·국가 중심 의료 체계 따른 경제 지원도 국민 수명 좌우 요인

▎루이 레오폴드 부아이(Boilly, 1761~1845)의 ‘백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의 존재를 인지하면서 예방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 사진:위키피디아

인간이 돈으로 측정되는 물질에 집착함으로써 정신적 가치를 도외시한다는 지적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단골 메뉴다. 하지만 물신주의의 표면을 조금만 파보면, 곧바로 자본주의의 정신적 바탕이 드러난다. 사람들이 돈이나 물질, 즉 자본을 무한대로 축적하는 일에 집착하는 이유는 유한한 삶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리기 위해서다. 쌓여가는 돈의 액수를 바라보면서 영생의 환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근대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불로초를 찾아다닌 진시황처럼 영생을 바라는 권력자들의 과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반사다. 자본주의는 화폐라는 장치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영생은 아니나 불로초의 환상을 현실화한 기발한 제도를 만들어냈다. 근근이 끼니를 때우던 시대는 가고 빈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투자와 저축, 보험과 연금을 통해 먼 미래를 계획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류의 중요한 변화는 식량 생산을 위한 농경 생활을 하면서 시작했다. 자본주의 이전의 지구촌에서 인구의 규모는 해당 지역의 식량 생산성이 반영된 결과였다. 중국이나 인도가 많은 인구를 보유한 것은 그만큼 농업 생산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대는 경제나 사회 수준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지표가 절대적인 인구 규모가 아니라 평균 수명이다. 자식을 많이 낳아 번성하라는 인구의 양적 팽창 성향은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자식을 적게 낳으면서 사람들이 점점 오래 살게 되는 고령화 사회야말로 자본주의 선진국의 특징으로 부상했다. 한국은 이런 자본주의적 변화의 최첨단을 달리는 사회로 떠올랐다. 가장 낮은 출산율과 100세를 향해 달리는 평균 수명이 말해주고 있다.

 

21세기 지구촌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길까? 아마도 건강일 것이다. 몸에 해로운 술을 마시며 건배할 때도 건강을 기원하니 말이다.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나지만 세계 국민총생산에서 의료 지출은 10% 전후의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 중 공공 지출이 6%를 담당하고 민간이 4% 수준이다. 미국은 의료 지출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데, 1960년 국민총생산의 5% 불과하던 수치가 2014년 17.4%까지 상승했다. 순수한 의료를 넘어 건강과 관련된 식품이나 체육 활동, 기기까지 포함한다면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말하자면 건강과 관련된 경제 활동이 자본주의의 손꼽히는 핵심 부문으로 성장했다는 뜻이다.

 

21세기 인류에게 건강은 자연스레 최고의 관심사가 됐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항상 요즘처럼 신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물론 동물과 달리 인간은 의술을 통해 육체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태초부터 전쟁을 벌이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관습이 형성돼 있었다. 전(全) 세계 의사들의 지침이 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기원전 4세기쯤 만들어졌다. 적어도 2000년 전 고대 그리스에는 분업화된 사회에 이미 의사라는 직업군이 존재했고, 이들의 윤리관을 지배하는 선서가 필요했다는 방증이다.

 

히포크라테스를 태두로 삼는 서양 의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해 확산한 시기는 19세기이며 그 이전에는 지역마다 문화에 따른 다양한 의학이 존재했다. 의학은 사실 학문이기 이전에 철학이었고 세계관이었다. 동아시아를 지배한 사상은 음양오행설에 기초해 인간의 신체를 작은 우주로 보는 시각이었다. 예를 들어 신체구조(근육, 혈맥, 살, 피부, 뼈)나 오장(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 오관(눈, 혀, 입, 코, 귀) 등을 목화토금수의 오행과 연결해 구분하는 식이다.

 

동아시아의 전통 의학과 서양의 현대 의학은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은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동아시아 사회는 현대화하면서 서양 의학이 도입돼 뿌리를 내린 상황이지만, 사람들의 사고체계를 지배하는 전통적인 습관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공존을 위한 노력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일례로 일본은 서양 현대 의학이 전통 의학을 흡수한 경우라면 한국은 한의학(韓醫學), 그리고 중국은 중의학(中醫學)이라는 독립적인 교육과 병원 체계를 장려해 왔다. 특히 중국은 자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분야로 중의학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상황이다.

 

남아시아의 힌두 문명이나 서남아시아의 이슬람 문명도 각각 전통적 세계관에 기초한 의학을 발전시켜 왔다. 예를 들어 힌두 문명은 사회와 신체를 모두 순수와 오염이라는 잣대로 바라본다. 사회적으로 종교 기능을 담당하는 브라만이 순수함의 상징이라면, 불가촉천민은 오염의 대명사인 셈이다. 따라서 브라만은 신체의 청결을 통해 순수함을 유지하고 가꾸는 일에 전념해야 했다.

 

건강 관련 경제활동 자본주의 핵심으로 성장


▎일본 화가 우타가와의 ‘불로초를 찾아 떠나는 서복’은 진시황의 불로불사 꿈을 담았다. / 사진:위키피디아

현대 의학은 서양에서 발달했기 때문에 동아시아나 힌두, 이슬람 등의 다른 문화권에서 통용되던 의학과 대조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은 서양에서도 기존의 전통적 사고를 극복함으로써 가능했다. 유럽의 전통적 사고는 기독교 사상과 긴밀하게 연결됐다. 기독교는 하느님의 말씀이 예수의 신체로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됐다는 점에서 육체 또는 신체가 무척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종교다. 가톨릭 종교 의례에 등장하는 포도주와 빵은 상징적으로 예수의 피와 살을 의미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는 인간의 영혼을 구하고 신체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명의와 같은 존재였다. 동시에 예수는 자신의 신체를 고통 속에 희생함으로써 인간의 영혼을 구하는 존재다. 예수를 모델로 삼는 기독교 사회에서 추구하는 영혼의 구원은 상대적으로 육체를 위험하게 보는 전통을 낳았다. 심지어 질병은 육체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그로 인해 영혼은 강화한다는 믿음이 있을 정도였다.

 

16세기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시기부터 기독교가 지배하는 전통적인 사고는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섬세한 근육이나 얼굴의 표정을 통해 신체를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은 변화된 가치관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프로테스탄트 국가의 신자들은 가톨릭 국가를 여행하면서 어떻게 사람들이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느냐며 육체를 학대하는 데 대한 놀라움을 표현하곤 했다. 신체의 편안함이 유럽 문화에 스며들기 시작한 셈이다.

 

17세기에는 인간의 신체를 당시 활발하게 발전하던 기계에 비유하는 인식이 생겼다. 육체는 인간의 영혼을 타락하게 만드는 죄를 짓는 도구가 아니라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나 음악을 들려주는 오르간, 갖은 동력을 전달하는 피스톤 등에 비교됐다. 인간의 신체가 신이 내려준 정밀한 기계로 인식되면서 신체를 지배하는 법칙에 관한 관심이 증폭됐다. 유럽에는 중세부터 의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했고, 대학에는 법대와 함께 의대가 중요한 축을 형성했다. 그러나 18세기까지 유럽의 의학을 지배한 사고체계는 비과학적인 체액(體液) 이론이었고, 여기에 기초해 사람들의 피를 뽑는 황당한 행위가 중요한 치료법이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어릴 때부터 심심하면 피를 뽑아 체액의 균형을 맞출 정도였다. 달리 말해 유럽은 대학이라는 공식적인 제도를 통해 의학을 교육했고, 의사라는 직업 집단이 일찍이 존재했으나 의료 수준은 여전히 열악했다는 뜻이다.

 

기독교와 육체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파스퇴르. / 사진:위키피디아

의학 지식의 발전은 유럽에서도 19세기와 20세기에 본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변화가 유럽에서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통적인 신앙 체계에서 벗어나 인간의 신체를 객관적으로 보고 탐구하는 실험이 필요했으며 과학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진보를 이루겠다는 과학자들의 열정이 빛을 발했다. 그 덕분에 의학과 보건 분야의 발전은 인류의 형태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은 항상 육체적 에너지를 제공하는 존재였다. 19세기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면서 석탄을 활용한 증기기관이 일반화될 때도 인간은 여전히 깊은 탄광에 직접 내려가 석탄을 캐내는 작업을 담당했다. 카를 마르크스(1818~1883년)의 [자본론]이 육체를 통해 노동을 제공하는 프롤레타리아야말로 자본주의의 가치를 생산하는 주인공으로 보았던 이유다. 노동이 없으면 가치도 만들어지지 못하고, 가치가 없다면 자본가나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노동자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에 분노했다. 그는 정치 혁명을 통해 이런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믿었고 국제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마르크스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루이 파스퇴르(1822~1895년)는 과학을 통해 인류의 삶을 통째로 뒤바꿔 놓았다. 마르크스가 러시아 혁명과 공산주의 실험을 이끌었다면, 파스퇴르는 위생과 장수의 시대를 연 셈이다. 의·과학 역사에서 파스퇴르의 절대적 기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많은 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의학 분야에 이바지한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인류의 위생 관념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병균의 전파를 막기 위한 기초적인 위생 개념을 보편화한 것은 아동의 사망률을 줄이는 데 크게 공헌했고, 특별한 선진국이나 부자 나라가 아니라도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으로 성장토록 해 인구 증가를 가져왔다. 파스퇴르의 위생 혁명은 가난한 나라도 인구 폭발을 경험하게 만들어주는 메커니즘이었다.

 

파스퇴르는 프랑스에서 하나의 학파를 형성하여 현대 의학의 줄기를 형성했다. 일명 ‘파스퇴르의 아이들’은 20세기 초 노벨 의학상을 휩쓸면서 프랑스 의학의 전통을 세웠다. 당시 모든 면에서 프랑스와 경쟁하던 독일은 로베르트 코흐가 1880년 베를린에 세균학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파스퇴르 학파와 함께 현대 의학의 쌍두마차를 형성했다. 19세기 말 프랑스와 독일이 치열하게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수많은 병균이 발견됐다. 예를 들어 1883년 이집트에서 콜레라가 유행하자 프랑스와 독일 양국에서 연구팀을 파견하여 세균을 확보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26세의 프랑스 연구자는 콜레라로 목숨을 잃었다. 이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두 팀은 모두 이집트에서 세균 확보에 실패했으나 독일의 코흐는 인도로 넘어가 콜카타에서 콜레라의 균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마르크스와 파스퇴르


▎뢴트겐의 첫 엑스선 사진. 부인의 손을 촬영했다. / 사진:위키피디아

1895년 독일의 빌헬름 뢴트겐이 발견한 엑스선(X-ray)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광선이지만 인간의 신체를 꿰뚫어 볼 수 있게 한 혁명적인 업적이다. 현미경이 세균을 보여주듯 이제는 몸이 엑스선을 통해 서서히 숨은 비밀을 보여주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독·불 경쟁 구도 속에서도 소통과 협력은 이어졌다. 뢴트겐의 발명은 프랑스 퀴리 부부에 의해 크게 발전했다. 불행히도 초기 방사선 연구자나 의사들은 백혈병으로 사망한 퀴리 부인처럼 건강히 악화하면서 병들어 죽어갔다. 이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엑스선의 영향이었다.

 

의학의 역사에서 19세기는 질병과의 전쟁을 벌인 시대, 20세기는 건강을 만들어가는 예방의 시대라고 말한다. 19세기 마취와 위생의 발전은 다양한 수술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의학은 아프거나 불완전한 신체를 고치는 기능을 수행했다. 다른 한편에서 세균학의 발전은 백신의 보편화를 이끌어냈고, 뢴트겐의 방사선은 예방 의학의 시대를 알리는 변화였다. 의료가 인구 증가라는 구조적 변화를 초래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였다.

 

지식 혹은 과학의 사회학에서는 무척 흥미로운 주장이 전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파스퇴르 이전에 과연 미생물이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냐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특히 그 존재를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있다/없다” 여부를 말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생물이 인간의 의식에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다. 이처럼 어떤 면에서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동력은 우리의 인식이고 정신인 셈이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20세기 인류에 나타난 획기적인 변화는 의료 시설의 확산이다. 인류는 태초부터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죽었다. 원시 사회에서 문명사회로 넘어온 인간은 집에서 태어났고 집에서 명을 거두었다. 20세기가 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룬 국가에서는 대부분의 시민이 병원에서 출생하고 병원에서 사망한다. 현대인의 삶이 의료화 된 모습이다.

 

방사선에서 시작한 신체의 탐구는 초음파, 레이저, MRI 등 다양한 과학 기술을 동원해 점차 의사의 눈에 띄지 않는 신체 부위는 사라지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지도 않는 태아 때부터 초음파를 통해 부모와 만난다. 어린이 앨범을 장식하는 첫 사진은 대개 초음파 태아 사진이다. 초음파는 또 태아의 성별을 구분해 원하는 아이만 출산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초음파 검사가 남녀 성별의 불균형을 심화시킬 정도로 발전했다.

 

신체의 곳곳을 직접 관찰하는 내시경 검사도 일상화된 의료 기술로 등장했다. 이제 내시경은 위나 대장의 이상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의료기를 넘어 신체 각 부위의 문제점을 치료하는 신기술로 자리 잡았다. 청진기로 가슴을 두드리는 의사의 이미지는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의사란 다양한 기구를 동원해 신체의 안과 밖을 자유자재로 검토하고 해결책을 찾는 기술자에 가까워졌다. 최근 들어서는 전통적인 의사의 분석과 판단의 역할마저 점차 작아지는 경향이다. 예를 들어 외과 수술에 로봇이 점점 더 많이 등장한다. 내시경을 통해 신체에 들어가서 세밀한 수술 과정을 로봇에 의존하는 방식이다. 또 다양한 기술로 획득한 신체의 상태에 대해 데이터가 축적된 인공 지능으로 판독하는 시대가 열렸다.

 

19세기는 질병과 전쟁, 20세기는 예방의 시대


▎로봇 손이 전구를 들고 있는 모습. 미래의 수술은 로봇이 수행할 수도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인간 유전자에 대한 지식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이제는 예방 의학을 넘어 예언적 의학이 등장했다. 휴먼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통해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됐고, 개인의 유전자에 기초한 의료 영역도 열리기 시작했다. 현대 의학은 질병을 예방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인이 특정 질병에 걸릴 확률에 기초해 삶과 행태를 통제하려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유럽 문화사에서 18세기를 지배한 구호가 행복이었다면, 낭만주의의 19세기는 자유라는 가치를 내세웠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인류의 최고 지향점은 건강이 됐다. 행복도 자유도 건강하지 못하면 누릴 수 없다는 인식이 대중적이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은 건강 수준을 놀랍게 개선하면서 장수(長壽)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건강은 인류의 가장 절실한 희망으로 부상했고 의료는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최첨단 의료의 혜택을 받으려면 엄청난 경제적 자원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와 건강의 상호 관계는 어떻게 진화한 것일까.

 

미국은 20세기 들어 의학 분야에서도 놀라운 발전을 이루며 유럽을 추월했다. 노벨 의학상은 한 국가의 첨단 의료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전반기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가 주도하던 시기는 가고, 지금은 미국이 노벨 의학상 수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 프랑스와 독일의 세균학이 서로 경쟁하던 시대에 첨단 연구란 파스퇴르나 코흐 같은 천재적 과학자의 개인적 노력에 의존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원리가 의학 연구에 적용되면서부터 천문학적 자본을 동원해 다수의 연구팀을 투입하는 국가 주도 시대로 급변했다. 미국은 연방 예산이나 제약회사의 투자, 대학의 자원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첨단 의학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첨단 의학 연구는 미국이 주도하나 공공 의료 서비스라는 시각에서 살펴보면 미국은 오히려 후진국이다. 미국의 의료 서비스는 기본으로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의 원리를 따른다. 따라서 21세기에도 여전히 의료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천만 명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 노력했으나 전(全) 국민 의료 보험을 실현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반면 유럽의 국가들은 전 국민을 포괄하는 공공 의료 서비스를 통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영국은 아예 의료 서비스 전체를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설립했고, 프랑스나 독일 등도 주요 종합병원은 공공 서비스에 속한다. 의료 보험은 유럽에서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에 해당한다.

 

시장 중심의 미국 의료와 국가 중심의 유럽 의료는 세계를 양분하는 의료 서비스의 양대 모델이다. 국민의 평균 수명이 의료 시스템의 가시적인 성과라고 가정한다면, 2020년 기준으로 미국(78.4세)은 프랑스(82.5)나 독일(81.7) 등 유럽 선진국에 한참 뒤진다. 참고로 평균 수명의 선두 주자는 일본(84.3세), 스위스(83.4), 한국(83.3)이다. 동아시아의 한국이나 일본은 유럽식 의료 보험을 시행하면서 동시에 국민 중에 빈곤한 이민자 집단이 적은 사회다.

 

미국은 공공 의료 서비스 차원에서는 후진국

 

의료에 종사하는 전문 인력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의 의료 지도는 또 달라진다. 시장의 원칙을 적용하는 미국은 의료비가 가장 비싸고 따라서 의료 종사자들이 받는 대우도 상대적으로 좋다. 의사가 된 뒤에도 공무원 박봉에 시달리는 다수의 영국인이 언어가 같은 미국 시장으로 대거 이동하는 이유다. 영국의 의료 시장은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 출신 의사들이 와서 메우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심지어 프랑스 간호 인력도 대우가 좋은 캐나다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인다.

 

제약업은 자본주의에서 무척 중요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일례로 독일을 대표하는 대기업 바이엘(Bayer)은 19세기 후반에 설립됐고 1897년 아스피린을 개발함으로써 세계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아스피린은 원래 바이엘 사의 상표였으나 세계인이 일반명사로 사용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20세기 중반부터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면서 대량 생산됐다. 박테리아와 인간의 노력이 벌이는 숨바꼭질이 시작된 셈이다. 세균은 인간이 만든 항생제에 끊임없이 적응하기 때문이다. 또 비슷한 시기 먹는 피임약이 개발됨으로써 질외사정이라는 남성 중심 피임에서 여성이 피임의 주인공으로 변했다. 이는 여성의 선택권이 강화되는 사회적 변화에 크게 공헌했다.

 

현대인의 신체와 건강에 대한 인식은 전통 사회와 비교했을 때 엄청난 대전환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신체는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수단이었고, 인간의 몸을 하나의 소우주로 봤다. 유럽에서도 신체는 영혼의 부속물이라는 개념이 강했다. 하지만 현대로 넘어오면서 점점 신체는 영혼만큼 중요하게 인식됐고, 육체적 건강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다. 영혼이 신체를 지배하는 문화에서 모든 개개인의 신체가 신성화되는 흐름이 21세기를 지배하는 듯하다.

 

21세기 미국을 시끄럽게 달군 오피오이드 사태는 이런 경향을 잘 반영한다. 오피오이드는 중독성이 강한 마약에 가까운 약물이다. 신체적 혹은 정신적 안락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성향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챙기려는 제약회사의 탐욕이 어우러져 심각한 약물 중독과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최근 선진국에서 광범위하게 추진 중인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용 마약의 합법화는 신체의 쾌락에 대한 금기가 점차 사라짐을 의미한다.

 

비슷한 차원에서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은 신체의 사물화를 의미한다. 인류사에서 화장이나 의상을 통해 외모를 꾸미는 일은 항상 존재했다. 특히 최근에는 신체를 변형시키는 다양한 기술들이 발전했다. 헤어스타일의 다채로운 변화에서 육체미를 가꾸는 보디빌딩까지 몸 자체가 정원처럼 꾸미는 대상이 됐고, 성형 수술도 눈·코 등 얼굴뿐 아니라 지방흡입술처럼 전신 성형으로 시술 분야가 확대됐다. 또 선탠, 문신, 피어싱 등은 누구나 흔히 하는 시술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인류는 하나의 공동체, 코로나가 준 교훈

 

게다가 17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기계로서의 신체라는 이미지는 이제 현실화되고 있다. 초인간주의(transhumanism)라는 경향은 인간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지평선이 열린다는 의미다. 눈에 렌즈를 삽입하고 틀니 대신 임플란트를 심는 것은 출발점일 뿐, 생명과학이 발달하면서 올해 초 미국에서는 말기 심장병 환자에게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도 시행됐다. 게놈 연구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그리 큰 것이 아님을 증명한 바 있다. 실제 동물도 과거 식량과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에서 인간의 동반자로 인간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와 건강의 관계를 기술하면서 2020년대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 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는 몇 가지 중대한 교훈을 남겼다. 우선 질병에 대한 인간의 승리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사실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인간의 노력에도 계속 적응하기에 완벽한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인간이 백신을 개발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바이러스 또한 재빨리 돌연변이를 통해 백신 접종자에게 돌파 감염을 일으키는 능력을 보였다!

 

다음은 인류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세계를 위기로 빠뜨리는 데 반년이 걸리지 않았다. 남아공의 오미크론 변이가 세계에 확산하는 데도 불과 몇 달 정도면 충분했다. 지구촌은 이미 하나가 돼 인적 교류를 전면 차단하는 강제적인 철벽을 쌓지 않는 이상, 거의 동시에 전염병 상황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끝으로 동일 전염병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와 서구는 문화적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흔히 이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강력한 방역정책을 펼 수 있는 권위주의의 차이로 설명하지만, 실제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중국에 가까운 양상을 보였다. 문화적 영향력이 정치 제도보다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일까. 21세기 지구촌은 통합한 듯 보이지만, 같은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방법에서는 다양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공동체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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