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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명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유럽, 반성의 시간

    • 등록일
      2022-04-04
    • 조회수
      195

러시아 호전성 외면 ‘우크라 비극’ 낳아
힘과 돈에 굴복한 유럽 전략 오판 드러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침공한 뒤 한 달 정도가 지나면서 유럽 사회는 충격의 순간에서 반성의 시간으로 옮아가고 있다. 유럽 대륙에서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환상과 믿음은 여지없이 깨졌다. 이번 전쟁은 1990년대 발칸처럼 소규모 극단적 종족 집단들이 일으킨 골치 아픈 사고라고 치부할 수 없다. 전통적 강대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백주에 노골적으로 엄연한 주권국가를 침략한 범죄 행위다.

 

21세기 들어 유럽은 러시아가 드러낸 호전성을 끊임없이 무시하거나 외면해 왔다.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 사건에서 러시아는 40명의 테러범을 잡기 위해 인질 130여명도 함께 죽였다. 또 비판적 언론인이나 야당 인사를 국내외에서 총기와 독약으로 살해하는 일도 빈번했다. 유럽은 러시아 국내 정치라며 눈을 감았다.

 

러시아는 2000년 체첸의 그로즈니에서 수천명의 민간인을 학살했고 2008년 조지아를 침공하였으며,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름(크림)반도를 합병해 버렸다. 시리아 내전에도 깊숙이 개입하여 독재정권 수호에 나섰으며 아프리카 다양한 지역에 와그너 용병부대를 파견하여 군사·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유럽은 변함없이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를 샀다.

 

국내외에서 잔혹하고 야만적인 행위를 일삼으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웃 유럽 사회의 비판을 무디게 하는 전략을 폈다. 유럽의 극우·극좌 정치세력에 줄을 대고 자금을 지원하면서 친러시아의 목소리를 장려했다. 프랑스가 뜨겁게 호응했다. 극우의 마린 르펜과 에리크 제무르는 러시아의 이민자가 없는 백인 사회를 이상형으로 삼았고, 맹목적 반미·반자본주의의 극좌 장뤼크 멜랑숑도 푸틴에게 박수를 보냈다.

 

러시아의 부패한 재벌 ‘올리가르히’들은 유럽 금융·사치품 시장, 교육의 주요 고객층을 형성했다. 영국 수도에 몰려드는 부호 패거리를 위해 런던은 러시아식 ‘런던그라드’가 되었다. 조국 러시아의 지하자원과 부를 약탈한 돈으로 이들은 유럽 주요 도시의 호화 부동산이나 요트에 투자하고 첼시 같은 축구클럽도 사들여 천문학적 돈장난을 칠 수 있었다. 유럽은 독재의 썩은 돈을 받아먹으며 도덕적 불감증에 빠졌던 셈이다.

 

러시아가 프랑스 대중정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작하고 영국의 관대함을 돈으로 사들였다면 독일은 엘리트의 전략적 착오가 더해졌다. 독일은 1970년대 동방정책(Ostpolitik) 이후 정파를 넘어 러시아에 대한 평화 공세를 펴 왔다. 원래 사민당의 전략이었던 것을 기민당도 수용해서 독일 외교정책의 축이 되었다. 사민당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아예 러시아 가스프롬 간부가 되었고 기민당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러시아 가스를 수입하는 노르트스트림2에 매달렸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 독일의 ‘착한 평화주의’ 콤플렉스가 낳은 거대한 오판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난 수십년간 이어진 러시아의 힘과 돈에 대한 유럽의 부패·굴종·타협의 부조리를 드러냈다. 러시아처럼 자국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정부는 다른 나라를 스스럼없이 침략할 수 있다. 무역과 교류를 통해 호전적 전제주의를 평화로 이끌 수 있다던 유럽의 전략은 허망한 바람이었을 뿐이다. 더 나아가 유럽의 취약함과 무기력의 신호로 전달되어 러시아의 더 심각한 도발을 초래하는 비극을 낳았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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