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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 (15)] 시간을 관리하는 ‘금융’은 타임머신

    • 등록일
      2022-03-07
    • 조회수
      274

[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 (15)] 시간을 관리하는 ‘금융’은 타임머신

 

미래를 계산하고 준비하는 인류 만들다

 

유럽서 국채·주식 등 발달, 시민들 투자 통해 앞날 대비하는 지혜 습득
지금은 전 세계에 자본주의 금융 유전자 퍼져… 글로벌 경제 체온 좌우


▎세계 금융의 아이콘인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주식시장. 부를 향한 희망과 탐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 사진:위키피디아

금융은 한자로 쇠 금(金)과 화할 융(融)을 합쳐서 만든 개념이다. 사전적 의미는 금전을 융통하는 일이다. 유럽에서 파이낸스(finance)는 원래 중세 프랑스에서 “돈을 갚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라틴어에서 피니스(finis)가 끝이나 종결 등을 뜻하는데 돈을 빌렸다가 만기가 돼 갚는 행동을 이렇게 부른 셈이다. 이후 돈과 관련된 일을 피낭스라 부르게 되었다. 세금을 걷는 재무부의 명칭이 지금도 피낭스 부처(Ministry of Finance)라고 불리는 이유다.

 

프랑스 말인 피낭스는 바다 건너 영국까지 전해졌다. 19세기가 되면 돈을 갚는 것이 아니라 “돈을 대준다”는 의미가 강해졌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금융업은 돈을 투자로 이끄는 활동을 뜻하게 됐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 금융이 경제학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생산이나 소비와 관련된 활동은 실물 경제로, 돈이 움직이는 부분은 금융으로 분류했다.

 

화폐와 금융은 자본주의의 중심축이라고 할만하다. 화폐가 벽돌이나 나무, 시멘트나 유리와 같은 소재라면 금융은 이들로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을 전공하는 미국 예일대 윌리엄 괴츠만 교수는 [돈이 모든 것을 바꾼다](Money Changes Everything, 한국 번역본의 제목은 [금융의 역사])에서 “금융은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재테크, 핀테크 등을 말할 때처럼 단순한 테크닉(technique, 기술)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 전반을 포괄하는 뜻에서 테크놀로지(technology, 지식의 실용화)라고 역설한다. 그는 금융이야말로 인간의 역사 발전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테크닉과 테크놀로지


▎16~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 얀스 산레담의 [암스테르담 구시청]. 시청 옆 건물은 1609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공공은행 비셀방크다. / 사진:위키피디아

인류의 역사가 문명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시기는 수렵 채취에서 농경사회로 진화하면서부터다. 여기서 괴츠만이 말하는 테크닉과 테크놀로지를 구분해 살펴볼 수 있다. 밀의 씨를 뿌리고 수확하거나 소, 말, 양 등의 가축을 키우는 일은 테크닉에 해당한다. 하지만 반복해서 주기적으로 농사를 지으려면 수확한 곡식을 모두 먹어버리면 곤란하다. 다음 농사를 위해 씨앗을 남겨야 한다. 가축도 젖을 짜 먹고 털을 깎아 옷을 만들거나, 잡아서 고기를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축의 혜택을 계속 누리려면 미래를 예측해야 하고 계산해야 한다. 농경과 유목이 삶의 양식으로 정착하려면 테크닉의 습득만으로는 부족하다. 테크놀로지, 즉 기술과 문화가 어우러져야 한다는 뜻이다.

 

예측하고 계산하는 일은 인간에게 새로운 능력을 요구했다. 물론 사냥하거나 열매를 딸 때도 어느 정도의 예측과 계산은 필요했다. 그러나 농경 및 유목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은 한층 더 장기적이고 치밀해야 했다. 농사에서 예측을 잘못하거나 셈이 틀리면 가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결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테크닉과 테크놀로지의 구분에 이어 괴츠만은 ‘금융이란 시간을 관리하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씨앗이나 식량이 부족하면 이웃으로부터 일정한 양의 곡식을 빌린 뒤 다음 수확 때 같은 양을 갚는다. 주고받는 곡식의 양이 같다면 변한 것은 없다. 다만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금융의 개념은 인간에게 시간이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과정이다. 무엇인가를 꾸고 갚는 절차는 금융의 첫걸음이었고 이런 관점에서 금융이란 타임머신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인류는 물건을 빌릴 때 이웃의 자비심에만 의존하다 점차 시간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이를 보상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이자의 개념이 생긴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말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인류는 빌리고 갚는 일, 그리고 그 대가로 이자를 지불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자란 타임머신을 이용하는 차비(車費)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함무라비 법전은 4000여 년 전 바빌로니아에서 이미 채무 관계가 일상적이었음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은의 이자율은 연 20%, 그리고 보리의 경우 33.3%라고 명시하고 있다. 당시에는 은이 화폐의 역할을 담당했는데 식량이 현금보다 이자율이 높았던 셈이다. 제국 전역에 통용되던 비석에 굳이 이자율까지 새겨 명시한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사람들의 사정을 악용하려는 시도가 빈번했던 모양이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상황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다. 유럽 문명의 요람인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채무 관계는 일상사에 속했다. 무엇보다 고대 사회는 노예제도에 크게 의존했는데 자유인이 노예가 되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은 전쟁에서 패해 포로로 잡히거나 빚을 갚지 못해 몸으로 대신하는 일이었다.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노예들이 주인을 대신해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귀족들은 명예를 앞세우는 전쟁이나 정치에 전념해야지 상업과 같은 천한 일을 직접 할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노예가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주면 나중에는 저축한 돈으로 자유인의 신분을 살 수 있었다. 막대한 채무를 ‘노예 문서’라고 부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비슷한 면이 많은 셈이다.

 

‘중세에는 중국의 경제 수준이 매우 발달했는데도 왜 유럽이 중국을 제치고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을 이루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이 제시되고 있다. 중국은 거대한 대륙을 한 정부가 통제하는 강한 국가였다. 게다가 11세기에는 지폐를 개발해 정부가 마음대로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능력까지 확보했다. 정부는 물리력으로 사회를 동원할 수 있었고, 동시에 자신이 생산한 화폐를 활용해 주민을 통제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의 고민은 너무 많은 돈을 찍어내 미래 인플레가 초래하는 것을 막는 일이었다.

 

 

중세 유럽 전쟁 위해 국채 발행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죽는 순간까지 채권 증서가 곁에 놓여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유럽은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정치 단위가 복잡하게 분할돼 서로 경쟁하는 혼란한 질서였다. 허울뿐인 신성로마제국이 있었고, 수많은 왕국과 봉건 영주들이 존재했으며 도시 단위의 작은 국가도 동참하는 어수선한 대륙이었다. 이들 사이에는 다툼과 전쟁이 빈번하다 보니 정치의 중요한 과제는 전쟁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강제, 자본, 그리고 유럽 국가 990~1992]라는 책에서 중세부터 현대까지 유럽 천 년의 역사를 영토와 자본의 긴장된 관계로 보았다. 영토를 중심으로 프랑스나 스페인, 영국 같은 나라들이 만들어졌다면, 자본을 토대로 베네치아나 제노바 같은 도시국가들이 활동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유럽 역사의 놀라운 측면은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국내 또는 해외의 자본가로부터 돈을 빌렸다는 사실이다.

 

중세 유럽에서 지중해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베네치아나 제노바는 중세에 이미 정부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세금이 국가 강제력을 동원해 민간의 부를 몰수하는 것에 가깝다면 채권은 정부와 시민 사이에 장기적인 금융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이다. 정부는 세금을 거두는 것이 더 간단하나 징세는 시민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채권으로 맺어진 신용관계는 시민의 적극적인 경제 참여는 물론 정부의 성공을 위한 시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도 유용하다.

 

국내 자본이 충분하지 못했던 지역의 국가들은 해외 자본에 의존해야 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의 대표적인 왕국들도 모두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자본가들로부터 돈을 빌렸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으로 빌린 돈을 갚을 수 있었지만, 실패하면 왕국과 은행이 모두 파산을 선고해야 하는 일도 빈번했다. 14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페루찌와 바르디은행 가문이 프랑스와 백년전쟁을 벌이는 영국의 에드워드 3세에게 거금을 빌려줬다가 돈을 돌려받지 못해 망했다는 일화는 유럽 경제사에 기록된 유명한 이야기다. 17~18세기 국제무대에서 네덜란드와 영국이 군사 및 외교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부상한 핵심 요인을 금융으로 설명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두 나라는 이 시기가 되면 국내 자본가들이 충분한 자금을 보유하게 됐고 효율적인 시장을 통해 싼 이자에 필요한 돈을 구할 수 있었기에 스페인이나 프랑스를 누르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막강한 통일 정부가 활약하던 중국과 달리 유럽은 분열돼 있었기 때문에 ‘국가’가 약했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 돈을 빌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긴 국채라는 제도는 오히려 매사를 합리적으로 계산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정부, 또 예상에 비추어 무모한 행동을 자제하는 국가를 탄생시켰다.

 

국채가 국가만 현명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시민이 볼 때 국채 제도는 과거의 노동이나 사업으로 번 돈을 투자하면 미래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자금의 타임머신이었다. 베네치아뿐 아니라 북유럽의 두애(Douai)나 칼레(Calais) 같은 도시도 채권을 발행해 연금(annuities)으로 보상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베네치아나 두애, 칼레의 성공적인 모델은 다른 곳으로 확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돈이 돈을 낳는다는 오랜 지혜가 유럽 문화에 체계적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된 것이다.

 

금융의 테크놀로지는 유럽에 천천히 스며들면서 지배력을 발휘해 나갔다. 상인이 많았던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는 대차대조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유행했다. 돈이 오고 가는 경로를 기록해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돈의 흐름을 확인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테크닉이 도입됐다. 금융 분야에서 베네치아와 경쟁했던 피렌체는 수학을 돈의 영역에 도입했다. 14세기 수학이 유행하면서 수학자가 늘어났고 이들만의 길드(직능조합)를 만들 정도였다. 당시 피렌체에서는 주판(籌板)학교(Abacus school)라 불리는 일종의 경영·회계 교육 기관에서 공부하는 학생 수가 1000명이 넘었다. 이후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니콜로 마키아벨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 마키아벨리와 천재 예술가이자 다재다능한 엔지니어였던 다빈치가 모두 냉철하고 합리적인 교육의 산물이었다는 뜻이다.

 

 

콩도르세 vs 맬서스


▎1896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드라마 [부의 전쟁]은 뱅크런 사태를 다뤘다. / 사진:위키피디아

유럽에서 확률과 통계가 발전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해야 금융의 재앙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8세기 프랑스 정부는 다급한 나머지 국채를 발행하면서 너무 높은 이자율을 보장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금융 기법에 능숙한 이웃 네덜란드와 스위스에서는 프랑스 국채를 묶어 낮은 이자율로 되파는 사업에 나섰다. 프랑스의 국가 재정이 망가지면서 스위스의 금융업을 살찌웠던 셈이다. 프랑스 정부는 계속 혈세를 짜낼 수밖에 없었고 이는 혁명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

 

혁명이 성공한 다음에도 금융은 프랑스 새 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고민거리였다. 혁명의 지도자가 1793년 암살당한 사건을 그린 다비드의 명작 ‘마라(Marat)의 죽음’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죽은 마라의 손에는 그를 암살한 귀족 과부의 편지와 채권 증서가 놓여 있다. 혁명 정부가 교회와 귀족의 재산을 몰수해 발행한 채권이었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혁명 지도자 콩도르세(Condorcet)는 [인간 정신 진보의 역사적 그림을 위한 스케치]에서 모든 국민이 평생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도록 채권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확률에 기초해 일찍 죽는 자와 장수(長壽)하는 사람 사이의 소득을 조정하는 일종의 국민연금을 200여 년 전에 구상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영국의 맬서스는 이런 제도야말로 인간을 게으르게 만들고 아이만 많이 낳게 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금융과 사회의 관계를 둘러싼 콩도르세와 맬서스의 논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듯하다.

 

천 년 가까운 유럽 채권의 역사가 차분하게 계산하는 인간,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을 만들어냈다면 기업이라는 조직은 모험을 향한 유럽인들의 야심과 용기를 결집하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인류 역사는 힘을 합쳐 공동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지혜로 발전해왔다. 정치 공동체는 이런 과정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다. 기업은 종교나 물리적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통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형식의 혁명적인 조직이다.

 

1600년 즈음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등장한 동인도주식회사(VOC)와 영국 런던에서 조직된 동인도주식회사(EIC)는 근대적 기업 역사의 출발점이다. 당시 기업이 얼마나 혁명적 조직인지는 몇 가지 특징에서 확인된다. 우선 주식을 통해 회사의 자본을 모으다 보니 하나의 목표를 향한 다수의 참여를 확보할 수 있다. 주식의 수, 즉 자본의 기여도만큼 이윤을 가져가고 투자한 자본만큼만 경제적 책임을 지기 때문에 매우 편리한 투자 수단이다. 게다가 일단 발행된 주식을 2차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었으니 그 유연성 또한 놀랍다.

 

 

투자와 도박은 쌍둥이 형제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둔 중국공상은행은 자산 규모로 세계 최대다. / 사진:위키피디아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런 특징들은 17세기 당시에는 혁명적인 변화였다. 유럽은 돈을 사고파는 채권 시장을 이미 오랫동안 경험했기에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 1차와 2차 시장이 구분되고 정해진 액수만큼만 책임을 진다는 채권 시장의 테크닉이 주식으로 전이된 셈이다. 다만 채권과 주식의 핵심적 차이는 위험 부담에 있다. 정해진 안정적인 이자를 보장하는 채권과 달리 주식은 모험의 성공 여부에 따라 수익이 급변하고 심지어 자본마저 잠식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이란 모험과 동의어이며 케인스가 말하는 ‘동물적 정신’(animal spirit)을 자극한다.

 

유럽인들이 세계를 향한 모험을 떠나면서 조직한 기업이 주식회사 형식을 띠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17세기부터 유럽에는 동인도는 물론 서인도, 아프리카, 캐세이(중국), 허드슨베이(캐나다) 등 세계 지리 명칭을 딴 회사들이 넘쳐났다. 해당 지역과 무역을 하거나 자원을 개발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에 유럽인들은 주식에 투자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계산해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도박하듯 소문에 이끌려 판돈은 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결과는 때로 비참했다. 특히 1720년은 유럽 금융의 역사에서 검은 해로 불려도 마땅하다. 영국과 프랑스 양국에서 도박적인 투기 거품이 동시에 터져버렸으니 말이다. 영국은 ‘사우스 시 회사’(South Sea Company)가 대중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주가가 폭락했고 프랑스도 ‘미시시피 회사’(Compagnie du Mississippi)가 투자자들의 미친 듯한 야망을 품은 채 침몰해 버렸다.

 

이처럼 투자와 도박은 자본주의 초기부터 구분이 어려운 쌍둥이였다. 하지만 이런 불행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주식회사는 4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지금까지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돈을 한곳으로 모아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능력과 자본의 기여도에 따라 이윤을 분배해주는 공정성, 비교적 간단하고 편리하게 돈을 넣거나 뺄 수 있는 유연성 등 주식회사의 장점은 자본주의를 이끄는 강력한 힘이었다. 이제 도쿄, 싱가포르, 파리, 런던, 뉴욕 등 전 세계가 모험적 금융의 매력에 빠져 주식시장의 전광판을 주시하는 세상이다.

 

돈을 갖는 방법은 세 가지라고 말한다. 첫째는 돈을 모으는 일(Save)이다. 소비하지 않고 아껴 쓰는 식이다. 둘째는 돈을 버는 길(Earn)이다. 일하거나 투자를 통해 임금이나 이자, 이윤을 벌어들일 수 있다. 셋째는 돈을 만들면(Make) 된다. 하지만 국가가 법정 화폐를 만들려면 얼마나 큰 노력과 폭력을 동원해야 하는지는 중세 중국에서 시작한 지폐가 20세기가 돼서야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국가는 폭력을 동원해 법정화폐를 만드는 반면 은행은 평화적으로 돈을 제조하는 기관이다. 은행은 사람들이 맡긴 돈을 보관하는 기관이지만 맡은 돈을 놀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은행이 가진 돈을 빌려준다고 생각하나 사실은 맡아놓은 돈보다 훨씬 많이 빌려준다. 이때 빌려 간 사람들이 정해진 만기에 갚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이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회가 은행이 발행하는 증서를 돈으로 인정하고 신뢰해야 한다.

 

‘돈 만들기’(Making Money)와 ‘은행 달리기’(Bank Run)

 

경제사를 살펴보면 네덜란드와 스위스는 아주 일찍부터 자본시장이 발달한 나라들이다. 돈을 활용하는 문화적 유전자가 매우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네덜란드의 금융 기법은 자연스럽게 영국으로 이전됐고 다시 미국으로 전파됐다.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을 형성한 영국과 미국의 앵글로색슨 자본주의는 자본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런 지역의 시민들은 저축해서 채권이나 주식에 투자하는 대중적 습관이 있고, 기업도 시장에서 채권이나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마련하는 데 익숙하다. 반면 국가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나 중국, 경제 발전의 후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독일, 일본 등은 자본시장의 발달이 더뎠다. 동원할 수 있는 시민의 저축도 부족했고 채권이나 주식에 투자하는 습관도 영국이나 미국만큼 보편적이지 못했다. 따라서 유럽 대륙이나 동아시아의 자본주의는 은행에 의존해서 발전했다. 런던의 시티나 뉴욕의 월스트리트가 세계 자본시장의 중심을 형성하는 것과 달리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에서는 공룡 같은 은행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21세기 현재에도 세계에서 자산 규모가 가장 큰 은행은 중국 정부가 투자한 4대 은행이다.

 

사회에 있는 돈을 시장에서 모아 자금을 대는 일보다 부족한 자금을 국가나 은행이 만들어내는 일은 더 단순하고 간편하다. 물론 쉬운 만큼 위험성은 더 크다. 국가가 돈을 마구 찍어낸 독일은 1920년대 치명적 인플레이션을 경험했고, 일본은 1980년대 은행이 과도하게 신용을 창출한 탓에 1990년 버블 붕괴에 이르렀다. 은행이 무너지는 또 다른 상황은 돈을 맡긴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예금을 찾아가려 할 때다. ‘은행 달리기’라고 부르는 현상인데 신용이 생명인 은행을 믿지 못해 사람들이 맡긴 돈을 집중적으로 인출하는 사태다. 1929년 대공황이 악화하면서 1930년대 미국도 이런 경험을 했고 결국은 은행을 잠정적으로 폐쇄해야만 했다. 돈을 위험하게 양산한 탓에 사람들이 은행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야흐로 글로벌 금융 시대다. 한국만 보더라도 2020년대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영끌’과 빚을 져서 투자하는 ‘빚투’가 2030 세대의 일상용어가 되었을 정도로 자본주의 금융의 유전자는 한반도까지 번졌다. 일찍이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일본의 개인 외환 투자자)이 국가 간 이자율의 차이를 활용하는 국제 투자에 나섰듯이 ‘동학 개미’, ‘서학 개미’가 한국에서도 금융 시장의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했다.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곤란하다는 금융의 오랜 지혜는 이제 보편적 진실이 돼 버린듯하다. 주식, 채권, 부동산 삼위일체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 달러, 유로, 엔의 세계 통화 질서도 투자자의 체크리스트에 속한다. 부침이 심한 주식의 경우 시장의 평균적 움직임을 따라가는 인덱스투자가 유행이다. 미국의 다우존스와 S&P500, 나스닥 등의 온도가 세계 경제의 체온을 좌우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글로벌 금융 시대

 

오늘날에도 금융의 영역은 쉴 새 없이 부풀어지고 있다. 경제의 금융화, 즉 실물 경제가 금융의 논리에 종속되는 현상은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수전 스트레인지는 1986년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글로벌 금융 자본주의의 맹점을 지적했다. 돈을 불리려는 세력이 도박하듯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면서 실물 경제와 사회의 균형을 깨뜨렸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투자와 도박은 어차피 쌍둥이며 이를 구분해 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세계 금융은 인류가 문명의 새벽부터 추구해 온 미래를 계산하고 준비하는 성향을 먹고 자라는 공룡이다. 한국처럼 금융위기를 겪어본 나라들은 열심히 외환 보유고를 늘려 위험한 상황에 대비한다. 중국은 수출로 벌어들인 엄청난 외환 보유고를 미국 국채로 갖고 있다. 미·중 두 세력의 금융 의존이야말로 향후 세계 협력이나 평화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노후를 준비하는 수많은 사람의 저축은 연기금으로 집중돼 투자처를 찾아다닌다. 그뿐 아니라 국가들도 나서 국부펀드를 조성함으로써 나라의 미래를 준비한다. 예를 들어 북해에서 석유 개발로 횡재를 맞은 노르웨이는 수익을 대부분 미래 세대를 위한 펀드로 조성했다. 노르웨이의 국부펀드는 대략 유럽 주요 기업 주식의 2%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매장된 자산(석유)과 투자한 자산(펀드)의 미래 가치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단 자원 개발을 통해 현금으로 만든 뒤 국민 전체의 미래에 투자한다는 개념이다. 싱가포르나 서남아시아 산유국들도 유사한 국부펀드 전략을 펴고 있다.

 

분산 투자의 개별적 지혜는 결과적으로 세계 금융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중국이 미국의 국채로 외환 보유고를 관리하듯, 유럽의 은행과 보험회사도 미국 금융시장에 투자한다. 일본과 한국의 펀드는 인도나 브라질 등 ‘브릭스’의 미래에 한 발을 들여놓고, 미국의 연기금 또한 중국 상하이나 선전 시장에 말뚝을 박아 놓는다. 이렇게 다양한 타임머신이 하나의 그물로 연결됐다.

 

2008년 금융위기는 글로벌 투자가 위기의 세계화도 초래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미국의 위험한 금융 테크닉이 사고를 일으키자 상호 체계적으로 연결된 전 세계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었다.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각자도생의 분산투자 전략이 오히려 인류를 금융의 운명 공동체를 만든 아이러니로 나타난 셈이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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