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선거에서도 지지율 10% 이하 그쳐
정책 잇단 실패·도덕성 결여 신뢰 추락
혁명의 조국 프랑스, 좌우의 개념을 발명한 나라 프랑스에서 좌파가 정치적 소멸의 위기에 처했다. 2017년 대선에서 이미 좌파를 대표하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와 사회당 후보는 각각 4위와 5위로 밀려나 결선투표에 진출하지 못했다. 올 4월 치를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현직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를 넘는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는 한편, 극우 후보 2인(마린 르펜과 에리크 제무르)과 우파 후보 발레리 페크레스가 15% 전후의 지지율로 1강 3중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좌파에서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장뤼크 멜랑숑이 10% 정도의 지지율을 보이는 가운데 녹색당, 공산당, 사회당 등의 후보는 모두 5% 미만의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 결선투표는 중도 마크롱과 우파 또는 극우파 후보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의 좌파는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프랑스가 이미 자본주의 선진국 가운데 가장 좌경화된 경제사회 구조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2020년 프랑스의 정부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2%로 유럽에서 제일 높은 편이고 인구 6700만에 공무원은 560만명에 달한다. 이는 스칸디나비아의 복지대국들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법정 노동시간은 이미 주간 35시간으로 더 줄이기가 어렵고 법정휴가도 연간 5주로 늘리기가 부담이다. 말하자면 사회 자체가 더 왼쪽으로 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음은 좌파 정책의 반복적 실패와 그로 인한 신뢰의 하락이다. 노동시간을 대폭 축소해 고용을 나누고 실업을 줄인다는 주장은 실현되지 않았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경제가 잘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도 선거용 구호에 불과했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의 가장 큰 관심은 ‘구매력’임에도 불구하고 좌파 후보의 지지율은 바닥이다. 좌파의 정책 능력에 대한 깊은 불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끝으로 도덕적 실망이다. 예를 들어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2012∼17년)는 고액 소득에 대해 75%의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막상 예산부 장관은 해외에 비밀계좌를 통해 탈세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입으로는 사회정의를 외치면서 뒤로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추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 사건은 사실 빙산의 일각일 뿐, 다수의 좌파 정치인이 평등의 깃발을 들고 사실은 개인적 이익을 챙기는 데 골몰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좌파 후보들의 여론조사 결과는 도토리 키재기지만 일종의 흥미로운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 집권당이었던 사회당의 안 이달고 후보는 꼴찌다. 사회당에서 뛰쳐나온 후보나 공산당, 녹색당 후보 등의 성적이 조금 나은 편이다. 집권 경험이 전혀 없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좌파의 선두다. 좌파에 대한 일반적 실망에 더해 집권 사회당에 대한 유권자의 특별한 환멸이라고 부를 만하다.
사회당은 1905년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지부(SFIO)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유서 깊은 정당이다. 백년이 넘는 역사에서 프랑스의 집권하는 좌파의 대명사였다. 사회당은 인간적인 자본주의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크게 공헌한 바 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프랑스 사회당은 변화하는 세계화 시대에 적응하거나 집권세력으로서 충분한 자정(自淨)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초라한 몰락상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