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국제무대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을 연상케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럽 발틱해 연안 인구 280만 명의 리투아니아가 세계적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인구 14억의 중국과 맞장을 뜨고 나섰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와 중국이라면 솔직히 다윗과 골리앗이 아니라 새우와 고래라는 비유가 더 정확할지 모른다.
둘 사이에 쟁점은 중국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대만 문제다. 리투아니아는 작년 수도 빌뉴스에 대만대표부의 설립을 허락함으로써 중국 정부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대만 정부를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수십 개의 공관이 유럽에서 활동하나 중국 눈치를 보는 유럽 국가들은 타이베이 대표부라는 명칭만을 허락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대만은 영토, 국민, 주권을 가진 엄연한 국가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명령을 내린다고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이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말라는 중국의 강력한 외교적 억지를 세계가 인정해 주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사과를 바나나라고 부르라는 생떼나 마찬가지다. 놀라운 사실은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생떼가 통해 왔다는 점이다. 1970년대부터 미국과 일본, 그리고 1990년대 한국 등 대만의 전통 우방은 한결같이 대만을 부정하고 중국을 선택하는 ‘배신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2020년대 중국은 반세기 전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가 되었고 군사적으로도 강대국으로 부상 중이다. 이제 중국의 영향력과 입김은 특이한 입장을 가진 나라의 고집이라기보다는 대국의 횡포라고 부를 만한 구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번 리투아니아의 대만대표부 허용에 중국은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외교와 경제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로 인해 지난달 15일 리투아니아는 결국 베이징 대사관을 잠정 폐쇄하고 외교관과 가족을 전원 귀국시켰을 정도다. 중국은 리투아니아의 대중 수출을 금지했고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의 다른 국가에도 리투아니아 제품이 포함된 상품 수출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중국은 리투아니아의 12번째 무역 대상국일 뿐이다.
대만 문제에 유난히 민감한 중국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었는데도 리투아니아는 왜 이런 위기를 자초한 것일까. 일례로 지난 1981년 네덜란드는 잠수함을 대만에 수출하면서 중국과 외교적 냉각기를 가졌던 경험이 있었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사태로 중국과 유럽의 관계가 네덜란드와의 충돌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다.
전반적으로 중국에 대한 유럽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20세기의 중국은 그래도 유럽의 자본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중국이 세계 경제의 거대한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이제는 유럽이 중국의 자본과 투자를 갈망하는 시대가 되었다. 힘의 균형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했다는 사실을 인식한 중국은 오만한 태도로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다.
특히 과거 나치 독일이나 공산 소련의 침략과 지배에 시달렸던 중·동유럽의 중소규모 국가들은 점차 강화되는 중국의 오만과 횡포를 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2010년대 중국은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한 나라에 대해 철저하게 보복했고, 중앙 정부를 뛰어넘어 지방 정부와 직접 거래했으며, 체코에서는 내정 간섭에 해당하는 첩보 행위가 발각되기도 했다. 2019년 리투아니아에서는 친 홍콩 시위를 막기 위해 중국 외교관들이 직접 교민과 학생을 동원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중국이 경제적 풍요를 선사할 수 있다는 희망도 이제 희미해지는 추세다. 중국의 투자는 일부 국가에 집중되었고 이들에게도 그 정치적 대가를 톡톡히 요구했다. 중국이 중·동유럽 국가를 동원해 만든 ‘17+1’이라는 기구도 최근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2021년 리투아니아가 기구에서 탈퇴했고 시진핑이 주재하는 정상회의에도 6개국은 정상이 아닌 장관급 대표만을 보냈다.
중국의 횡포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기미도 가득하다. 일찍이 한한령과 사드 보복을 당한 한국은 물론, 코로나 조사를 요구했다가 석탄과 포도주 수출이 막힌 호주, 무고한 시민이 인질로 잡혀버린 캐나다 등 유럽 말고도 중국의 무리한 사례는 넘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2020년대는 중국의 횡포가 세계의 반발로 돌아오는 부메랑의 시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