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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도쿄 올림픽이 연출한 초현실 무대

    • 등록일
      2021-07-30
    • 조회수
      230
코로나·반대 여론 속 빛바랜 ‘인류의 축제’
‘다함께’ 외치지만 ‘정치적인 올림픽’ 씁쓸

100여년 전 출간되어 부조리한 현대사회를 알린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은 주인공 요제프 K가 어느 날 아침 영문도 모른 채 체포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도쿄 올림픽의 개막식을 보면서 이 황당한 장면이 연상된 이유는 아마도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초현실의 무대였기 때문이리라.

 

굳이 달력을 보지 않아도 현재가 2021년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데 ‘도쿄 2020’이 사방에서 ‘오늘이 어제’임을 강요하고 있다. 비단 올림픽만 이런 꼼수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축구대회 유로 2020이나 두바이의 만국박람회 두바이 2020도 마찬가지다. ‘쌍 8년’이라는 표현처럼 문화가 달라도 ‘쌍 20’이 행운의 수임을 믿기 때문일까.

 

올림픽 주경기장은 원래 2014년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설계가 선정되었으나 대규모 예산과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취소된 우여곡절이 있었다. 일본인이 설계한 신설 경기장은 6만8000명이 정원이지만 1000명 남짓한 VIP만이 참석해 텅 빈 모습이었다. 미국의 조 바이든이나 내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중국의 시진핑 등 주요 국가원수들은 대부분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북한은 선수단조차 파견하기를 거부했다. 반면 국가의 조직적 약물투여로 지탄받는 러시아는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라는 깃발 아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했다.

 

205개국 선수단의 입장을 동반하는 무용수들의 날갯짓은 무기력해 보였다. 거리두기 때문인지 드문드문 서 있는 선수들의 어정쩡한 모습은 인류의 축제보단 동네 체육대회 같았다. 이번 올림픽은 일본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의 대다수가 올림픽 개최를 반대한다. 개막식이 진행되는 그 순간에도 경기장 입구에서는 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폐쇄적 순혈주의로 유명한 일본에서 테니스의 오사카 나오미나 농구의 하치무라 루이 등 ‘하푸’(혼혈)들을 각각 성화 주자와 대표 기수로 내세운 것은 개방을 상징하는 분명한 발전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일본 사회에 뿌리내린 구조적 차별주의를 감추지는 못했다. 일본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위원장을 비롯해 개막식 예술감독이나 작곡가 등이 각종 여성 멸시 발언, 유대인 학살 부정, 장애인 학대 등의 스캔들로 도중에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7~8월은 또 고온다습한 기후라 운동하기에 적합한 날씨가 아니다. 세계 스포츠 스타들이 어깨를 겨누며 메달 경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나 막상 도쿄 시민의 휴대폰에는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야외 운동을 피하라는 문자메시지가 뜨고 있다. 미식축구나 농구 시즌이 시작되는 가을은 피해야 한다는 미국 방송사들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되어 열사병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한여름에 올림픽이 개최되기 때문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는 쿠베르탱 백작이 제시한 유명한 올림픽정신이다.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다 함께’를 덧붙였다. 다음 하계올림픽을 개최하는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사설을 통해 불행히도 현실은 ‘더 비싸고, 더 비난받는, 더 정치적인’ 올림픽이 되었다고 진단내렸다. ‘다 함께’를 더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도쿄 올림픽이 연출하는 초현실적 불행의 영문과 까닭을 너무나 잘 알기에 더 커다란 절망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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