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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잠자는 이성, 괴물을 낳는다
 
경향신문 | 2015-11-01
 
“젊은이들의 정신을 동여매는 나라의 미래는 확실히 더 절망적이다.” 이것은 민주공화국 한국의 정체성을 흔들기 위해 국민을 선동하는 종북세력의 슬로건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고장 영국에서, 자유민주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이코노미스트지가 한국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역사인식의 혼란이 미래에 국가 분열을 가져올 뿐”이라는 황우여 장관의 주장을 반박하며, 국정화가 ‘더 절망적’ 결과를 낳을 것이란 설명이다.
 
나는 얼마 전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정체성의 축으로 세우자는 한국 보수의 입장을 진심 환영했다. 반공독재를 포장하는 가면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악용한 과거를 모르지 않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 보수는 변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군부독재정당 이름이 민주정의당이었다고 우리가 민주와 정의의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예전에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의 명성을 더럽혔다고 이 소중한 사상을 내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는 잠시뿐, 박근혜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들고나왔다. 국정화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선전포고이며, 자유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내가 종영(從英)세력(?)으로 몰릴 각오를 하고 모두(冒頭)에서 인용한 이코노미스트지는 자유주의가 국정화에 대해 갖는 단순명료한 시각을 말한다.
 
자유주의의 기본은 시민사회와 시장의 다양성과 경쟁이다. 국가가 하나의 획일적 교과서로 청소년을 세뇌하는 계획을 종북과 좌편향을 타개하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정책으로 포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논리적으로 하나의 올바른 교과서가 필요하다면 하나의 착한 언론, 올바른 방송, 국론통일의 정당이 있어야 한다. 전체주의로 가자는 말이다.
 
자유주의의 고전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토크빌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공통점은 평등이지만, 전자는 자유의 평등이고 후자는 제약과 예속의 평등이라고 분석했다. 또 <자유론>의 존 스튜어트 밀은 아무리 검증받은 사실도 “인간의 현재 이성이 허용하는 수준 안에서 검증받은 데 지나지 않으므로 그것이 절대 진리라고 확신할 일은 결코 아니”라고 역설했다. 자유민주주의자 밀이나 토크빌이라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는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국가가 휘두르는 사회주의적 폭력’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비극은 한국의 보수 가운데 합리적 판단능력과 소신을 갖고 최소한의 상식을 말할 수 있는, 존중할 만한 양심세력조차 찾아보기 어렵다는 현실이다. 새누리당이 권위주의적이고 과거지향적 정책에 일사불란하게 동원돼 대국민 홍보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 서글프다. 권력자에게 아첨하고 지역과 세대 갈등에 편승하여 국회의원 감투를 누리겠다는 기회주의적 정치꾼만 보이고 용기 있는 자유민주주의자는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역사학계의 다수가 진영의 논리를 벗어나 국정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야말로 ‘올바른 소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바른 역사’는 ‘부모를 학대하는 효자’와 같은 모순어법이다. 역사서술의 근본은 사실이며,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올바름의 잣대로 역사를 주물러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자유민주주의’의 입장에서 ‘올바른 역사’란 존재할 수 없으며 단지 ‘다양한 역사관과 서술’만이 가능하다.
 
국정화 사태를 바라보며 200년도 넘는 과거 18세기 말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과 그 제목이 떠오른다.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낳는다.’ 책상에서 작업하던 화가가 잠든 사이 광기를 상징하는 올빼미와 무지의 표상 박쥐가 어둠 속에서 활개를 치는 장면이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자들이여, 진영논리에서 깨어나 이성을 되찾을 시간이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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