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 시대공감] 동아시아 영토분쟁과 유럽식 해법
중앙SUNDAY | 2014-11-09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100년 되는 해다. 11일은 이 거대한 참극이 4년 만인 1918년 종결된 기념일이다.
많은 전문가는 21세기의 동아시아가 불행히도 최초의 세계대전에 휘말린 100년 전 유럽과 흡사한 형국이라고 지적한다. 쇠락하는 일본과 러시아, 급부상하는 중국, 그리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미국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모습이 닮았다.
나라마다 민족주의 세력이 득세하면서 군비경쟁이 불붙어 동아시아 안보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상대로 한 i-font-family: 맑은 고딕;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 작은 분쟁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다.
태평양에 산재한 섬들을 둘러싼 영토 분쟁은 그런 큰 분쟁을 촉발할 뇌관이 될 수 있다.
중국과 일본 간의 댜오위다오–센카쿠 분쟁이나 중국·필리핀·베트남·대만·말레이시아·브루나이가 각자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사·서사 군도는 제한적 규모의 영토 분쟁이지만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상징성 때문에 지역 내 평화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처럼 여러 나라들이 주권을 주장하는 영토 싸움은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이다. 주권이 지닌 절대적·배타적 속성 때문에 나의 섬은 남의 땅이 될 수 없고, 남이 차지하면 나는 손해 보는 게임이다. 미래로 문제를 넘길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분쟁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영원한 대결의 불씨를 제거할 방법은 없을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른 끝에 통합을 성사시킨 유럽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유럽은 1950년대 석탄·철강 부문에서 각국이 주권의 일부를 양도해 공동 관리함으로써 통합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어 산업과 화폐·군사 부문으로 통합의 범위를 넓혀 유럽연합(EU)이라는 실체를 형성했다. 』라는 저서에서 이를 ‘주권 더하기’라고 불렀다. 시장이 지배하는 세계화 물결에 위축된 국가 주권을 ‘모으기(pooling)’를 통해 되찾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동아시아도 분쟁 대상이 된 영토들에 대해 관련 국가들이 공동 관리하는 ‘주권 웅덩이’를 만들 수 있다. 분쟁 대상 도서들이 주권 웅덩이에 참여한 국가들의 공통 자산이 되는 것이다.
유럽연합을 건설한 ‘유럽 집행위원회’처럼 이 섬들을 관리하는 기관은 초국적 기관의 성격을 띤다.
많은 사람이 자본을 공동으로 출자해 만든 주식회사라는 조직 형태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왔듯이, 동아시아의 초국적 기관인 ‘평화공동체’는 분쟁의 씨앗을 하나의 웅덩이에 담아 협력의 발판으로 삼게 된다.
이 ‘주권 웅덩이’에서 각국의 지분을 결정하는 문제는 외교적·기술적인 사항일 뿐이다. 중요한 건 EU를 성공으로 이끈 대국의 양보와 소국에 대한 배려의 정신에 입각해 협력을 도모하는 것이다.
각국 지도자의 결단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이 계획은 쉽게 실현할 수 있다.
주권 포기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잘못된 시각이다. 주권을 포기하는 대신 하나로 모으고, 이를 다른 영토로까지 확대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원개발 같은 경제적 이익은 해당 국가들이 나누어 가지는 형식이 될 것이다.
가장 큰 수확은 국제분쟁의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미래의 평화를 상징할 협력체를 만든다는 점이다.
이런 시도가 실현된다면 ‘무인도들의 평화공동체’ 수준을 넘어 태평양 연안의 도시들을 초국적으로 관리하는 네트워크까지 상상할 수 있다.
주요 2개국(G2) 시대에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한 태평양을 진정한 평화의 바다로 만드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