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내용 바로가기 사이트정보 바로가기

정치외교학과

메뉴

정외뉴스

제목 - 설명



[시론/서병훈]검사들이여 검을
뽑아라







거짓말에도 급수가 있는가.

19세기 영국 정치가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에 된통 당했던 모양이다. 그는 ‘3대
거짓말’로 그럴듯한 거짓말, 가증스러운 거짓말, 그리고 통계를 꼽았다.




그럴듯한 거짓말 중에서 선의의 거짓말은 조금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이익을 위해 지어낸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고상한 거짓말도 있다. 여러 나라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자민족 우월주의’가 그런 것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위대한 거짓말이
진실보다 더 좋을 때도 있다는 말이 나돌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사회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이 정당화되기 어렵다.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수단이 올바르지 못하면 용납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증스러운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이라면 더 말해 무엇 할까. 빨강은 노랑, 파랑과 함께 3원색이지만 시각적으로 훨씬 더 강렬한 자극을 준다.
그래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거짓말에 ‘새빨간’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빨강이 넘친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가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을 건네준 수법과 로비 정황이 밝혀지는
대목에서도 그렇다. 청목회원들이 현금을 직접 건네거나 의원들의 후원회 사무실 근무자의 개인 계좌 등으로 후원금을 보낸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해당 의원들은 구구하게 변명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청목회 후원금인 줄 몰랐다”는 의원들의 주장이 또 하나의 새빨간 거짓말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정치인이 거짓말을 한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범죄를 도모하거나 은닉하기 위해서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법을 어기다 못해
거짓말까지 한다면 당장 정치를 그만두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다르다. “표적수사” 운운하며 마치 의로운 사람이 억울하게 핍박받는
것처럼 포장한다. 거짓말을 대단한 신념인 것처럼 미화하기까지 한다. 끝내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면서 거짓말한 사람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영화를
누리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언제까지 이런 구닥다리 물레방아를 돌려야 하는가.




우리는
사필귀정을 믿고 싶어 한다.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이 드러나고, 진리가 끝내 이기리라 자기최면을 걸기도 한다. 물론 거짓이 영원히 감춰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거짓을 이겨내기까지 긴 시간이 흘러야 할지 모른다. 그동안 불의를 저지른 자가 잘 먹고 잘산다면, 이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리와 염치(廉恥)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는 데 더디다. 법은 상대적으로 빠르고 좀
더 확실하다. 거짓을 밝혀내기 위해, 거짓말한 사람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법이 필요하다.





국민이 검찰을 주목하고 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사익에 치우친다면 그 법은 정당성을 잃고 만다. 지금 한국 검찰의 신세가 말이 아니다.
민간인 사찰을 둘러싸고 대포폰 이야기가 난무하는데, 국민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대포에 웬 폰이 필요하단 말인가. 한쪽 손으로 엄정 법집행을
다짐하면서 다른 손으로 거짓말하면 그 법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법집행의 최일선에 선 검찰이 새빨간 사익에 휘둘린다면 그것은 이미 검찰이
아니다. 법이 권력의 시녀라고 인식되는 곳에서 정의는 요원할 뿐이다.




용기
있고 청렴강직한 젊은 검사들이 왜 없겠는가. 그들의 궐기를 촉구한다. 청목회 사건을 수사하는 것과 똑같은 잣대, 동일한 결의로 대포폰을
척결하라. 자기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고 환부를 잘라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검찰이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거짓말 범람을 차단할
수가 없다. 검찰이 거듭나게 힘을 모아 주어야 한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 정치학





동아일보
기사입력 2010-11-20 03:00/  기사수정 2010-11-20 04:43




바로가기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