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영화 배우 드파르디외 성추문 내홍
예술계 이어 정계까지 옹호·비난 양분
프랑스의 영화계가 전쟁을 방불케 하는 대립으로 뜨겁다.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는 스타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를 둘러싼 수많은 일탈적 언행을 두고 예술계가 양분되어 지지와 비판의 성명서를 내놓는 것은 물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까지 나서 충돌의 한편에 섰기 때문이다.
21세기 한국 관객에게는 생소하겠으나 드파르디외는 1970년대와 1980년대 프랑스 영화의 전성기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였다. 로버트 드니로가 미국의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스타였다면 드파르디외는 프렌치 무비의 얼굴이었다. 그는 2000년대까지도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 영화 시리즈에서 오벨릭스를 연기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최근 프랑스 예술계를 불붙인 쟁점은 드파르디외의 강간 및 성폭행 그리고 여성 비하적 발언들이다. 그는 2020년 20대 젊은 여배우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지난달에는 TV에서 2004년부터 2022년까지 그가 여성을 추행하거나 폭행한 전력,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 등을 취재한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북한 방문 당시 말 타는 10세 소녀를 보고 “여자들은 승마하면서 음핵을 자극받아 즐긴다”는 드파르디외의 발언은 특히 충격적인 방송 내용이었다.
70대 스타의 개인적 일탈을 전국적 충돌로 끌어올린 사건은 보수 신문 르 피가로에 실린 영화예술계 거물 50여명의 드파르디외 지지 성명서 발표다. 미국식 ‘캔슬 컬처’에 견주어 ‘드파르디외를 지우지 말라’는 제목을 달아 ‘마녀사냥’을 비판함으로써 프랑스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형식이었다. 이들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존중해야 하며 드파르디외를 비판하는 일은 예술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나서 드파르디외는 프랑스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훌륭한 배우라면서 현재 프랑스를 뜨겁게 달구는 ‘인간 사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지지 성명은 곧바로 3개의 반대 성명을 초래했다. 리베라시옹, 메디아파트 등에 수백여명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서명한 성명서가 일제히 발표되었다. 이들은 드파르디외의 예술적 업적이 개인적 일탈이나 범죄를 정당화하지는 못하며 오히려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예술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드파르디외 옹호 또한 정계의 뜨거운 반응을 초래했다. 르 몽드는 ‘대통령의 정치적 잘못’이라는 사설을 통해 마크롱을 비난했고, 녹색주의 세력은 대통령이 ‘폭력의 문화를 진흥하는 사령관’이라고 지적했다. 사회당에서는 대통령이 ‘처벌받지 않는 강자의 사회’를 대변한다고 꼬집었고, 우파 공화당조차 마크롱이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덧붙여 드파르디외 지지 성명을 추진한 인물이 극우 세력과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많은 지지 서명자조차 후회한다는 뒷소문이다.
어린 시절 집단 강간에 참여했다는 추문으로 1991년 미국 영화계에서 낙인이 찍힌 드파르디외는 그 후 미국을 비난하는 데 앞장섰고 덕분에 러시아나 쿠바, 북한 등지에서 영웅 대접을 받아 왔다. 남녀평등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 자유 민주 세계에서 드파르디외의 운명은 다해 가는 듯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미국과 각을 세우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쿠바, 알제리, 터키 등 다양한 나라의 국적과 여권이 있어 세금도 적게 내고 여전히 세계를 누빌 수는 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