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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세계속으로] 암호화폐와 이기주의

    • 등록일
      2022-11-30
    • 조회수
      157
선행위해 돈 번다는 효율적 이타주의
FTX 파산으로 드러난 이기주의 민낯

돈도 벌고 착한 일도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에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옛말에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산다”는 표현도 있다.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는 성공적 사업가가 번 돈을 사회에 선행으로 환원하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나 석유 재벌 존 록펠러부터 20세기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21세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까지 경쟁 기업을 살벌하게 제거한 뒤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은

나중에 재단을 만들어 사회와 인류에 돈을 일부 환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남을 돕기 위해 돈을 번다면 멋진 일이 아니겠는가.

 

암호화폐 업계의 떠오르는 별이었던 샘 뱅크먼프리드는 처음부터 최다수의 사람을
돕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밝혔다.
사업에서 버는 모든 돈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운동에 기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성직자처럼 선행을 위한 삶을 살기로 한 셈이다. 올 초 그의 자산은 실제 260억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에 달했다.

뱅크먼프리드는 2010년대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시작하여 영미 자본주의 사회의 화두로 등장한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를 실천하는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이타주의는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을 위한 선행을 뜻한다.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커다란 선을 베풀기 위해서는
냉정하고 철저한 사고와 계산이 필요하다고 효율적 이타주의는 말한다.
최대의 자원을 확보해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광고에 넘어가지 말고 어떤 단체가 실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지 치밀하게 조사한 뒤 기부하라는 충고다.
또 자신이 최대한 돈을 많이 벌어 기부를 많이 할수록 선행의 효과는 늘어난다는 단순한 지적이다.

돈벌이를 죄악시하지 말고 번 돈을 잘 쓰면 된다는 철학이다.

 

투기와 탐욕이 난무하는 새로운 암호화폐의 장에서 뱅크먼프리드는 2019년 FTX라는 거래소 사업을 시작해 급성장했다.

그는 암호화폐 거래와 투자가 남을 돕는 선행의 수단이라고 포장했던 셈이다.
하지만 지난 11일 그의 FTX는 파산을 선고하고 말았다. 첨단금융과 이타주의를 융합한 ‘천재 청년’의 추락으로

효율적 이타주의가 결국은 뛰어난 사기꾼의 이기주의에 악용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벤처캐피털 업계의 큰손 세쿼이아나 소프트뱅크, 싱가포르의 국부펀드 테마섹은 모두

뱅크먼프리드의 사업에 투자한 세력들이다. 테니스의 나오미 오사카나 야구의 데이비드 오르티스,
농구의 샤킬 오닐 등도 그의 주변을 맴돌며 투자를 장려한 세계적 스포츠 스타들이다.

이들은 거대한 사기의 공범일까, 아니면 순진한 피해자들일까.

뱅크먼프리드의 일탈은 효율적 이타주의를 검게 덧칠했다. 효율적 이타주의의 영어 이니셜을 딴 EA 운동은

6000여명의 엘리트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뱅크먼프리드는 이 운동의 가장 큰 재정 기부자였다.
그와 함께 암호화폐 사업을 벌였던 측근 9명도 EA 운동의 회원이며 카리브해 바하마에 위치한

펜트하우스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래도 선행을 위해 돈을 번다는 너무나 아름다운 공식은

탈세 천국에 똬리를 튼 암호화폐의 세계에서 실현되기에는 무리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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