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가스 무기화로 에너지 위기 ‘발등의 불’
佛·獨 등 검약 내세우며 ‘연대의 힘’ 촉구
유럽을 향한 위기의 태풍이 사방에서 서서히 조여드는 모습이다. 에너지 위기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러시아는 가스 파이프라인의 꼭지를 잠그면서 유럽의 에너지 시장에 경고를 보냈다. 날씨가 추워지고 겨울이 닥치면 에너지라는 무기의 파괴력이 증폭되는 일명 ‘푸틴의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에 크게 의존하는 유럽에서 에너지 공급이 줄어 가격이 폭등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은 점차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적어도 우크라이나 지지에 대한 유럽 내부의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은 커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계산이며 동시에 미국이 우려하는 시나리오다. 겨울이 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승기(勝機)를 잡을 수 있다고 전망하는 배경이다.
유럽은 또 미국과 유사한 인플레이션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8월 유럽의 인플레는 9% 수준까지 급등했고 따라서 오는 8일 유럽중앙은행(ECB)은 물가를 잡기 위해 이자율을 높이는 세계적 흐름에 동참할 예정이다. 그러면 당장 국채가 많은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는 금융위기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이미 이번 여름 유로화의 가치는 20년 만에 달러 아래로 떨어져 유럽 경제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게다가 올 하반기는 미국, 유럽, 중국 등 세계 경제의 주요 세력이 동시에 불황에 빠질 것으로 보이는 위험한 상황이다. 중국 수출에 크게 의존하던 유럽 경제의 기관차 독일마저 견인의 역할을 담당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역사적 상황에서 유럽 사람들은 ‘위기는 기회’라는 격언을 자주 사용한다. 같은 한자 기(機)를 두 단어에서 모두 활용하는 동아시아의 지혜라고 소개하면서. 동아시아의 지혜는 어쩌면 유럽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유럽 국가 대부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인식한다. 민주적인 평화국가 우크라이나를 이웃 강대국 러시아가 아무런 이유 없이 침공한 야만적 행위로 규정한다. 따라서 독재 러시아의 에너지 협박은 우크라이나를 넘어 민주 유럽을 향한 전쟁 행위로 간주하며,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자유를 수호하는 투쟁이라고 정의하는 모습이다.
난방 온도를 낮춰 가스 사용을 줄이고,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며 심지어 전등을 꺼 전기 소비를 줄이는 행위가 모두 유럽의 자유와 안보를 위한 일이라고 규정한다. 시민의 에너지 절약이야말로 협박을 일삼는 독재자에 저항하여 우크라이나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유럽 미래세대의 삶을 준비하는 지름길이라는 논리다. 이성을 넘어 집단적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이다.
찬 바람의 계절에 유럽은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치솟는 에너지 가격을 견디지 못하고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가 제공하던 안락함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 운명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삶의 패턴으로 돌입하는 기회로 삼을 것인가.
프랑스 정부와 비즈니스는 최근 ‘검약’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외치기 시작했고, 독일도 유럽의 에너지 연대와 공동정책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오는 9일 유럽연합(EU)은 긴급 정상회담을 통해 에너지 소비 축소, 가격 통제, 가계 및 중소기업 지원 등의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물론 최종적 결과는 시민들이 행동으로 보여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