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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신문] 회갑 맞은 한국 외교, 청년이 되어야 (22.06.16)

    • 등록일
      2022-06-17
    • 조회수
      145

한국과 아프리카 가봉의 수교 60주년을 맞아 현지에서 열리는 기념 학술 세미나에 참여하는 길은 숨차게 멀다. 서울부터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까지 비행만 20시간이 넘는 장도(長途)인 셈인데 내가 처음 아프리카로 향했던 1970년대에 비해도 여행 시간은 크게 줄지 않았다. 세계화니 뭐니 지난 반세기 지구촌의 변화를 떠들썩하게 형용하나 아프리카로 가는 여정만큼은 제자리다.

 

지금부터 60년 전, 그러니까 1962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작은 신생국이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한국과 가봉, 각각 일본과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1948년과 1960년 새로운 나라를 세워 출범했다. 한국전쟁이라는 태풍과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한국은 1960년대 들어서야 제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인 외교의 궤도로 올라선 듯하다.

 

왜냐면 1962년은 대한민국이 가장 많은 나라와 수교를 맺은 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교국은 1960년까지 16개국에 불과했다. 아프리카에서 신생국이 대폭 늘어나면서 한국은 1961년에 11개국, 그리고 1962년 28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함으로써 단숨에 수교국을 3배 이상(55개국) 증폭했다. 달리 말해 2022년은 한국 외교가 국제무대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뒤 그 회갑을 맞는 해라고 볼 수 있다.

 

유한한 인생에서 회갑은 인생을 정리하기 좋은 시기지만 무한한 국가의 운명에서 60년은 태어나 성인이 되는 성장기에 해당한다. 이제 사춘기의 방황을 넘어 개성을 가진 성숙한 청년이 되어 활발하게 자기 뜻을 펼쳐 나가야 하는 순간이 도래한 모습이다.

 

이 점에서도 가봉과 아프리카는 한국 외교의 성격을 잘 드러내 주는 지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영화 <모가디슈>에서 극적으로 표현했듯 한국의 아프리카 외교는 기본적으로 북한과의 경쟁이 초래한 과장된 연출이었다. 1975년 아프리카 국가 원수로서는 한국을 처음 방문한 가봉의 오마르 봉고 대통령은 그 전해 미국 제럴드 포드 대통령만큼이나 많은 인파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7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닌 연령대에서는 환영을 위한 강제 동원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남북 경쟁이 성장기 한국 외교의 동력이었다면 강대국 ‘따라 하기’는 방향을 제시하는 추였다. 식민지의 뼈아픈 경험에서 갓 벗어난 콤플렉스로 한국은 아프리카 신생국과 대등한 관계를 구상하기보다는 미국이나 프랑스, 최근에는 중국과 같은 새로운 강대국이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드물게도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었다. 북한은 이제 외교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힘을 불어넣어 주던 채찍이 사라진 셈이다. 강대국 ‘따라 하기’도 막다른 골목이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 등과 영향력으로 견줄 만한 규모도 능력도 부족하다. 섣부른 강대국 흉내는 오히려 부작용과 반발심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21세기 지구촌에서 한국이라는 ‘청년 국가’는 어떤 개성과 뜻을 가지고 외교를 펼쳐 나가야 할까. 한국 사회가 다양한 목소리와 지혜를 모아 논의를 진행하는 2020년대가 되기를 바란다. 적어도 방향은 뚜렷해 보인다.

 

우선 북한과의 소모적 경쟁을 대체하는 외교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국가와 사회로서 한국은 국제무대에 크게 공헌할 수 있다. 제국주의의 과거에서 자유로운 거의 유일한 민주 국가로서 개도국에 자연스레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서방의 함정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길이라고.

 

또 과거에 당한 만큼 약소국을 이용하겠다는 복수의 역사관이나 어설픈 강대국 흉내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국주의와는 다른 ‘윈윈’의 국제관계 모델을 만들겠다는 상상력과 야망, 실천력이 필요하다. 한·중·일 협력을 강조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나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준다는 김구의 ‘문화대국론’은 제로섬 게임의 맹점을 일찍이 짚었다.

 

청년 한국은 초심으로 돌아가 마땅하다. 안중근이나 김구를 국내의 정치적 동원을 위한 감성적 민족주의 구호로만 활용하지 말고 국제사회에서 소외된 약소 민족·국가의 고민을 담은 보편적 청사진으로 곱씹어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꿈을 실천할 여건이 드디어 마련되었으므로.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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