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총기 4억개 넘어 인구보다 많아 사고 빈번
정파 이익 따지다 총기 규제 시도 매번 막혀
뉴욕주 버펄로에서 단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슈퍼에서 장을 보던 사람들이 총탄에 집단으로 죽어 나갔다. 텍사스 유밸디에서는 방학을 이틀 앞두고 신나게 등교했던 어린이들이 돌격소총탄에 맞아 한꺼번에 열아홉명이나 목숨을 잃은 참사가 벌어졌다. 모두 세계의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에서 최근 일어난 일이다.
잔혹한 인종주의의 광기나 약자를 짓밟는 야만의 끔찍함에 절망을 더하는 요소는 미국에서 이런 사건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제 20세 미만의 미국 어린이나 청소년은 총으로 숨질 가능성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을 가능성보다 크다. 미국에 축적된 총기의 수가 4억정을 넘어서 인구보다 많다고 하니 당연히 총기로 인한 사상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총기 관련 매우 예외적인 나라다. 주(州)마다 차이는 있으나 성인이라면 상점이나 인터넷을 통해 총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전쟁에서나 쓰일 연사(連射) 가능 M16이나 K1 같은 돌격소총도 일반인에게 판매된다. 덕분에 미국의 살인율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며 유럽의 4∼5배에 달한다. ‘묻지마’ 총기 난사 사건도 2009년 이후 270건에 달하며 그로 인한 사망자는 1500명을 넘는다.
총이 사람보다 많은 나라의 일상은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2021년 한 해 동안 영국의 경찰은 2명의 사람을 쏴 죽였고 프랑스 경찰은 30여명 수준이었다. 반면 미국 경찰은 10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 상대가 총을 가졌을 확률이 높기에 경찰도 방아쇠를 쉽게 당기는 환경이다. 총은 자신을 향한 폭력에도 사용된다. 미국에서 총기 관련 사망자는 매년 4만명이 넘는데 그 가운데 절반 정도가 자살이다. 총기를 활용한 자살은 실패 가능성이 제로(0)에 가깝다.
총기 난사·범죄·사고가 늘어나면서 사회도 변모하는 중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총기 구매와 소지가 늘어나면서 악순환이 증폭하고 있다. 반복되는 학교 총기 사건으로 교육 기관이 요새가 돼 가고 있다. 감시 카메라나 금속 탐지기의 확산은 물론 피난시설이나 방탄조끼·배낭 등이 날개 돋친 듯이 팔린다는 소식이다.
미국 사회는 코로나19 위기 이후 범죄가 급속하게 증가하는 걱정스러운 경향을 보인다. 2020년 살인의 수는 전년 대비 30%나 크게 늘었고, 2021년에도 5% 더 증가해 1991년 최고 기록(2만4703명)에 육박하고 있다. 보건 위기로 인한 사회 격리나 봉쇄에도 강력범죄는 대폭 증가한 셈이다. 총기의 난립은 분명 미국의 고질병인데 불행히도 개선의 길은 보이지 않는다. 총기 소지의 권리를 헌법으로 규정한 미국의 정체성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의 판매 제한이나 관리체계조차 극구 반대하는 공화당의 경직된 태도가 변화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본연은 사회의 갈등을 완화해 평화와 질서를 이룩하는 일이다. 특히 민주주의란 대립하는 차이의 각을 둥글게 깎아 화해와 타협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다. 미국 총기 문제에서 드러나고 다른 민주국가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불행은 정당과 정치인들이 사회의 대립각을 오히려 날카롭게 세워 개인과 정파의 이익만을 챙기는 제도의 왜곡이다. 확연한 정책 실패를 외면하며 자기 진영의 이데올로기적 교리만 강조하는 아집이 한국 정치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