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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신문] 미·중 대결 속 한국과 유럽(21.11.11)

    • 등록일
      2021-11-11
    • 조회수
      259

혼란의 도널드 트럼프 시대가 가고 조 바이든이 등판하면서 세계 정치의 정상화를 기대했으나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는 변하지 않았다. 지난 40여 년 동안 세계는 경제발전이 중국을 기존의 국제질서와 화합하는 방향으로 이끌 것을 기대했다. 풍요로운 삶의 안락함이 전투적 의지를 누그러뜨리면서 평화와 타협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이런 기대는 빗나가면서 거품이 되었다. 시진핑의 중국은 일대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세계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자신의 불행이 중국의 부당한 전략에서 비롯된다는 담론과 정책을 내세웠다. 트럼프를 누르고 당선된 조 바이든도 중국에 대한 적대적 대립의 정책은 유지하고 있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미국과 중국을 두고 국제사회는 신냉전의 분위기가 감돈다. 세계 정치를 지배하기 위한 미·중의 대결 구도에서 중간에 낀 동아시아와 유럽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지난 4일과 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정책 대화의 주제였다. 한국의 세종연구소와 유럽의 브뤼셀자유대학(VUB)이 공동으로 마련한 자리에서 양측 전문가는 두 지역의 유사성에 대해 공감하면서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세계 평화에 공헌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확인했다.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는 냉전 시기에 그랬듯 미·중 충돌의 시대에도 유럽이나 동아시아는 선택을 강요받을 가능성이 크다. 양자택일이 필연이라면 동아시아와 유럽 모두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자연스럽다. 1996년 출판한 <지역의 세계: 미국의 지배 속에서 아시아와 유럽>이라는 저서에서 피터 카첸스타인 교수는 미국의 힘은 아시아와 유럽이라는 동맹의 기둥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한·미, 미·일 동맹은 이런 세계 구도의 기본적 골격인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유럽이나 동아시아는 최근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에 동원되는 양상이다. 이런 변화의 상징은 아마 인도·태평양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1990년 이후 탈냉전기 국제무대에서 유행하는 표현은 중국을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이었다. 반면 2010년대는 중국을 제외하면서 포위하는 인도·태평양 개념이 급부상했다. 지경(地經)학적 아·태가 지정(地政)학적 인·태로 대체된 셈이다. 유럽은 2019년 중국은 체계적 경쟁자(Systemic rival)로 규정한 바 있고, 미국을 따라 인도·태평양 정책을 논하는 단계에 돌입했음을 이번 회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유럽이나 동아시아가 중국을 마냥 적대시할 수만은 없다. 미국이 세계 지정학의 중심이라면 중국은 이미 세계공급사슬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와 유럽은 중국 경제에 심각하게 의존하는 구조다. HSBC 은행의 계산에 따르면 중국에서 1%의 경제성장은 한국에 0.7%의 성장 촉진 효과를 발생시킨다. 대만이나 태국 등도 중국 성장의 동력에 편승하고 있으며 심지어 유럽의 경제 대국 독일도 대중국 수출에 크게 의존한다. 유럽연합 외교 담당자조차 중국을 적(敵)만으로 볼 수 없음을 강조한 이유다.

 

미국과 중국의 세력 대결은 적어도 향후 몇 년 동안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크게 보면 동아시아, 보다 직접적으로는 한국의 관점에서 양자 갈등의 심화는 위험한 미래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한국이 미·중 갈등의 무대가 된다면 온갖 압력에 노출되면서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힘든 환경이 된다. 갈등 장에서 벗어나 충격을 완화하고 더 나아가 미·중 협력의 계기를 조성하는 작업은 우리 국가 생존과 직결되는 외교 과제다.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길은 어렵지만 뚜렷하다. 첫째는 동아시아의 공동 전선을 형성하는 일이다. 일본, 동남아, 대만 등 미국의 지정학적 동맹이면서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적인 나라들이 뭉치는 방법이다. 둘째는 세계 정치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고 지역협력의 선두를 달려온 유럽과 대화하고 힘을 합쳐 미·중을 중재하면서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때때로 유럽이라는 먼 길로 우회하는 방식이 급하게 동아시아 안에서 맴도는 것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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