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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명
  • [조홍식의 세계속으로]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4/8)

    • 등록일
      2019-04-10
    • 조회수
      389

[조홍식의 세계속으로]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본능 넘어 의식과 경험 의존하며 생활 / 초파리조차 문화적 행태 모방·전달

사람들은 호모 사피엔스, 즉 지혜로운 인간만이 문화를 가졌다고 생각해 왔다. 문화야말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여겨졌다. 유럽 언어에서 컬처(Culture)라 일컫는 문화는 네이처(Nature), 즉 자연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최근 생물학의 연구는 인간과 동물, 문화와 자연의 경계가 그리 뚜렷하지 않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동물에게도 일종의 문화가 있다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침팬지는 인간처럼 돌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 딱딱한 열매의 껍질을 깨서 알맹이를 먹는다. 어미가 새끼에게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어린 침팬지들은 어미를 관찰하고 모방하며, 처음에는 손가락을 찧어 다치기도 하면서 서서히 기술을 익혀간다. 흥미로운 사실은 코트디부아르의 사산드라 강 서쪽에 있는 기니나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의 침팬지는 돌로 딱딱한 열매를 깨 먹는데, 강 동쪽이나 다른 아프리카 지역에는 이런 습관이 없다는 점이다. 침팬지 세계에도 문화적 경계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침팬지는 인간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동물이지만 새들의 세상에도 문화 현상은 존재한다. 1921년 영국 사우샘프턴에서는 푸른 박새가 문밖에 배달된 우유 병뚜껑을 쪼아 열어 마신 사건이 발생했다. 1949년이 되면 이런 현상이 영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문화적 전파에 해당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의 고시마 섬 원숭이에게 고구마를 주었더니 흙을 털어내기 위해 흐르는 강물에 씻어 먹는 습관이 생기면서 전파됐다고 한다. 또 미국 메인주 앞바다에서 한 고래가 꼬리로 수면을 때린 뒤 물고기를 집어삼키는 사냥 법을 보이더니, 27년 뒤 다시 살펴보자 이 지역의 고래 중 40%가 유사한 사냥 방식을 채택했다는 보고도 있다.

2005년에는 푸른 박새가 우유 뚜껑을 여는 기술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여는 방법과 그 반대 방법을 두 마리 박새에게 각각 가르쳐 기술을 전파하도록 했더니 정말 각 집단에서 한 방식으로만 뚜껑을 열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한 방식으로 뚜껑 열기를 배운 새를 다른 집단에 옮겨놓았더니 얼마가 지나자 방식을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푸른 박새도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는 사회성이 있다는 의미였다.

이처럼 동물의 행태가 유전적 요소와 환경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단순한 시각은 이제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편견이 됐다. 모방이나 학습과 같은 문화적 과정이 동물 세계에도 존재하며 주어진 집단 안에서 하나의 방식이 지배적으로 부상해 후세로 전달되는 사회적 현상도 발견된다. 최근 프랑스 생물학자 에티엔 당솅이 사이언스지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가장 단순한 생물인 초파리조차 문화적 행태를 모방·전달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의 시조(始祖) 가운데 문화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했던 막스 베버 역시 100여년 전 인간과 동물의 유사성과 차이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동물이 순전히 본능적이고 기계적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며 나름의 의식과 경험에 어느 정도 의존한다고 보았다. 다만 인간이 이들을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물학의 발전으로 사회과학도 동물의 문화로 관심을 넓혀야 할지 모르겠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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