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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 세계속으로] 웰빙시대? 닭 수난시대!

소비 늘며 좁은 닭장서 대량생산 부작용/동물복지 개선 축산정책 펴야할 때

21세기가 시작하면서 닭은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기로 등극했다. 육류 소비가 집중돼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통계를 살펴보면 1990년대까지 1인당 고기 소비량에서 1등은 단연 돼지였고, 다음은 닭, 소의 순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돼지고기와 쇠고기의 소비량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반면 닭고기는 꾸준히 증가했다. 연간 1인당 소비량이 1990년 18kg 수준이던 닭고기는 2000년 돼지고기(23kg)를 추월했다. 그리고 2018년에는 무려 30kg을 넘어섰다.

닭고기의 놀라운 부상은 장수 시대 웰빙을 추구하는 지구인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한다. 돼지나 쇠고기 등 붉은 고기가 심장 건강에 나쁘고 대장암의 위험요소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들 고기 소비량은 정체했다. 반대로 흰 살 닭고기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은 소비량을 증가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전 세계 농장에서 키우는 가축이 300억 마리인데 그 가운데 230억 마리가 닭이라고 하니 ‘치킨의 지구적 열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또 지구 모든 조류의 무게를 다 합쳐야 닭의 무게에 간신히 도달한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닭은 수도 늘어났지만 양계 기술의 발달로 한 마리의 무게가 엄청 불어났기 때문이다. 닭을 두 달 정도 키우면 1950년대에는 1kg이 미처 안 됐는데, 1970년대에는 2kg 가까이까지 불어났고, 2000년대에는 4kg을 넘기게 됐다니 말이다.

인간은 건강한 단백질을 저렴하게 먹지만 닭에게는 수난의 시대가 닥친 셈이다. 철창에 가두어 사료로 살을 찌우는 과정은 매우 비위생적이고 가혹하다. 운동량을 줄여 체중을 불리는 것은 물론 분뇨의 악취 속에서 평생을 보낸다. 깃털은 빠지고 피부는 개미와 구더기가 득실거리며 체중은 너무 불어 날기는커녕 걷기도 어렵다. 대량생산의 양계산업이 낳은 부작용이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축산업의 가혹한 측면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인간의 육식을 위해 양계는 필요한 일이지만 약간의 비용이 들더라도 고통을 줄이고 동물의 삶을 향상시키자는 주장이다. 이에 유럽연합(EU)은 2012년 이후 움직이지 못하게 닭을 비좁은 철창에 가둬 기르는 집중 양계 방식을 법으로 금지했다. 미국에서도 시민단체의 활발한 캠페인 덕분에 맥도널드, 버거킹, 월마트 등의 200여 개 대기업은 2015년 이후 철창에서 키운 닭은 구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1월 캘리포니아주는 철창에서 키운 닭의 달걀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게다가 소비자들도 점차 비위생적이고 가혹한 방식의 축산에 대해 거부감을 표명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최근 억지로 살찌운 닭을 ‘쿵(폭발음) 닭’(Plofkip)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5년 닭고기 소비 가운데 60%를 차지하던 ‘폭발한 닭’의 비중은 2017년 5%로 급격하게 축소됐다.

어차피 사람들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짧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닭의 운명일지라도 최소한 맑은 공기를 숨 쉬고 뛰어 놀며 자라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굳이 입법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친환경 라벨의 관리만 철저하다면 장보는 소비자의 자유로운 일상적 선택만으로도 동물의 웰빙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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