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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그리스의 기적은 없었다

 

 

경향신문 | 2015-04-13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곤란한 지경에 놓였다. 지난 125일 총선에서 대승을 거둘 때만 하더라도 치프라스는 그리스를 오랜 경제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는 구세주로 통했다. 유권자들은 그가 주도하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에 의회 300석 가운데 과반에 육박한 149석을 선물했다. 집권 경험이 없는 새로운 정당의 40세 젊은 총리가 기적을 이뤄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기적은 없었다. 치프라스는 국제기구와의 재협상을 통해 국민의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그리스의 부채를 탕감받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 그리고 국제통화기금 등의 국제기구는 재협상의 요구를 형식적으로 받아들였지만 큰 양보를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약속에 대한 정확한 이행 계획을 새 그리스 정부에 요구하며 자금 지원을 유보하고 있다. 그리스는 공무원 월급을 걱정하며 당장 국가 부도를 막아야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연스레 반영된 결과다.

  

다급해진 치프라스는 러시아를 바라보았다. 지난주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푸틴에게 손을 벌렸다. 그는 그리스가 국제사회에서 구걸하는 거지가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세계의 눈은 싸늘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불법합병 1주년을 맞아 푸틴과 나누는 악수는 국제사회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리스는 비난은 받으면서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유가 하락으로 자신이 경제위기에 처한 러시아는 대외 금융 지원을 고려할 만한 처지가 아니었고, 그리스가 요청한 농산품 금수(禁輸) 해제도 거절했다.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정책 프로그램은 국민의 민주적 선택을 받아 집권하더라도 이처럼 처참하게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현실을 무시하고 불가능을 약속한다면 실패는 불가피하다. 그리스는 2010년 위기 발생 이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국제사회로부터 크게 부채를 탕감받았으며, 지금도 대규모의 금융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재협상을 통한 추가적인 부채 탕감은 애초부터 얻어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물론 부채의 탕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상환 조건을 완화하고 정책 변화를 통해 국민의 고통을 줄이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1월에 총선에서 시리자가 승리했을 때만 하더라도 유럽에는 그리스 국민에 우호적인 여론이 존재했다. 하지만 치프라스 총리와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의 저항적이고 투쟁적인 객기는 모든 것을 망쳤다. 치프라스는 나치 독일의 만행에 대한 천문학적 배상금 요구를 들고나와 최대 채권국의 여론을 완전히 적대적으로 만들었다. 바루파키스는 유럽 재무장관 회의에서 부적절한 언행으로 정책 결정 파트너들의 지탄을 받았다. 국내 정치에서 투쟁하듯이 외교무대에서 아마추어적인 행동을 보여 국익에 커다란 ily: 맑은 고딕”>반면 국제사회에도 적과 친구가 존재한다. 적과 어울릴 수도 있고, 친구와 다툴 수도 있지만 이를 착각하면 큰일이다. 하나의 유럽에 의기투합하여 30년 이상 함께 한 파트너를 등지는 듯한 그리스의 행보가 결정적 실수인 이유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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