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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파리 필하모니와 계층 혼합

 

 

경향신문 | 2015-02-22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콘서트홀 파리 필하모니가 지난 114일 문을 열었다. 프랑스 음악계에서는 1989년 바스티유 오페라를 세운 이후 최대의 이벤트라며 기뻐하고 있다. 파리는 이제 1963년 설립된 베를린 필하모니나 LA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1999), 로마의 음악공원(2002) 등과 경쟁할 수 있는 시설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동안 세계적 도시의 경쟁에서 파리는 예술의 수도를 자칭해 왔지만 변변한 콘서트홀 하나 없었다. 필하모니는 2400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대규모 홀이지만 가장 먼 좌석과 오케스트라의 거리를 32m로 축약하는 건축의 묘기를 부렸다. 아무리 저렴한 가격의 자리라도 현장감을 최대한 만끽할 수 있는 거리다. 무대를 중심에 두고 관객을 여러 층으로 둘러앉히는 빈야드 스타일 덕분이다.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샤룬이라는 건축가가 처음 시도한 이 방식은 클래식 콘서트의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좋은 자리는 정면에서 한눈에 오케스트라를 바라보는 시각적 호사(豪奢)를 누릴 수 있지만 말이다. 이 콘서트홀의 음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일본과 뉴질랜드 전문가들이 담당했으며 천장에 달린 장비를 이동하여 조정이 가능한 최첨단 시설이다.

 

문제는 비용도 월드 클래스라는 점이다. 이 콘서트홀의 건축 예산은 한화로 45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사실 예술의 도시 파리에 걸맞은 콘서트홀의 계획은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작곡자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는 30여년간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교향악보다는 오페라 전통이 강한 라틴 국가답게 미테랑 대통령은 바스티유 오페라를 먼저 완성했다. 그 뒤 불레즈는 콘서트홀 설립이라는 음악 투자를 위해 정치적으로 좌와 우를 아우르면서 계획을 밀어붙여야 했다.

 

보수 세력은 클래식 음악과 같은 고급 예술분야 투자에 전통적으로 우호적이다. 반면 진보 세력은 예술의 대중적 향유라는 차원을 더욱 강조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예술의 발굴에 적극적이다. ‘예술 사업가 불레즈는 우파 정부와 좌파 파리시를 모두 설득하였다.

 

좌우의 타협은 필하모니의 위치에서 드러난다. 클래식에 엄청난 공공 예산을 쏟아붓는 대신 필하모니는 파리의 가장 빈곤한 지역에 지었다. 뉴욕에 비유한다면 엘리트의 문화 시설을 할렘이나 브롱크스에 지은 셈이다. 좌파가 희망하듯이 빈곤 지역 시민들 역시 클래식을 향유하게 될지, 우파의 불만대로 부자 시민들이 이동의 불편함 때문에 필하모니에 등을 돌릴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올 초 필하모니를 오가는 지하철에서는 평소 마주치기 어려운 파리의 부르주아와 이민자들이 뒤섞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하철의 사회계층 혼합은 확실하게 성공한 셈이다(1만원)에 살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공연은 인터넷(live.philharmoniedeparis.fr)을 통해 수개월 동안 무료로 누구나 다시 볼 수 있다. 프랑스 국민(45%)과 파리 시민(45%), 그리고 일드프랑스 지방민(10%)의 세금이 들어간 만큼 누구나 결과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세계화와 정보화 덕분에 외국 국민도 무임승차가 가능하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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