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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 세상탐사] 캐머런 영국 총리의 위험한 게임

 

  

중앙SUNDAY | 2014-06-22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영국의 미래를 담보로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는 내년에 취임할 유럽연합(EU)의 집행위원장 자리에 룩셈부르크 총리 출신 융커를 임명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공표하고 나섬으로써 유럽 정계에 파문을 던졌다. 융커가 경험은 많지만 과거의 사람이기에 유럽을 개혁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게 캐머런의 설명이다.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나타난 반()유럽 여론을 감안한 움직임이다. 그러나 너무 성급한 행보로 영국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은 물론, 자국 내 여론을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이 커졌다.

  

캐머런의 첫 번째 실수는 형식에 있다. 집행위원장 선택을 둘러싼 유럽 리더들 사이의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특정인을 대상으로 반대 깃발을 노골적으로 치켜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328EU 회원국 주요 언론에 기고를 통해 융커 불가론을 주장했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로카르 전 총리가 르몽드에 기고를 통해 영국은 유럽을 죽이지 말고 나가라는 볼멘 주장을 폈겠는가.

  

게다가 영국의 주장은 융커라는 인물이 아니라 유럽 차원의 초국적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융커는 기독교 민주주의 계열의 유럽국민당(EPP)이 정한 집행위원장 후보였다. 그리고 유럽국민당은 선거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캐머런은 유럽의회보다는 회원국 리더들이 모인 유럽이사회에서 집행위원장을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유럽 대륙의 여론은 정반대다. 심지어 중도 좌파 사회민주그룹도 융커를 지지하고 나섰다. 유럽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중도 좌우 정치세력이 모두 융커 임명을 옹호하는 것이다.

  

캐머런은 또 자국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했다. 그는 영국의 탈퇴를 언급함으로써 배수진을 쳤지만 많은 회원국은 반대를 일삼는 영국은 나갈 테면 나가라는 식이다. 그는 스웨덴·덴마크·네덜란드 등과 연합을 맺어 융커 반대 전선을 구성했지만 스웨덴과 덴마크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유로에 동참하지 않는 주변 회원국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마르크 뤼터 총리가 융커 임명을 반대하지만 데이셀블룸 재무장관은 중립성을 강조했다.

  

융커의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인물들이 집행위원장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현재로선 커 보이지 않는다. 우선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현직에 만족한다는 입장이다.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우파 인물인 그를 적극적으로 밀 생각도 없다. 덴마크나 핀란드의 전·현직 여성 총리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유로에 참여하지 않거나 유럽 통합에 동참한 역사가 짧은 나라에서 집행위원장이 임명될 가능성은 작다. 유럽 선거에서 승리한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 총리는 같은 당의 레테 전 총리를 유럽이사회 상임대표로 지원할 생각이다. 따라서 융커 안()또한 메르켈의 기민당도 유럽국민당의 최대 세력으로 융커 안을 지지하고 있다. 게다가 사회민주그룹의 집행위원장 후보였던 독일의 슐츠 역시 융커를 지지하고 나섰다. 국내 정치적으로 메르켈이 융커 안을 옹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영국 내 여론의 향배다. 책임 있는 외교보다 포퓰리즘에 가까운 캐머런의 언행에 휘둘려 영국의 반유럽 정서는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캐머런의 배수진은 유럽으로부터 얻어내는 것은 없이 곧바로 물에 빠지는 악수(惡手)가 될 수도 있다. 특히 향후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EU 탈퇴가 결정된다면 유럽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영국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영국의 불행은 그렇다 치고, 유럽 대륙의 시장을 겨냥해 영국에 자리 잡은 미국·중국·한국의 기업들마저 그러한 정치적 리스크를 안게 됐다. 유로에서 소외된 것도 피해인데, 이제 EU라는 단일시장까지 멀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해외투자를 결정함에 있어 언어의 편리함과 주거·교육 등만 고려했지 EU의 정치역학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유럽의 심장을 멀리하고 주변부의 섬에서 유럽을 바라보는 것은 마치 도쿄(東京)에서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뚱맞은 짓이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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